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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구당(喜懼堂)-이재백(李在白)님◈人名漢詩◈

Demian-(無碍) 2011. 2. 7. 21:35
[人名漢詩]

 

희구당(喜懼堂)-이재백(李在白)

- 全南 谷城郡 木寺洞 薪田里, 深山巨儒 隱仙

  (전남  곡성군   목사동   신전리,  심산거유  은선) 

 

 

       /李時明

 

 

谷城木寺 薪田里 (곡성목사 신전리) 

 

深山巨 喜懼堂 (심산거유 희구당)

 

文農一値 在白仙 (문농일치 재백선) 

 

文昌星居 還李白 (문창성거 환이백)

 

 

2011.02.07. -[無碍堂]-多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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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구당(喜懼堂)-이재백(李在白) 선생님을 만나뵙고 와서 쓰다.

 

실명

이재백(李在白)

필명

 

출생년월일

1939 년 04 월 15 일

출생지

 

주소

(우편번호: 516-842)
전라남도 곡성군 목사동면 신전리 369

 

희구당(喜懼堂)

 

 

 

 

 

 

 

 

 

 

 

 

 

 

 

 

 

 

 

 

 

 

 

 

 

희구당(喜懼堂) - 이재백(李在白)

마당 앞 바위좌대에서.../ 이재백님.

희구당(喜懼堂)-이재백(李在白) 소설가

▲ 5대째 120년 세월을 이어 온 그의 집. / 전라남도 곡성군 목사동면 신전리 369

   木寺洞 喜懼堂(목사동 희구당)-이재백님 생가 

 

*희구당(喜懼堂) : ‘즐거울 희(喜), 근심할 구(懼)’,  
“좋은 일이 있으면 기뻐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절망하는 것이 사람의 습성이지만,

 좋은 일 앞에서도 너무 기뻐하지 말고 절망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고 즐거움을 찾으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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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소개>

 

누실명(陋室銘)

 

       -유우석(劉禹錫) , (唐 詩人)

 

 

山不在高(산불재고) : 산이 높지 않아도

有仙則名(유선즉명) : 신선이 있으면 유명한 산이고

水不在深(수불재심) : 물이 깊지 않아도

有龍則靈(유용즉령) : 용이 있으면 신령한 물이다.

斯是陋室(사시루실) : 이곳은 비록 누추한 집이나

惟吾德馨(유오덕형) : 오직 나의 덕으로도 향기가 난다.

 

苔痕上階綠(태흔상계록) : 이끼 낀 흔적은 계단을 오르며 푸르고

草色入簾靑(초색입렴청) : 풀빛은 창문의 발을 통해 더욱 파랗다.

談笑有鴻儒(담소유홍유) : 담소하는 덕망이 높은 선비가 있을 뿐

往來無白丁(왕래무백정) : 왕래하는 비속한 사람은 없다.

 

可以調素琴(가이조소금) : 꾸미지 않은 거문고를 타고

閱金經(열금경)            : 경서를 살펴볼 수도 있다.

無絲竹之亂耳(무사죽지란이) : 듣는 음악은 귀를 어지럽히지 않고

無案牘之勞形(무안독지로형) : 관청의 서류로 몸을 수고롭게 하지 않는다.

 

南陽諸葛廬(남양제갈려) : 남양(南陽) 제갈량(諸葛亮)의 초가집이나

西蜀子雲亭(서촉자운정) : 서촉(西蜀) 양자운(揚子雲)의 정자와 같으니

孔子云(공자운)            : 공자께서도 이르시기를

何陋之有(하루지유)       : 군자가 거하면 무슨 누추함이 있을까" 라고 하였다.

 

이 유우석의 누실명(陋室銘)은

단지 81자로 간결(簡潔)하게 누실(陋室)의 정황(情況)을 남김없이 기술하였으며,

내용의 묘사(描寫)는 더 없이 아름답고, 함축(含蓄)된 사상은 매우 전아(典雅)하며, 문장의 격조(格調)는

풍류한정(風流閑靜)한 멋이 넘쳐서 많은 시인 묵객이 음서(吟書)하는 명문(名文)으로 후세(後世)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다.

 

산이 높다 하여 명산(名山)이 아니다, 신선이 살고 있어야 명산이다. 물이 깊다 하여 신령스러운 물이 아니고,

용이 살고 있어야 신령스러운 물이다. 여기 이 방은 누추하기는 하지만, 이곳에 사는 오직 나의 덕성이 향기롭다.

(山不在高 有僊則名. 水不在深 有龍則靈. 斯是陋室 惟吾德馨.)

 

 

이끼는 섬돌 위에까지 덮어 오르며 푸르고, 풀빛은 문 앞에 드리운 발을 넘어 들어와 방안을 푸르게 물들인다.

이곳에 모여 담소하는 사람들은 모두 덕 높은 선비들뿐, 비속(卑俗)한 사람들은 왕래하지 않는다.

장식이 없는 소금(素琴)의 줄을 고르고,

(苔痕上堦綠 艸色入簾靑. 談笑有鴻儒 往來無白丁. 可以調素琴)

 

옛 성인의 금옥 같은 경서(經書)를 열람하며, 기녀들을 불러서 듣는 어지러운 음악소리도 없고,

세상의 잡다한 일에 시달리지 않아서 좋다. 이곳을, 남양(南陽)의 제갈량(諸葛亮)이 은거(隱居)하던

초려(草廬)나 서촉(西蜀)의 성도(成都)에 살던 양웅(揚雄)의 재주정(載酒亭)에 비교해 볼까?

“공자(孔子) 말씀하시길, 군자가 살고 있다면 어찌 누추한 방이라 할 수 있는가?“ 하지 않았는가?

(閱金經. 無絲竹之亂耳 無案牘之勞形. 南陽諸葛廬 西蜀子雲亭. 孔子云 何陋之有.)

 

이상의 문장구성을 보면 용어(用語)와 구법(句法)등에 변화의 묘를 주어서, 문장의 시작(始作)은

사언(四言)의 정중한 체(體)로 기술하였다. “산이 높기만 하거나 물이 깊기만 해서 유명한 것이 아니라

신선이 살고, 용이 산다면 유명하고 신령한 것이, 마치 사람 사는 방이 크고 좁은 것보다는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의 덕향(德香)이 배어 있어야 유명하다.” 고 전제하고,

자신이 사는 방은 비록 누추하지만, 산 속의 신선과 물속의 용처럼 자신의 덕의 향기가 서려 있어서

누추하지 않다고 술회한다.

 

다음은 자신의 방을 오언시(五言詩)의 형태로 표현하였는데, “사람의 왕래(往來)가 드물어서

오르는 계단에 푸른 이끼가 점점 덮여 오르며 푸르고, 창문에 쳐 놓은 대발 사이로 정원의 녹음이

더욱 푸르게 비쳐서 싱그럽다. 때때로 도량이 넓고 시문에 능한 선비들 찾아와 큰소리로 웃고 즐기며,

세속적인 사람들 찾아오지 않는다. 장식 없는 거문고도 가끔 타보고, 성현들이 남긴 금옥 같은

경전도 펴고 읽는다. 잡다한 술판에서 듣는 가무소리도 없고,

세상에 책임질만한 서류를 대하며 고민할 일도 없다.

 

이만하면, 옛날 남양(南陽)땅에서 은거(隱居)하던 제갈공명(諸葛孔明)의 초가집이나,

서촉(西蜀)의 현인 양자운(揚子雲)이 유유자적(悠悠自適)하던 재주정(載酒亭)과 비길만하지 아니한가?

 

성인 공자(孔子)도 제자인 안회(顔回)가 안빈락도(安貧樂道)하는 모습을 보고

“군자가 사는 곳엔 어찌 누추함이 있겠는가?(君子居之 何陋之有)” 라고 하지 않았던가?“ 라고 하였다.

유우석은 고상한 문장가이며, 깊은 통찰력을 지닌 철학자였다. 이는 진실로 선비의 풍모다.

격도 갖추지 못하고 선비인척하거나, 남의 일을 모방해서 단지 흉내를 내며 사는 자칭 은자들은

깊이 자성할 일이다.

자신의 생각이 행동과 일치되지 못하면, 이처럼 심금(心襟)을 울리는 글이 나올 수 없으리라.

사물을 관조(觀照)하는 마음도 자신의 수양이 없으면 깊은 통찰력이 발휘될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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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거운뜻 부지런팔뚝 갖이고’
‘가가(家歌)’부르며 더욱더욱 나아가는
곡성 목사동 농부소설가, 이재백(李在白)
 *기사출력  2007-05-07 16:53:13. ⓒ 전라도닷컴 남인희 기자  

▲ 곡성 목사동 이재백씨 댁엔 할아버지대로부터

50년 넘게 이어져 온다는 가훈과 ‘집노래(家歌)’가 있다.

ⓒ 김태성 기자


“물오리들이 하늘로 날아오를 때의 울음소리가 푸른 비 내리는 것 같다”해서 압록(鴨綠)이라던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손꼽히는 석압로(압록∼석곡). 느릿느릿 순하게 흐르는 보성강 물길 따라가다

아미산 자락에 옴팍하게 안긴 마을 하나로 접어든다.
흐르는 듯 모나지 않은 고샅길을 만들고 있는 이끼 낀 돌각담들이 정다운 목사동이다.

 

실록을 쓰는 사관처럼 농촌 실상 기록
그 <돌각담>을 표제작으로 지난해 늦둥이 첫 소설집을 내놓은

이재백(69)씨가 이 마을(곡성군 목사동면 신전리)에 산다.

그는 고향을 지키며 소설 쓰는 농부다. 아니 농부 소설가다.

두 가지 일을 양 손에 들었으니 요새 사람들 하는 말로 치면 ‘투잡족(族)’이다.

주경야독이라고, 낮에 배밭으로 논으로 고샅으로 쏘다닌 발걸음은 밤엔 형광등 불빛 아래 그대로 컴퓨터에 옮겨진다.
<옛 사람들이 살아왔던,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 많은 흔적들이 얽히고설킨 황토 구릉마을,

그 입구마다 자그만 비문이라도 세워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아픔이, 그리움이, 분노가, 함께 하는 마음이

절절이 스며 있다고…>.
소설집 《돌각담》에 붙인 작가의 말이다.

▲ 벼농사만 짓고 살던 마을에서 처음 배농사를 시작한 이재백씨.

가가(家歌)의 노랫말처럼 그가 품은‘질거운(즐거운) 뜻’과 ‘부지런(한) 팔뚝’덕에

80여 농가가 참여하는 곡성배영농조합에선 연간 500톤이 넘는 배를 수출하게 됐다.

ⓒ 김태성 기자


“젊은 사람들이야 이것이 전설도 아니고 뭣도 아니고 뭔 소린 줄도 모르고 관심도 없겠지만,

우리의 족적에서 사라질 것들을 새기고 농촌을 그려낼 수 있는 마지막 세대라는 생각으로 작품을 씁니다.”

잊혀져 가는 우리네 농촌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의 소설엔 마을의 역사나 농촌의 소소한 풍속들도

오롯이 재현되고 있으니, 소설가 이순원이 이 소설집에 붙인 평처럼

<그의 소설은 한 구석 새것에 대한 맹신적 경쟁이 없다.

이 체구 조그마한 늦깎이 작가는 늦었다고 서두르는 법 없이 자기 걸음으로 살아온 시대를 얘기하고

자기가 본 시대를 증언하며 또 이야기한다.>
서울에서 문예창작과를 나온 청년이 농촌으로 귀환했을 때, 사람들은 도대체 왜 돌아왔느냐고 물었다. 
“농촌에 살며 농촌을 쓰기 위해서였죠. 지금도 후회는 없어요.”

오래 전에 변방의 문학으로 쇠락해 버린 농촌문학을 숙명인 양 고집하는 시대착오적인 외곬수.

그이가 마치 실록을 쓰는 사관처럼 농촌의 실상을 기록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신 저녁마다 흙 묻은 장화를 벗는 농부이기 때문이다.
“소설 쓰는 이들 앞에서는 나는 농사도 짓는다 까불지 마, 허고

농사짓는 이들 앞에선 나는 소설도 쓴다 까불지 마, 허고 사는 것이지요, 허허.”

이 작달막한 어르신의 얼굴에 흐르는 봄햇살 같은 웃음을 대하노라면 ‘까불지 마’라는 엄포가

실은 어디서나 눌릴 것 없는 처지이면서도 늘 수그릴 줄 아는 겸양에서 나온 말씀이란 것을 알게 된다.

그러기에 이생진 시인은

<시골에서 배농사를 하며 글을 쓰는 이재백/ 서울에서 시를 쓰는 내 손이 부끄러워>라고 쓰지 않았겠는가.

20호 자가일촌(自家一村)을 이루고 사는 마을.

6000여 평 배밭에 3000여 평 벼농사를 손수 짓고 사는 그이지만

혹여 조금치라도 서툰 일 앞에서는 나이 불문, “일헌 데는 니가 내 선생이다” 고개 숙이고

한 수 배우기를 꺼리지 않는다.

집앞 마당의 바위좌대에서-이재백   ⓒ 김태성 기자


벼농사만 짓고 살던 마을에 처음 배를 들여와

“지켜야 할 것은 지키고 바꿔야 할 것은 늘 자꼬 바꿔치기해야 해요.”
전통이라고 해서 무조건 답습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진취적 기상은 이 작은 마을을 배 수출 단지로 바꿔 놓았다.

지금이야 ‘골짝나라’ 곡성의 ‘목사동 배’가 명성을 얻었지만

벼농사만 짓고 살던 이 마을에 처음 배를 들여 온 공로는 이재백씨 부부에게 있다. 
“나주에 혼자 가서 들판을 본께, 어디 과수원에서 아저씨가 전정을 하고 있어요.

음료수 한 병 사 갖고 가서 꼬치꼬치 묻고 한번 모셔다가 전정 배우고 그 뒤로는 혼자서 했지요.”

시집와서야 농사를 배웠다는 그의 아내 이행숙(62)씨는 타고난 장손며느리였나 보다.

가세를 지키기 위해 내 몸을 희생하겠다는 각오로 배농사를 시작했다.

시어머니 생전에 “니 손은 참 좋은 손이다”는 치하를 들은 걸 보면 이 며느리의 바지런한 성정이 짚어진다. 

그렇게 배밭을 일구어온 지 30년이 넘었다.

배영농조합법인의 부지로 쓰겠다고 1000여 평의 멀쩡한 배밭을 무상으로 내놓은 남편에게 아내는 할 말이 많다.
“판판한 평지 땅은 마을에 내주고, 마느래(마누라)는 쩌 높은 산비탈을 다리 아프게 오르락내리락 일하러 가라 허데요.”

덕분에 80여 농가가 참여하는 곡성배영농조합에선 연간 500톤이 넘는 배를 수출하고 있으니,

목사동 골짜기는 떠나가는 농촌이 아니라 바야흐로 돌아오는 농촌이 돼 가고 있는 것이다.

내 식구보다 남의 식구 좋으라고 한 일이건만, 남편은 생색도 내지 않고 덤덤하게

“내 배밭 가차우니 내 일 보기도 편허잖여” 응수하고, 항변하던 아내의 얼굴엔 슬몃 웃음이 비친다. 
부창부수다. 부부는 닮았다.

▲ 그의 서재 희구당. 할아버지 때부터 지녀온 고서며 누렇게 바랜 옛날 문예지부터

요즘 신간 서적까지 사방으로 병풍을 두른 듯 촘촘하고 알뜰하게 정리된 것이

오래된 남와 어린 나무가 함께 자라는 숲에 들어선 듯.

ⓒ 김태성 기자


편지 한쪽도 금쪽처럼 간직하는 그 마음

5대째 120년 세월을 이어 온 그의 집.

그 한 세월, 고물고물 기어다니던 갓난쟁이가 혈기 푸른 청년이 되었다가 순하게 늙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집이다.
바지런한 부부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을 성 부른 그 집의 안팎엔 고요하고 정갈한 윤기가 스며 있다.

사람으로 치자면 집은 외화내빈과는 도무지 거리가 먼, 속이 꽉 찬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사랑채에 들인 그의 서재엔 예사롭지 않은 필치의 현판이 걸려 있다.

희구당(喜懼堂). ‘즐거울 희(喜), 근심할 구(懼)’,

기쁨과 두려움을 안고 있는 처소라니 당호라기보다 인생 철학쯤으로 들린다.
“좋은 일 있으면 까불고 힘든 일 있으면 절망하는 것이 사람의 습성이지만,

좋은 일 앞에서도 너무 까불지 말고 절망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고 즐거움을 찾으라는 뜻이지요.”

서재는 온고지신하는 이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것 같다.

할아버지 때부터 지녀온 고서며 누렇게 바랜 옛날 문예지부터 요즘 신간 서적까지

사방으로 병풍을 두른 듯 촘촘하고 알뜰하게 정리된 것이 오래된 나무와 어린 나무가 함께 자라는 숲에 들어선 듯.

그의 소장목록엔 가령, 공초-오상순에게서 받은 담배 한 갑이 그 시절의 추억과 함께 끼여 있는가 하면,

희부연 창 옆에 걸린 액자엔 누렇게 바래가는 흑백사진 한 장이 남모르는 진가를 가진 보물인 듯 연륜을 더해 간다

(사실은 어느 잡지에서 뜯은 것이다).

“나한테 들어오는 것은 신문지 하나라도 안나간다”는 그이.

글자를 다루어 영혼을 아로새기는 작업을 하는 그이기에 인쇄물에 대한 애착이 각별하다.

“만든 이의 혼을 담은 것 아닙니까. 전라도닷컴도 한 200년 지나면 문화유산이에요.”
편지 한쪽도 금쪽처럼 여기는 그이의 집에서는 할아버지의 편지도 자랑스러운 역사고 유산이다. 

▲ 5대째 120년 세월을 이어 온 그의 집.

바지런한 부부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을 성부른 집의 안팎엔

고요하고 정갈한 윤기가 흐르고 속이 꽉 찬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 김태성 기자


콩나물 깍대기도 없이 입으로만 전해지는‘집노래’

빛바랜 서책들 곁엔, 그것이 만들어진 세월을 짐작케 하는 표구 액자가 눈에 띈다.
할아버지대로부터 70년 넘게 이어져 온 가훈과 ‘집노래(家歌)’다.
만손일심(萬孫一心)하라 전해지는 가훈은

근면·진취요 ‘가도(家道)중심’은 화락(和樂)이다. 그 아래 씌어진 것은 ‘집노래’.

<깨끗한 피 궂센 힘 모아 닐우어/ 이천해 니여온 우리집 역사/ 겨레는 억천만 마음은 하나

/ 집을 위한 몸바친 우리집 주의/ 질거운 뜻 부지런 팔뚝 갖이고/ 더욱더욱 나어갈 우리집 가훈

/ 가론 땅갓 세로는 하늘과 함께 / 내 때 내손으로 될 우리집 가도(家道)>
이름도 생소한 집노래. 그는 “내 한번 불러 볼까요” 하고 첫 소절을 우렁우렁 부른다.

시조가락으로 할아버지가 부르던 것을 귀에 담아 기억한 것이다. 

“시골영감이 밥묵고 헐 일 없어서 헛폼 잡았는가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집안에 집노래가 있다는 게 자랑스럽지요.

콩나물 깍대기도 없이 입으로만 전해지는 놈이니

음대 작곡과 다닌다는 집안 아이놈한테 악보로 한번 정리해 보라고 할 참입니다.”
노래 속 ‘질거운(즐거운) 뜻 부지런(한) 팔뚝’을 좌우명처럼 살아가는 그이.

산등성이 희디희게 덮었던 배꽃들 다 지고 나면

낮으로는 새 잎 푸른 자리마다 종종거리고,

밤으로는 희구당 문 앞에 대숲 바람 소리 청정하게 흘려 놓고

오늘 아니면 새기지 못할 글을 새기고 있으리라.

기사출력  2007-05-07 16:53:13  

ⓒ 전라도닷컴

 

출처 :광주전남소설가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 어이-쇠

 

 

* 글이 있는 돌각담 *

 

 

돌각담 육필비-전라남도 곡성군 목사동면 신전리

 

어떤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었습니다.

누구나 어른이 되는 것이어서 그 아이도 어른이 되었지요.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고 해서 서울로 왔다가,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닌 것 같아 고향으로 돌아가버렸습니다.

고향사람들과 비료를 나누고,

고향 산들에는 과일을 심고,

시간이 나면 젊은 날의 초상을 그렸지요.

그러기를 40년.

코 흘리개 아이들도 성장해 가정을 꾸리고,

어느덧 그에게도 황혼이 왔지요.

그 어느 황혼의 시간에서,

그는 새로운 인생을 만들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도 틈틈이 그가 그리던 젊은 날의 초상은,

그를 소설 돌각담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58세에 신인문학상을 받게 된 것이지요.

 

 

 

무어 농촌운동이 별스러울 게 있겠어요.

평생을 농촌에서 살면서 농업을 하면 그것이 농촌운동이지요.

허울 좋은 말보다 농촌 지키면, 그것이 진짜 농촌운동 아닌가요.

낮에는 농사, 밤에는 글쓰기.

평생을 그와 함께 있었던 농가의 돌각담.

이제 그 돌각담이 소설가의 꿈이 아닌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출처 :좋은 사람들 두레 원문보기   글쓴이 : 이재범

 

 

 

 

 

 

 

* 글이 있 는 돌 각 담 *  

 

인적조차 보기 드문 이 고샅길을 돌각담길로 가꾸고자 하는 마음은 별난 아름다움입니다.

그렇지만 더한 아름다움은 흙냄새 풍기는 순박한 마을 사람들의 고운 심성(心性)입 니다.

이 흔적痕迹은, 먼 후일後日에도, 희미한 달그림자로,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

 

“돌각담”의 형상화로 마을길을 아름답게 꾸미는 한편,

이 골짜기와 인연이 있는 분들의 육필(肉筆)을 돌각담 속에 숨겨 놉니다.

풀잎보다 싱싱한 모습으로,

고향 사랑의 잔 잔한 진혼곡(鎭魂曲)으로, 또한 글 자리의 디딤돌로...

 

돌각담 사이를 장식한 글들.

 

<안내문>

 

글에 취(醉)한 돌각담은

하늘 아래 가장 쓸쓸한 땅에 있습니다.

햇살조차 머뭇거리는 이 골짝에

마을 사람들의 자화상自畵像을 남깁니다.

 

이 장 : 정 정 태

새마을지도자 : 이 봉 안

 

목사동 면장 : 마 덕 숙

총무계장 : 한 상 백

 

단기4341년 늦가을에. 마을 상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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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 전 리 봄

 

/임 보

 

아미산 산자락

대숲 마을 이른 봄 배 밭에

꽃이 일면

돌각담 골목마다

은 웃음들

떠가 던 흰 구름도

길 뭠추네

 

1940년 서울대 국문과. 현대문학 시 추천.

시집. “장닭 설법” “은수달 사냥” “가시연꽃” “자연학교”

충북대. 정년퇴임.

 

2)

 

/곽재구

 

외로운

해와

달이

잠시 머물러

지친 발걸음 쉬어가는 이곳

 

꽃과

바람과

새들의 춤이

인간의 주름살 곁에

오래 오래

머물은 이곳

 

그대여

문득 뒤돌아서서

바라보는 길들

또한

사랑스럽지 아니한가

 

/곽 재구

 

1954년 숭실대 대학원.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사평 역에서” “낙타풀의 사랑” “삶을 흔들리게 하는 것들”

순천대학.

 

 

3)

 

/공선옥

 

어둠이 좁은 방안에 밀려든다

어둠 속에서 나는 꿈틀한다.

무엇인가 꿈틀한다.

그곳은 깊고 어두울 것이다.

모든 생명이 움트는 곳은 어디나 다아 한가지로,

 

공 선옥 단편소설 “피어라 수선화” 중에서

 

 

1964년 전남대. 창작과 비평에 중편으로 등단.

소설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 “명랑한 밤길‘ ”유랑가족“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

 

 

4)

 

입춘 무렵

 

/윤 석주

 

소설 쓰며 배농사 짓는

싱건지 맛 그만인 목사동 李白 兄네

정월 초닷새 배곯은

달빛만 가득한 마당가

기방에서 쫓겨나 사립문

기웃거리던 梅花란 년

싹수 노오란 열일곱 고 가시내

지난 겨을

상사병 지독히도 앓터니

물오른 얼굴에 뾰루지 툭툭 불거졌네.

오매 저걸 어쩔거나

 

/이천팔년 늦가을 돌나무가 쓰다

 

1947년 시와 사람 신인상

시집 “잠든 숲에 사랑을 묻다” “해의 다비식”

 

 

5)

 

목 탁 2

 

/차 창 룡

 

몇 억 광년의 세월이 흘러 별빛이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보이지 않는 속도는 보이지 않는 소리이다.

 

날아가라 어서 목탁 소리여

이 목탁 닳고 닳아 먼지가 되면

돌아오리 보이지 않는 속도로

보이지 않는 길을 만들며

 

아득한 광년의 거리 너머

빠른 속도로 천천히 떨어지는 목탁 소리

별은 먼지이므로

눈에 들어가 눈물 흘려보낸다

보이지 않는 소리를 보여준다.

 

1966년 중앙대 대학원.

“문학과 사회” 로 등단

시집. “나무 물고기”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인도 신화”

김수영 문학상. 중앙대. 경기대. 서울여대 출강.

 

6)

 

/이재범

 

이 주차장에서 마을로 들어가니

확 트인 바다가 보이며 마을이 나타났다.

이아 마을, 그리스에서 일몰이 가장 아름답다는 곳이다

파란 지붕에 그리스정교회식 십자가를 단 교회들

그 사이로 넓은 날개가 달린 풍차들

히피서커스가 만개한 푸른색 지붕의 하얀 작은 집들,,,

이아 마을의 첫 인상은 그랬다.

이른바 카사비앙카(언덕 위의 하얀 집)가 아닌가?

누군가 일부러 만들어 놓은 듯 보이지만

실은 오랜 세월 척박한 자연 속에서 삶을 일구어 온

이곳 사람들의 땀이 배인 곳이다.

 

/이 재범 “나의 그리스 여행” 중에서

 

1951년 성균관대학.

“슬픈 궁예” “한반도의 외국군주둔사” “나의 그리스 여행”

경기대. 경기도문화재 위원장.

 

7)

 

/조용헌

 

인간을 연구한다는 것은 자연을 연구하는 것이고

자연을 연구한다는 것은 인간을 연구한다는 것이다.

하늘의 이치는 그때마다

인간을 통해서 나타나게 되어있다.

인간과 자연은 서로 상응하고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태풍을 보고 인간사를 예측할 수 있다.

난세의 조짐을 미리 보는 것이다.

하늘에는 측량하기 어려운 비바람이 있고

사람에게는 아침저녁으로 바뀌는 화복이 있다.

 

/조 용헌. “사주명리학 이야기”에서

 

1961년 원광대학교. 조선일보에 조용헌 살롱 연제중.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고수기행” 방외지사“ ”사주 명리학 이야기“

조선일보 논설위원. 원광대.

 

8)

 

개 떡

 

/문 순 태

 

내 유년의 초록빛 하늘에

개떡 하나 둥둥 떠 있다.

배고파 눈 질근 감으면

개떡 같은 보름달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내 희망은 개떡이었다.

어머니,

어릴 적에 맛나게 먹었던

보름달 개떡

어디에 숨겼어요

쫄깃쫄깃 들큼한 희망의 맛

돌려주세요.

 

1941년. 조선대. 한국문학으로 등단.

소설 “징소리” “철죽제” “타오르는 강 7부작” “정읍사”

전남일보 편집국장. 순천대. 광주대. 정년퇴임.

이상문학상 특별상. 문학의 집 생오지.

 

9)

 

/박 혜강.

 

천지간에 꽃잎 흩날리던 날,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깨달았다.

생의 무게가 얼마나 버거운 것이며,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어떻게 변하는지.

슬픔은 슬픔만큼 깊어지고, 슬픔은

슬픔만큼 넓어지고, 슬픔은 슬픔만큼

커졌다가 마침내 그 슬픔을 먹어치우고

또 그 슬픔을 넘어 이름 모를 꽃으로 다시

피어나게 될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무등일보 연재소설 “풀잎으로 눕다” 중에서

 

1954년. 조선대. 문학예술운동에 중편으로 등단.

소설 “ 운주 5부작” “도선비기” “조선의 선비”

광주전남 작가회의. 광주전남소설가협회 회장. 역임.

 

10)

 

/백시종

 

돌각담의 아름다움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참혹한 비극을

서정적인 문체의 돌과, 탐구

적인 시각의 돌과, 따뜻하지만

엄숙한 목소리의 돌과, 연민의

돌들을 생김새대로 차곡차곡 쌓아

놓는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10월. /백 시종.

 

1944년 서라벌예대.

대한일보. 동아일보 신춘문예당선. 현대문학 추천.

소설 “돈 황제” “걸어 다니는 산” “환희의 끝” “서울의 눈물” “물”

한국문학상. 오영수문학상. 채만식문학상. “계간문예” 주간.

 

11)

 

/이근배

 

어머니가 매던 김 밭의

어머니가 흘린 땀이 자

라서 꽃이 된 것아 너는 思

想을모른다 어머니가

思想家의 아내가 되어서

잠 못 드는 平生인 것을

모른다

 

졸시, 냉이꽃의 일절을

 

/사천-이근배 적다.

 

1940년 서라벌예대 문창과.

경향신문. 서울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노래여, 노래여” “한강” “시가 있는 국토기행”

시인협회회장 “한국문학” 주간역임.“문학의 문학” 주간. 재능대. 예술원 회원.

 

12)

 

/이명한

 

뜻이 조금 다르더라도

몸을 스치며 걸어가다 보면

얼었던 마음이

어느덧 따뜻해지는 것을

南과 北이 어찌 다를까.

저 푸른 하늘 함께 이고

비단 같은 땅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아

 

이 명한 :1932년 조선대.월간문학 신인상.

소설 “황톳빛 추억” “달뜨면 가오리다”

광주전남문인협회장. 광주전남 민예총 회장역임

 

13)

 

/이순원

 

대부분의 행성이 자기가 지나간 자리를

다시 돌아오는 공전주기를 가지고 있듯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런 질서와 정해진

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일

이란 일은 모두 2천5백만년을 주기로

되풀이해서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2천5백만년이 지나면 우리는 다시

지금과 똑같이 여기에 모여 오늘 우리

곁으로 온 별을 쳐다보며 이야기할겁니다.

 

소설 “은비령” 중에서

/이 순원

 

1958년 강원대. 문학사상 신인상.

은비령” “말을 찾아서” “순수” “아들과 함께 걷는 길”

효석 문학상. 한무숙문학상.

 

14)

 

/임철우

 

한때 우리는 모두 별이었다.

저마다 꼭 자기 몫만큼의 크기와

밝기와 아름다움을 지닌 채,

해 저문 하늘녘 어디쯤인가에서,

꼭 자기만의 별자리에서

자기만의 이름으로 빛나던,

우리 모두가 누구나 다 그렇게

영롱한 별이었다.

 

/임 철우 “그 섬에 가고 싶다 중에서“

 

1954년. 전남대. 서울신문신춘문예 당선.

소설. ”봄날 5부작“ “백년여관” “그 섬에 가고 싶다” “등대아래 휘파람”

단재상. 요산문학상. 이상문학상. 한신대. 교환교수로 중국에.

 

15)

 

/채희윤

 

도대체 누가 이 보리를 심었을까. 불하받은

땅이라서 아직 집을 짓기는 싫어서 그 대신 낭만을

심어 보자고 심은 것일까. 아니면 저 아파트에

서, 자식들에 얹혀사는 시골 노인들이, 억지로 버리고 온

고향을 그리워하며 남의 터에 파종을 했을까?

이제야 그는 조금 전 노인네들이 그들이 아닐까 생각

했다. 그들이 젊음을 그리워하듯이, 옛날 보리밭에

서의 정사를 생각하며 기분을 내 보려 자식들

몰래, 이 한밤에 나왔을까? 도대체 누구일까.

이렇게 푸른 절망의 씨앗을 파종하고, 퇴색한 상처를

되살리는 사람은.

 

소설 “밤, 견인의 시각” /채 희윤

 

1954년 서강대 대학원. 한국일보 신춘문예.

“별똥별 헤는 밤” “스무고개 넘기” “곰보아재” “소설 쓰는 여자”

광주전남 작가회의회. 광주전남소설가협회 회장 역임. 광주여대.

 

 

16)

 

이런 꿈 한자락

 

/천 승 세

 

 

모지락스러운 세상 목숨 벼르노라 사대육신

눅쳐지는 날엔 이런 꿈 한 가닥 담은 단

봇짐 들고 길 떠나보자.

 

섬도 아닌 땅 땅도 아닌 섬 한 곳 물색해서

자란자란 띠 돌리는 물길 모재비 헤엄질로 건너

연화리에 오똑 올라 풋각시 허릿매 같은

환한 길 한골로 닦아 목사동 되짚어 오를 일.

아직도 즈런즈런 젊디젊은 통명산 벼룻길

달근달근 타내려 필봉 서벅돌 틈 낙낙한

자리 한 곳 골라 곡성땅 마지막 파시

주렁주렁 키우는 감나무 한그루로 희우둠이 서서

붓대 쥔채 날밤세우는 신전리 재백(在白)이의

새하얀 새벽이나 지켜볼꺼나

 

1939년 서라벌예대. 성균관대.

동아일보 신춘문예. 국립극장 장막극 현상공모 당선.

소설 “맨발” “혜자의 눈꽃” “낙과를 줍는 기린” 시집 “몸굿“

 

17)

 

/한승원

 

거문고는 왜 신의 악기(神 琴)

인가 수많은 누에고치들의

순절 때문이네. 그들의 몸

비틀어 꼰 울음은 혼의 음

되어, 그 음은 빛이 되어,

그 빛은 새가 되어 펄펄

하늘로 날아가네.

 

詩, 글씨 / 한 승원

 

 

1939년 서라벌예대 문창과. 대한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설 “동학제 7부작” “해일” “원효” “추사” “아제아제 바라아제” “목선”

이상 문학상. 김동리 문학상. 수상. 해산토굴에 칩거. 조선

 

18)

 

목 사 동 연 가

 

/최 정 주

 

목사동 신전리 마당 넓은 그 집에는

배꽃같은 사랑이 살아요. 떠난 사랑으로

가슴에 꽃병이 들어 아픈 날이

주인 몰래 한번 다녀 가시지요

운이 좋으면 소쩍새가 부르는 사철가

한 대목 들을 수 있고요. 주인에게 들키

사랑같은 배 맛도 볼 수 있지요.

 

1951년 원광대 국문과. 한국문학에 중편소설 당선.

소설 “아리랑” “흰소” “일지매” “안개” “황진이”

백제예술대

 

19)

 

섬으로 가는 2박 3일

 

/이생진

 

이렇게 가족 몰래 사는 가족이 있었던가

모이니까 한 식구 같다

남원을 지나

곡성에서 이재백 소설가

돌각담 같은 순수한 사람의 손

진갑이 훨쩍 지난 것이 허무한 게 아니라

이런 만남이 고마워.....

고목에서 예쁜 꽃을 피우고 싶은 것은

과욕이 아니리라

생명의 존재를 다시금 확인하는 방법이다

 

시골에서 배농사를 하며 글을 쓰는

이재백

서울에서 시를 쓰는 내 손이 부끄러워

그의 손보다 먼저 내 얼굴에 미소를 바른다

술이 맛있는 것도 이런 손 때문이리라

그는 무궁화호에서 내려

다시 곡성에서 헤어졌다

이 세상에 태어나 글을 쓴다는 거

술을 마신다는 거

그리고 얼굴을 마주보며 취한다는 거

2박 3일은 그것을 확인하는 술잔이다.

 

1929. 국제대학.

현대문학 추천, 그리운 성산포. 바다에 오른 이유. 나의 부재.

윤동주문학상, 그리운 성산포로, 제주명예 도민증.

 

<1> 글 비(碑) :자연석19 개

<2 >돌각담 길이 135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