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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선소전[列仙小傳]_ 청루의 여인, 조문희[曹文姬]

Demian-(無碍) 2012. 11. 18. 12:35

열선소전(列仙小傳) 


청루의 여인, 조문희(曹文姬)


▲ 그림. @박영철

재색을 겸비한 기녀

오대십국의 혼란기를 조광윤이 평정하고 
개봉에 도읍하여 세운 나라가 北宋북송(960∼1126)이다. 
북송시절, 개봉의 홍등가는 번창했다. 

이때, 어느 청루(
靑樓)에 몸을 맡긴 
조문희(曹文姬)라는 기녀(妓女)가 있었다. 
조문희는 4∼5세부터 글자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글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아서, 
책을 들고 다니면서 옹알옹알 읽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한번 읽기만 하면 
아무리 어렵고 뜻이 깊은 문장이라도 
어린 조문희는 그 뜻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으므로 
주위사람들은 그저 놀랄 뿐이었다. 
또 한 번 읽은 문장은 십중팔구 암송할 수 있었다. 

10살쯤 되었을 때, 조문희는 
서예에 푹 빠졌는데, 
여백이 남아있는 종이나, 비단 휘장, 창문 장막 등에 
그녀의 필적을 남겼다. 어떤 때에는 
하루에 거의 천자정도를 쓰기도 하였다. 
그녀의 필법은 뛰어나, 그 당시의 周越주월, 馬端마단 등 
벼슬아치나 문인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조문희에게 
書仙서선이라는 雅號아호를 지어주었다. 
기방의 기생어미가 조문희에게 
악기 타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하면 
조문희는 그런 것은 천한 일이라고 하고, 
단호히 거절했다. 

조문희의 이런 처신을 알게 된 벼슬아치나 
뛰어난 선비들은 그녀를 존중하게 되었으며, 
또 그녀의 명성도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조문희는 비록, 妓女기녀로 轉落전락하였으나 
도리어 진흙탕 속에서도 물들지 않았다. 
청루의 기생어미가 
조문희를 이름난 기생으로 키우려고 하였으나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조문희가 어느덧 십오륙 세가 되자, 
그녀를 찾는 남자가 점점 더 많아졌다. 
좋은 옷을 입고 값비싼 마차를 탄 권문세가의 귀공자들이 
앞 다투어 혼인의 연분을 맺고 싶어 했다. 
젊은 귀공자들 중에는 
조문희를 妓籍기적에서 빼내기 위해 
그녀의 몸값을 대신 지불하겠다면서 
황금을 내놓으려고 하는 자가 부지기수였다.

시를 짓게 하여 남자를 선택하다.

그러나 조문희는 
자신을 요구하는 수많은 남성들에게 
공개적으로 특별한 요구조건 하나를 내세웠다. 
자신을 추종하는 사내들에게 
자신에게 시를 한수 지어 바치라고 했는데, 
제출한 시중에서 그녀의 뜻에 맞으면 
그때 고려해보겠다고 선포했다. 

이 말이 알려지자, 그녀의 청루에는 
장편 시나 단편의 글, 아름다운 글귀나 
유려한 문장 등이 매일 수북이 쌓여갔다. 
귀공자들이 보내온 많은 求愛구애의 글 중에서 
사천 岷江민강 출신인 임(任)씨성의 서생이 
최종 행운을 얻었다. 
이때 임서생이 쓴 시는 다음과 같았다.


玉皇殿上掌書仙 옥황전상장서선

一染塵心謫九天 일염진심적구천
 
莫怪濃香薰骨泥 막괴농향훈골니

霞衣曾惹御爐烟 하의증야어로연


(그대는)
옥황상제가 계시는 전각에서, 
문서를 장악하던 신선이었는데

속세에 한번 물들어 
하늘에서 인간 세상에 귀양 왔다.

(기생이 되어)짙은 향기와 분 냄새가, 
뼈 속까지 스몄다고 탓하지 마라.

신선의 옷을 입고, 
일찍이 상제 곁에서 화로의 연기를 쬐었다. 

(즉, 옥황상제를 가까이서 모셨던 사람이다.)

임서생의 시를 읽어본 조문희는 
"그 사람은 나의 지난 경력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 것이야말로 바로 緣分연분이라는 것이다"한다.

조문희는 바로 자신을 임서생에게 맡기기로 결정했다. 
청루의 기생어미도 그녀의 뜻을 저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조문희는 몸값을 지불하고 
妓籍기적에서 벗어나 임서생과 혼인을 맺었다.

 

▲그림. @박영철


꿈같은 신혼 시절이 흘러가고...

임생과 조문희는 
한 쌍의 원앙 같은 부부가 되어 
꿈처럼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 
젊은 부부는 꽃이 필 때면 
꽃 앞에서 함께 술을 마시고, 
달밤이면 달 아래서 시를 지었다. 
서로 간에 사랑과 믿음이 깊어 
하루하루의 생활은 행복과 아름다움으로 가득 찼다. 

신혼의 꿈과 같은 시간도 순식간에 5년이 지나갔다. 
조문희의 나이도 어느덧 24세가 되었다. 
이해 3월 말경 어느 날 부부 두 사람은 
교외로 봄나들이를 하였다. 
술을 마시고 시를 짓고 악기를 연주하면서 
가는 봄을 아쉬워하였다. 
이때 조문희는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하다가 
잠시 망설인다. 그러다가 시 한수를 지어 읊조린다.


仙家無夏亦無秋 선가무하역무추

紅日淸風滿翠樓 홍일청풍만취루
 
況有碧所歸路穩 황유벽소귀로온

可能同駕五雲遊 가능동가오운유


신선세계는 여름도 없고, 또한 가을도 없는데

붉은 해와 맑은 바람이, 아름다운 누각에 가득하다.

하물며 푸른 하늘로 돌아가는 길은, 잘 갖추어져 있는데

함께 오색구름을 타고, 노닐 수 있다네.

이 시를 읽어본 남편 임생은 
조문희를 칭찬하기 위해 머리를 들고 아내를 바라보니 
그녀의 얼굴에 눈물이 주루 룩 흐르고 있다. 
곧 이어서 조문희는 그만 울음을 터뜨린다. 

젊은 부부 함께 승천하다.

조문희는 임생에게 
"저는 이제 더 이상 당신을 모실 수 없습니다. 
사실 그동안 감춘 것도 없지만, 
저는 천상의사서선인(司書仙人)-(책을 관장하는 선인)이었습니다. 
마음을 한번 잘 못 움직여 벌을 받아 
인간 세상에 귀양을 온지, 어느덧 만기가 되었는데, 
이제 돌아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나와 함께 천상으로 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천상이 인간 세상에 비해, 훨씬 더 좋지 않을까요...?"한다. 

임생은 사실, 그녀와 이별을 몹시 아쉬워하였다. 
그녀가 지은 시를 본 후, 
그녀가 하늘로 떠나간다는 사실 앞에 망연자실해 있는데, 
같이 하늘로 가자는 이 말을 듣자, 막다른 길에서 
다시 살길을 찾았다는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으나, 이것이야말로 
마음속으로 진실로 바라던 바였다. 
그래서 좋다는 표시로 연거푸 머리만 꺼덕일 뿐이었다. 

두 사람이 집으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 
돌연, 선악(仙樂)이 공중에서 울리고 
기이한 향기가 집안 가득하다. 
구름 속에서 붉은 옷을 입은 선관이 
옥으로 만든 판대기와 전문(篆文)으로 씌어진 
붉은 책 한권을 들고 내려온다. 

조문희에게, "(李賀)이하(당나라 시인, 790∼816)가 
천상에서 막 "玉樓記"옥루기의 원고를 완성했다. 
옥황상제께서, 당신을 불러 돌에 글자를 새기게 했다. 
꾸물거릴 시간이 없으니, 빨리 가자!"라고 한다.
이때, 집 근처에서 이 장면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매우 이상하다고 하면서 몰래 쑥덕인다. 

"이하
(李賀)는 당나라 시인이며, 
시간상으로는 이미 3백년이 지났다. 
어떻게 막 "옥루기"를 완성할 수 있단 말인가? 
혹시 착오가 아닌가?"한다. 

조문희는 웃으면서
 "당신들은 어떻게 알겠는가? 
인간 세상 3백년은 
선계(仙界)에서는 불과 잠깐의 시간에 불과하다." 

말을 마친 후, 남편 임생을 잡아끌면서 
상서로운 구름과 난새와 봉황에 둘러싸여 
천천히 공중으로 날아올라 저 멀리로 사라진다. 

이 날, 장안성에서 
이 신기한 장면을 본 사람이 수 천명이상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조문희와 임생 두 사람이 머물렀던 곳을 
"서선리(書仙里)"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