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와 요석공주
원효가 화랑이던 청춘시절 서로 사모하던 원효와 요석공주 그러나 이루어지지 못하고 화랑들의 비무대회에서 우승한 진 여랑과 결혼한 요석공주 그러나 백제와의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요석공주는 청상과부가 되어 외로운 세월을 보내다가
출가한 비구승이 되어 돌아온 원효를 때로 아주 가까운 곳에서 때로는 먼발치에서 보게 되면서 날이 갈수록 사모의 정을 더욱 크게 느끼게 된다
‘저분은 스님이시다. 평생 결혼하지 않을 결심을 하고 출가하신 저 분을 내가 사모하면 안 되지.’
그러나 원효의 잘생긴 모습과 탁월한 설법에 당시의 왕비와 요석공주는 원효를 짝사랑 하게 되고 왕비는 원효를 자주 왕궁에 불러들여 설법을 들었다
그러나 원효는 청춘의 첫사랑 요석과의 열정이 아직 가슴에서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으니 불교의 이론과 현실의 마음 작용 사이에서 일어나는 묘한 번뇌를 격고 있었으리라 사료 된다
요석공주 또한 아무리 다짐을 해도 원효가 불도 닦는 승려가 아니라 학식 높고 말 잘하는 미남자로만 자꾸 생각되고, 그리움이 사무쳐 병이 날 지경이 되었으리라.
공주는 용기를 내어 원효에게 모란꽃과 승려 복을 선물한다. 원효는 공주의 마음을 알아차렸지만 가타부타 아무 말이 었다.
공주는 고민 끝에 자신의 이런 간절한 연모의 마음을 아버지 무열왕에게 말한다. “아바마마.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했는데, 제 눈에는 나무밖에 보이질 않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겠습니까?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좋을 듯하옵니다.”
원효 역시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공주의 아름다운 모습에 자꾸만 눈길이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승려였고 상대방은 공주였다.
두 사람이 결혼을 원하더라도 많은 제약이 따를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아마도 내면의 번뇌는 연민과 사랑 그리고 부처님의 계율과 승려로서의 명예 등 참으로 많은 것들 속에서 또 하나의 의문에 부딛쳐 졌으리라 여겨진다. 인간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곳에서 원효는 또 다른 세계와 만나게 된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남산의 거지 땡초 대안대사의 만남과 그 유명한 요석공주와의 3일간의 사랑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기록된 자료에 의존 하거나 구전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를 통해 진실여부를 떠나서 우리가 이곳에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배우며 현실의 자기 삶 속에서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갈 것인지 살펴보는 일이다
먼저 원효대사와 대안대사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원효대사가 왕궁에서 설법하고자 교자에 올라 왕실로 가는 도중에 "대안대사"와 마주치게 되었다 남산의 작은 토굴에 사는 대안대사는 말 그대로 타락한 땡초의 모습이었다. 흔히 말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홀로 도인인 것이다
원효는 왕실의 고승대덕이고. 대안대사는 중생들의 눈에는 타락한중 (땡초)의 모습이니 둘은 서로 극과 극의 모습이었다. 어느 날. 원효가 가마를 타고 왕실로 가던 중. 대안 대사와 마주치게 되었다.
대안 대사는 술에 취해 거지꼴을 하고서는 가마 위의 원효대사에게,
부처님 말씀에... 위도 없고 아래도 없으며. 있음도 없고 없음도 없는데. 어떤 놈은 복이 많아 사람위에 사람이 타고 가며. (사람을 가마에 태우고 가는 것) 좋은 옷을 걸치고 , 좋은 곳만 들락거리느냐……?
또 어떤 놈은 천지가 내 집이고. 내 법당이니 걸림도 없고.막힘도 없으며.천지가 다 내 것인데 어떤 놈이 더 편한가. 어디 한번 해보자 하며 고함을 치니 그 소리가 원효에게는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는 소리로 들렸고 다른 사람들은 술 먹은 미친 중놈의 미친 소리로 들렸다. 그러나 원효는 자기 신분 때문에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그날따라. 비가 부슬 부슬 내렸고. 왕실에가 설법을 하는데. 요석공주가 비에 옷이 젖어. 속살이 살짝 들어다 보이는 요염한 자태로 앉아있었다 순간적으로 동하는 자신을 보면서 잠을 설치고. 다음날. 원효는 대안 대사를 찾아 나섰다.
토굴 안에는 죽은 어미 곁에 오소리(호랑이?) 새끼가 끙끙대며 슬피 울고 있었다. 그 소리가 너무 애처롭고 슬퍼서 . 목탁을 치며 염불을 해주고 있는데. 대안대사가 돌아와 목탁을 치고 있는 원효를 보며 뭐하는 거냐고 물으니 원효는 어미가 죽어 울고 있기에. 염불을 한다고 했다.
대안대사는 혀를 차며 쯔쯔쯔 ……. 배고플 때, 밥을 주는 것이 염불이니라……. 하며 아랫마을에서 동냥해온 젖을 물리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원효는 또 한 번. 대안에게. 매를 맞는 기분이었다.
아~하. 미친 승이 아니라,고승 대덕 이로구나 원효는 정식으로 무릎을 꿇고, 자초지종 자신의 얘기를 했다. 그러자 대한 대사는. 좋다. 좋다. 날 따라와라.
"대안대사"는 원효를 대리고 서라벌 (신라의수도)의 어느 대포 집에 들어가 여자 둘을 사이에 두고서, 술을 마셨다.
원효는 술은 않먹는다.여자도.멀리한다. 하며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술에 취한 대안 대사... 진리를 가는 데는, 마음 따로, 몸 따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이니라.
극락을 갈려면. 추락을 맛보아야지. 극락을 가는 거야……. 라고, 원효에게 말했다 이래도 법에 걸리고, 저래도 경계에 걸려서는 . 영원히 한발자락도 나갈 수가 없을 것이야.
요석이 꾀거든, 하루 밤을 보내고. 목탁을 쳐 주거라……. 그리고 그걸 뛰어 넘어라…….
원효는 요석을 사모하는 마음과 이름 있는 승려의 신분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겪었으리라.
자극을 받은 원효는 답답한 마음에 다음과 같은 노래를 지어 부르며, 거리를 돌아다닌다.
誰許沒柯斧 我斫支天柱 (수허몰가부 아작지천주)
“누가 내게 자루 없는 도끼를 주겠는가...? 내가 하늘을 받칠 기둥을 깎으리라” 라는 의미의 노래다.
사람들은 원효가 거리에서 부르는 이 노래가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지만 무열왕은 원효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아하~ 마침내 내 자식이 대사의 마음을 움직였구나. 항시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공주를 애석해 하던 태종무열왕이 이 노래를 듣고는 “대사가 필경 귀부인을 얻어 귀한 아들을 낳고자 하는구나.
나라에 큰 현인이 있으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하고는 그런데 대사가 내 딸과 결혼하려고 과연 승복까지 벗을까?” 생각하던 무열왕은 어느 날 신하를 시켜 거리를 돌아다니는 원효를 찾아 요석 궁으로 인도해 들이게 한다.
신하는 어명을 받들어 원효를 찾아다니다가 문천교라는 다리를 지나고 있는 원효와 맞닥뜨린다. 그 신하가 자신을 찾아내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고 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던 원효는 신하의 모습이 먼 곳에서 보이자 짐짓 발을 헛디딘 체 문천교 아래 냇물에 풍덩 빠진다.
요석 궁으로 보내진 원효의 젖은 옷을 갈아입힌 요석공주는 단 3일간의 꿈같은 시간을 보낸다.
원효의 나이 39세에서 44세 사이에 일어난 일로 추정된다.
원효와 요석은 삼일 낮과 밤을 함께 했다 꿈같은 삼일이 지나고 . 원효는 요석에게 얘기를 하고 떠나려고 하니.
요석공주. 원효대사 가슴을 만지면서. 어딜 가시든지. 태산보다도 높고 바다보다도 깊고 넓은 이 가슴 속에 티끌보다도 작은 먼지보다도 적은 나를 어느 한구석 기댈 데는 없는지요? 했다
원효는 있다도 없고 없다도 없으며 감도 없고 옴도 없으며. 더불어 나도 없는데. 그대가 어디 머물 자리가 있겠느냐?
요석은 원효를 그렇게 떠나보냈다. 그리고 그 후 단 3일간의 사랑으로 원효가 떠나가고...
요석공주는 . 배가 불러. 설총을 낳은 것은 655년에서 660년. 사이이다
후일 신라 십현의 한사람이며 우리 옛 문장 "이두"를 완성시킨 설총이라는 원효의 아들을 낳아 원효를 바라보듯, 훌륭하게 키우며 먼발치에서. 몸을 숨기며 소식을 듣고 보곤 했는데. 죽을 때까지 정식으로는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원효는 한바탕 꿈이요. 허깨비 였구나~! 하면서 이름 모를 작은 절로 가서. 승복을 벗고 불목한이 되어 다시 행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수행을 했고. 경기도 소요산 자해암에서 수행중 깨친 것이다.
한 생각 일어나면 만법이 일어나고. 한 생각이 멸하면 만법이 멸한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깨우치며 . 화엄경을 달통해 자기 것으로 만들고.번역하며 수많은 저술을 남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