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
/李時明
밥솥의 가장 낮은 밑바닥에서
뜨거운 불길에 살점을 태우고
검누른 간식꺼리 과자가 되어
침샘에 엉키어 숫소여물처럼,
입안 가득히 구수한 내음으로
마법의 묘미를 안겨주는 친구.
은근하게 진한 중독성을 부르는
황금빛깔 누룽지 조각들 속에는
민생 조상들의 가난한 유물처럼
알알이 누런 벼이삭과 황금들녘이
잇방아질 속에 꿈틀대며 숨을 쉰다.
신라 왕릉에서 출토된 금관처럼
묵은 세월의 오래인 역사를 감은
검은 녹이 낀 신라금관의 빛깔이
누룽지 속에서 술술 베어 나온다.
입안 가득히 누룽지를 우물우물
씹어삼키는 구수하고 오묘한 맛
그 무엇으로 비교할 바가 있으랴.
옛고향 논두렁 두덕길을 걷듯이
볼우물 새기며 씹는 요 맛 속엔,
초가지붕 볏짚내음과 상투를 튼
조상님의 고단했던 삶의 흔적이
입안 가득히 사박사박 느껴진다.
누룽지를 즐겨 씹어먹는 재미는
웬지 옛스런 맛과 추억의 향수를
더듬는듯 구수한 멋과 맛이 있어
누룽지를 즐기는 중독자가 된다.
2019.02.04.
/無碍(礙)-李時明-(Demian)
⬜無所亭(무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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