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부인(魏夫人) 신선 이야기
어려서부터 도가 학설을 탐구...
위부인(魏夫人)의 이름은
화존(華存)이고 자(字)는 현안(賢安)이며 임성(任城)사람이다.
서진(西晉)시대 사도 문강공(文康公) 위서(魏舒)의 딸이다.
위화존은 어려서부터 도가(道家)학설을 깊이 탐구하는 것을 좋아했다.
늘 혼자 묵묵히 앉아 사색하기를 즐겼는데,
그 모습이 아주 정성스러웠다.
그녀는 항상 노자, 장자를 읽었고
기타 유학의 사서오경, 제자백가의 저술 등에 대해서도
밝게 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녀는 천상에서 소요 자재하는 신선을
매우 부러워하며 앙모하였고
몸과 마음을 경건히 하여 도가의 진수를 음미하고 있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자신도 언젠가는 신선들처럼 날아올라
하늘로 되돌아가서 선계(仙界)에 오를 수 있다고 믿었다.
처녀 때부터 도가 장생술을 실천
위화존은 혼자 신선을 동경하며 불로장생을 원해
늘 검은깨(胡麻)와 복령환을 먹었다.
호흡법인 낡은 숨을 내뱉고 새로운 기운을 받아들이는
토납법(吐故納新法)을 하였으며
마음을 고요히 하는 양생법을 추구하고 실천하였다.
친척들이 수시로 왕래하면서 그녀를 찾았으나
위낭자는 매번 피하고 만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방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위낭자는 수차례 집을 떠나 한적한 곳에 가서
혼자 있기를 희망하였으나,
부모들의 반대에 부딪쳐 무산되었다.
위낭자가 도가공부에 빠져있는 잠깐 사이에
그녀는 어느덧 24살이 되었다.
부모들은 과년한 딸을 그냥 둘 수 없어
남양사람 유문(劉文)에게 시집보냈다.
자식을 낳았으나, 도심(道心)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다
시집간 위화존은 아들 둘을 낳았는데
장남이 유박(劉璞)이고 차남이 유하(劉瑕)이다.
위화존의 남편은 후에 수무현의 현령이 되었다.
위부인은 자식 둘을 낳고 살아도, 도를 향한 그 마음이나
그윽하고 고요한 것을 찾는 습성이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도를 구하는 정성스런 마음은 도리어 더욱 굳건해졌다.
위부인은 두 아이가 점점 자라서
아이들 자신이 스스로 독립하여 움직일 정도가 되자,
가족과 격리된 조용한 방에 혼자 들어박혀
그곳에서 계를 지키면서 생활하였다.
이런 생활을 한지 삼 개월 정도 되던 어느 날,
홀연 한 무리의 신선들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위부인이 거처하는 방안으로 들어온다.
방안에 신선들이 나타나다
그 자리에 나타난 신선들은
태극진인 안도명(太極眞人 安度明),
동화대신방제청동군(東華大神方諸靑童君),
부상벽아양곡신왕(扶桑碧阿暘谷神王),
경림진인(景林眞人),
청허진인 왕포(淸虛眞人 王褒)등 이었다.
청허진인이 위부인에게
“부인은 지난 수년간
줄곧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이 숙달되었다고 들었다.
일심으로 선계에 오르기를 바랐다.
진실로 부지런히 힘쓰는 그 모습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복하게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부상대제군(扶桑大帝君)께서는 나에게 특명을 내려
장차 네가 속세를 벗어날 수 있는 비결을
너에게 전수하라고 하셨다.”한다.
신선 청동군이
“이 분 청허진인(淸虛眞人)은
곧 너의 사부님이시다.”라고 한다.
태극진인이 “부인은 그 동안 고심하게 도를 구했다.
이제 이 ‘도(道)’를 마침내 얻었다.”고 한다.
경림진인이 이를 보충해서
“천상에서 부인의 근면과 지극한 덕에 모두 감동하였다.
태극진인께서 이미 너의 이름을 신선들의 명부(仙籍)에 넣었다.
너는 이제 더욱 분발하여라.”한다.
*신선이, 가르침을 주다
신선 청동군(靑童君)이 위부인에게
“그러나 앞으로 네가 더욱 높은 도의 경지를 추구하지 않거나,
오늘 전수받은 경전을 익숙하게 배우지 않는다면
진정한 선도(仙道)를 성취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이후, 우리들은 다시 양곡산(暘谷山)에서 상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에 대해 너는 비밀을 잘 지키거라!”하였다.
청허진인 왕포는 같이 온 시녀 "화경조" 등에게 명하여
옥으로 만든 함을 열게 하고
‘태상보문경(太上寶文經)’ 등 31권을 꺼냈다.
그리고는 친히 경전을 위부인에게 건네주었다.
청허진인은 책을 건넨 뒤 위부인에게
“나는 아주 오래전에 이 보배로운 경전을 통해
공부하여 도를 이루었다.
그 때, 공교롭게도 ‘남극부인(南極夫人)’과
‘서성왕군(西城王君)’을 만나게 되어
이 경전 31권을 주었다. 수련하여 신선이 된 후
그들은 ‘동천선왕(洞天仙王)’이 되었다.
나로부터 시작하여 단지 7명만이 이 책을 전해 받을 운명이다.
오늘 내가 특별히 너에게 전해준다.”하면서 말을 마쳤다.
그리고 청허진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북쪽을 바라보고
손에 경전을 들고 축복을 빌면서
“이 ‘태상보문경(太上寶文經)’ 등은
옥황상제께서 친히 하사하신 것으로
위화존 너에게 전수한다.
화존은 지금부터 응당 청규(淸規)를 잘 준수하고
마음을 다해 깨닫도록 하라.
오직 수련하여 비선(飛仙)이 되도록 하라.
만약, 내가 주는 이 경전을 함부로 누설한다면
반드시 그 재앙이 가족 전체에 미칠 것이며,
몸은 지옥의 귀신으로 변하고,
시체는 흐르는 물속에 영원히 잠길 것이다.
이제 하늘의 명을 삼가 위화존에게 고한다.”라고 말했다.
경전 종이는 흰 옥, 글자는 푸른 옥으로 새겨져...
위부인이 진귀한 경전을 받아서 펼쳐보니
종이가 모두 흰 옥으로 되어있고
글자는 모두 푸른 옥으로 새겨져 있는데
그 화려하고 진귀한 것이 심상치 않았다.
경림진인 또한
‘황정내경경(黃庭內景經)’을 꺼내어
위부인에게 전수하였다.
밤이건 낮이건, 이것을 전심하여
공부하라고 당부하면서
만 번을 독송한 후에는
비로소 요괴를 능히 똑똑히 관찰할 수 있고
신체의 육부(六腑)를 안정시킬 수 있어
늙음을 되돌려
다시 젊음을 회복(返老還童)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 자리에 있던 신선들은 교대로 가르침이 끝나자,
흥에 겨운 듯 목소리를 높여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였다.
태극진인은 ‘북한옥녀(北寒玉女)’ 송연연(宋聯娟)에게
운오를 타게 하였다.
청동군은 ‘동화옥녀(東華玉女)’ 연경주(烟景珠)에게
편종을 두드리게 하고,
양곡신왕은 ‘신림옥녀(神林玉女)’ 가굴정(賈屈廷)에게
봉소(鳳簫)를 불게 하였다.
신선들은 음악소리와 노랫소리에 파묻힌 채
구름이 살짝 낀 하늘로 서서히 날아올라 사라졌다.
신선들, 밤마다 나타나 가르침을 주다
이날 이후, 한동안 여러 진인과 신선들이
매일 밤마다 위부인 방에 나타나서, 선도를 가르쳤으나
옆방에 거처하는 위부인의 남편 유문(劉文)은 까맣게 몰랐다.
진(晉) 성제(成帝) 함화(咸和) 9년(334)에
위부인은 마침내 청동군, 청허진인 등의 안내를 받아
양곡으로 가서 하늘로 날아올라 신선이 되었다(飛升成仙).
위부인은 인간세상에서 83살까지 살고 죽었는데,
죽고 난 후...
그녀의 관속에 시체는 없고, 보검 한 자루만 있었다고 한다.
‘자허원군(紫虛元君)’으로 불리다
신선계에서 위부인은
‘자허원군(紫虛元君)’이라는 도호를 받았으며
‘남악부인(南岳夫人)’으로 봉해졌다.
중원 오악중 남악 형산(衡山)을 통할하는 것 외에
천태산 ‘대곽동천(大곽洞天)’을 다스린다고 한다.
당나라 서예가 안진경은
‘남악 위부인 비(南岳魏夫人碑)’에서
위부인이 경전을 얻어
도를 이루게 되는 과정을 상세히 썼다.
위부인이 제도하여 진인이 된 남자제자는
양희(楊羲), 허목(許穆), 허옥부(許玉斧) 등이 있고,
여자 제자도 많았다.
그중 가장 유명한 여성이 황영휘(黃靈徽)인데
나이가 80살을 넘었으나 용모가 어린 처녀와 같았으므로
‘화고(花姑)’라는 아호를 얻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위부인이 상청경(上淸經)을 전파하여
도가의 중요 교파가 되었는데
이를 상청파(上淸派)라고 부르며
상청파의 문을 연 개산조사(開山祖師)로 받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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