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신채호(丹齋 申采浩, 1880-1936)
1880년, 12월 8일. 충남 대덕에서 출생
1887년, 고향인 충북 청원군 귀래리로 이사 이후, 이 곳에서 수학하고 성장함
1898년, 성균관 입교, 독립협회 운동에 참여
1901년,「문동학교」에서 애국계몽운동 전개
1905년, 성균관 박사됨.「황성신문」 논설위원에 위촉됨
1906년,「대한매일신보」에 논설진으로 초빙됨
1908년, 순한글잡지 「가뎡잡지」를 편집 발간
1910년, 안창호 등과 중국으로 망명
1911년, 블라디보스톡에서 「권업신문」의 주필로 활동.
1914년, 옛 고구려땅 답사 이후, 대고구려 주의적인 역사 의식 갖게 됨.
1915년, 북경에 체류하며 「조선상고사」의 집필
1916년, 소설 「꿈하늘」 집필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충북)에 피선됨.「신대한」을 창간하고 주필 활동
1920년, 박자혜 여사와 북경에서 결혼
1922년, '의열단'의 행동강령인「조선혁명선언」을 기초
1924년, 무장독립운동단체 「다물단」의 선언문을 기초
1925년, '무정부주의 동방연맹'에 가입함
1927년, '신간회'의 발기인으로 참여
1928년, 소설 「용과 용의 대격전」 발표. 무정부주의 동방연맹 국제위폐 사건에 연류되어 체포됨.
1930년, 대련법정에서 10년형을 선고받음. 여순감옥으로 이송됨
1936년, 2월 21일. 여순감옥에서 순국함. / 글-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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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오(詠誤)-신채호(申采浩)
我誤聞時君誤言(아오문시군오언)
欲將正誤誤誰眞(욕장정오오수진)
人生落地元來誤(인생락지원래오)
善誤終當作聖人(선오종당작성인)
내가 잘못 들었을때는, 그대가 잘못 말했으니
잘못을 바로 잡으려는데, 그 잘못을 누가 참되다 하나!
사람 세상에 태어난 것이, 원래 잘못인데
잘못된 것 잘 고치면, 끝내는 성인이 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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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해십월초이일(癸亥十月初二日)-신채호(申采浩)
계해년 시월 이일에-신채호(申采浩)
天空海闊晋悠悠(천공해활진유유) : 하늘은 비고 바다는 넓어, 모두가 아득하고
放膽行時便自由(방담행시편자유) : 마음 내키는 대로 다니니, 너무나 자유롭구나.
忘却死生無復病(망각사생무복병) : 죽고 사는 일 잊으니, 다시는 병도 없고
淡於名利更何求(담어명리갱하구) : 명예와 이익에 담박하니, 다시 무엇을 구하리오.
江湖滿地堪依棹(강호만지감의도) : 강과 호수 땅에 가득하여 배를 탈 수 있고
雪月邀人共上樓(설월요인공상루) : 눈 내린 밤 달은 나를 맞아, 함께 누각에 오른다.
莫笑撚自吟獨苦(막소연자음독고) : 수염 꼬며 혼자의 괴로움 읊음을 비웃지 말라
千秋應有伯牙酬(천추응유백아수) : 천추 뒤에 내 마음 알아 줄 사람, 응당 있으리라.
술회1(述懷1)-신채호(申采浩)
회포를 적다-신채호(申采浩)
善惡贊愚摠戱論(선악찬우총희논) : 선과 악은 모두 다, 장난거리거늘
耶回孔佛瞞相嗔(야회공불만상진) : 예수교 회교 유교 불교가, 부질없이 서로 싸운다
辨看靑白之非眼(변간청백지비안) : 좋게 보고 밉게 보는 것이 바른 눈 아닌데
散作塵埃倒是身(산작진애도시신) : 흩어져 먼지 되는 것, 그게 바로 이 우리 몸이라.
妄念慈悲還地獄(망념자비환지옥) : 망녕되이 생각하면, 자비도 지옥이요
任情屠殺使天人(임정도살사천인) : 마음에 맡겨두면 살생도, 하늘이 시키는구나!
吾人來去只如此(오인래거지여차) : 우리 인생 오고감도, 다만 이와 같나니
捨假求眞更不眞(사가구진갱불진) : 거짓 버리고 참을 구함이, 도로 참이 아니구나.
술회 2 (述懷 2)-신채호(申采浩)
회포를 적다-신채호(申采浩)
鷄狗於人本無罪(계구어인본무죄) : 닭이나 개가 사람에게, 본래 지은 죄 없어
只爲口腹日殺之(지위구복일살지) : 다만 자기 먹는 날 위해, 죽이는 것이라.
惟有强權而已矣(유유강권이이의) : 오직 하나 강한 권세 있을 뿐이니
空言仁義欲何爲(공언인의욕하위) : 공연히 인과 의를 말함은, 어찌된 일인가!
席門談道眞适士(석문담도진괄사) : 앉은 자리에서 도를 말하는 교활한 선비
手劒斬人是快兒(수검참인시쾌아) : 칼 잡아 나쁜 사람 없앰이, 진정 쾌남이도다.
云云聖哲果何者(운운성철과하자) : 성현이라 일컫는 사람은 과연 어떤 자인가!
高標二字瞞相欺(고표이자만상기) : 두 글자 높이 세우고, 서로를 속이는구나.
몽 김연성(夢 金演性)-신채호(申采浩)
꿈에 김연성을 보다-신채호(申采浩)
滿天風雨一燈寒(만천풍우일등한) : 하늘 가득 비바람 차가운 등불
共話聯衿到夜란(공화련금도야란) : 밤 늦도록 마주하고 이야기 나누었다.
岐路十年成遠別(기로십년성원별) : 떠난지 십 년인데, 영원한 이별인가!
雲山萬里阻平安(운산만리조평안) : 구름 산 만리에 안부가 막혔구나
孤忠本爲韓仇出(고충본위한구출) : 본래는 원수 갚으려는 외로운 충절인데
壯士寧愁蜀道難(장사녕수촉도난) : 장사가 어찌 길 험함을 걱정하리오!
夢裡相逢猶不易(몽리상봉유불이) : 꿈속에서 만남도 쉽지 않았는데
回嗔晨磬太無端(회진신경태무단) : 돌아보니, 새벽 경쇠소리 너무 무심하여라.
북경우음(北京偶吟)-신채호(申采浩)
북경에서 우연히 읊다-신채호(申采浩)
寂寂桃燈坐(적적도등좌) : 적적하여 등불 돋우고 앉았으니
非爲守六庚(비위수육경) : 여섯 도리를 지키기 위함은 아니도다
石才慙後死(석재참후사) : 재주 없는 사람이, 늦게 죽음이 부끄러워
無漏悟前生(무루오전생) : 다른 생각이 없다면, 내 전생을 알겠도다.
世薄難爲客(세박난위객) : 세상 인심 야박하니, 길손 되기도 어려고
春來若有聲(춘래약유성) : 봄이 되니, 무슨 소리 들리는 듯하도다.
一朝貧富異(일조빈부이) : 하루 아침에 빈부 달라지니
始識故人情(시식고인정) : 친구의 마음도 변하는 걸, 비로소 알았도다.
백두산도중1 (白頭山途中 1)-신채호(申采浩)
백두산 가는 길에-신채호(申采浩)
人生四十太支離(인생사십태지리) : 인생 사십년이, 너무도 지리하여
貧病相隨暫不移(빈병상수잠불이) : 가난과 병, 잠시도 날 떠나지 않는구나!
最恨水窮山盡處(최한수궁산진처) : 한스러워라, 물 다하고 산 다한 곳
任情歌曲亦難爲(임정가곡역난위) : 내 마음대로 노래부르기도 어렵구나.
명상음악 : 청산에 머물다 가리라.
조선 상고사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著
최근 백여년의 역사를 돌이켜 볼때, 우리나라에는 참으로 위대한 많은 선조들이 있음을 발견한다. 그런 분들 중에는 나라가 어려운 지경에 빠졌을 때 자신의 한 몸을 던져 나라와 민족을 구하려 한 독립운동가도 있고, 사상가로, 학자로 혹은 예술가로 활동한 분들도 있다. 그런 분들 중에서도, 우리나라의 역사를 연구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한편 그 자신이 독립운동에 직접 뛰어들어 조국의 광복을 위해 희생된 분이 있으니 신채호 선생이 바로 그분이다.
신채호는 근대 우리나라가 낳은 위대한 선각자의 한 분이다. 그는 한말 민족적으로 대단히 불안한 시기에 태어나 나라의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교육 언론 역사연구 활동에 종사하였고, 나라의 주권이 일본에 빼앗긴 일제하에서는 해외로 망명하여 민족사 연구와 상해임시정부 등 독립운동에 헌신하다가 결국에는 감옥에서 일생을 마친 분이다.
신채호는 1928년 4월에 한국인을 중심으로 '무정부주의동방연맹 북경회의'를 조직하는 데에 주동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회의에서 무정부주의동방연맹의 선전기관을 설립하고 일제의 관공서를 폭파하기 위해 폭탄제조소를 설립하기로 결의하였다. 신채호는 잡지발행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려고 북경우무(郵務)관리국 외국위체계(外國爲替係)에 근무하는 대만 사람 임병문과 협의하고 외국위체(換)를 위조하여 그것을 찾으려고 5월 8일경 대만 기륭항(基隆港)에 상륙하려다가 수상서원(水上署員)에게 체포되었다.
대련(大連)으로 호송된 그는 7개월간 미결감에서 많은 고통을 받은 후에 재판에 회부되었다. 신채호는 위체를 위조한 '사기행각'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느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우리 동포가 나라를 찾기 위하여 취하는 수단은 모두 정당한 것이니 사기가 아니며 민족을 위하여 도둑질을 할지라도 부끄럼이나 거리낌이 없다"고 답변하였다고 한다. 여기서도 그의 무정부주의운동이 민족독립운동의 한 방편임을 알 수 있다.
그는 1929년 5월 9일 10년형의 언도를 받고 중사상범으로 다루어져 여순(旅順)감옥의 독방에 수감되어 복역하였다. 1935년 그의 건강이 매우 악화되어 형무소 당국에서는 보호해 줄 사람이 있으면 출감시키겠다고 통고하였다. 친지들은 그의 친구이자 일가벌되는 친일파 부호의 보증으로 가출옥할 것을 종용하였으나, 옥중에 있던 그는 친일파에게 몸을 맡길 수 없다는 대의를 내세워 이를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그의 절의를 마지막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일화 한토막이다.
신채호가 수감 중에 있을 때, 그의 친구들은 그의 국사연구 업적을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하였다. 홍명희 등은 1924-25년에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여러 논문들을 <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草)>라는 이름으로 1930년 6월 15일에 조선도서주식회사에서 출간하였다. 그리고 일찍부터 신채호의 학문과 절의를 흠모하고 있던 안재홍은 <조선사(朝鮮史, 뒷날 '조선상고사'라는 이름으로 알려짐)>를 1931년 6월 10일부터 10월 14일까지 103회에 걸쳐 당시 자신이 사장으로 있던 조선일보에 연재하였고, 이어서 <조선상고문화사(朝鮮上古文化史)>를 1931년 10월 15일부터 12월 30일까지, 그리고 1932년 5월 27일에서 31일까지 모두 40회에 걸쳐 역시 조선일보에 연재하였다.
1936년 2월 18일, 그는 홀로 있던 감방에서 뇌일혈로 쓰러졌다. 사흘 뒤인 2월 21일(음 1월 28일) 오후 4시 20분, 당대의 가장 위대한 근대민족주의 역사가요 행동적인 독립운동가였던 신채호는 이국의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서 아무도 지켜보지 못한 채 외롭게 그의 평생을 순국의 제물로 거룩하게 바치니, 향년이 57세였다. - - -신채호 그는 누구인가? 계속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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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편 고구려의 쇠미(衰微)와 북부여(北扶餘)의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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