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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感想>사청사우(乍晴乍雨) / 매월당-김시습

Demian-(無碍) 2011. 6. 26. 18:38

<漢詩感想>

 

사청사우(乍晴乍雨) / 매월당-김시습

 

 

 

근래에 들어와서 여러가지 주변상황이 조금 부산스러웠다,

해서 한시감상도 미루고 미루다 일전에 부설거사의 팔죽시를

올린것인데, 어쩌면 나의 가슴에 많이 닿아서였는지 모른다.

불로그를 하면서도 지난번 언제인가 여러 상념이 있다 했는데

그래도 다잡고 열심을 다 하리라 다짐도 햇다.

우리나라안의 사정은 날이 갈수록 뭔가 모를 복잡한것이 있는것 같고,

꼬여지고 있다는 예감이 많이 들기도 하다.

경제적인 문제, 정치적인 상황, 여와 야의 생각들의 문제...

대학의 반값등록금 문제, 무상급식 이야기...

어느것이 바른 생각인가도 좀 헤집어 볼 일이라는....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일본 원전사고는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니 더욱 그렇다.

이미 방사능물질이 태평양을 건너 유럽 바다에까지 영향이 미쳐

생선들에서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었다니, 어찌 그 쪽 사람들만의 문제인가?

가족들과 식탁에 앉아서 내가 '84년에 읽은 "죤 네이스비트"가 쓴

'거대한 새물결(메가트랜드)'에 나오는 호스피스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다.

자조 자립하는 삶의 문제 말이다. 27년전의 예언이 지금 우리들 삶에 와 닿아 있으니 말이다.

 

두어달전에 교회의 남선교회에서 나더러 언제 한시 한수 감상할 기회를 만들자고 하여

수락하고 어떤 글을 선할까...?하고  고민하다 난세에 매월당 김시습의 글이 좋겠다 하고

이 글을 선하게 되었다. 운필은 쉬지않고 계속하여야 하는 것을 거으름 때문에

어찌 맘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숙제를 끝낸 학동의 마음이니 참 우습다는 생각이다./夢齋-이현준

 

                                                                         

                                                     

                            乍 晴 乍 雨((사청사우) /김시습

 

乍晴乍雨雨還晴 (사청사우우환청)

天道猶然況世情 (천도유연황세정)

譽我便應還毁我 (예아변응환훼아)

逃名却自爲求名 (도명각자위구명)

花開花謝春何管 (화개화사춘하관)

雲去雲來山不爭 (운가운래산부쟁)

寄語世人須記憶 (기어세인수기억)

取歡無處得平生 (취환무처득평생)

 

 

비 오락 볕 나락 흐리락 개락

천도도 그렇거니, 하물며 세정이랴

날 기리는 이, 문득 날 헐 것이오

이름 숨김은 도로 구함 일레라

꽃이야 피든 지든 봄은 무심코

구름이야 가건 오건, 산은 말 없네

세상 사람들이여, 유념하시라

한평생 낙 붙일 곳 땅엔 없느니.

 

 

作者

 

金時習-1435~1493, 세종17!24)

             생육신의 한사람. 자 悅卿(열경), 호 淸寒,당호 梅月堂(매월당) , 東峰(동봉). 본관 강릉

             어릴 때 신동으로 이름이 났으나 20세때 세조 찬위의 소문을 듣고, 중이 되어 방랑을 하며

             전국을 9년간 유랑하여 宕遊錄(탕유록)을 쓰고 경주 남산에서 머물며 최초의 한문 소설인

             金鰲新話(금오신화)를 썼다. 49세에 환속하였다.

             儒佛道(유불도)사상을 두루 갖춘 탁월한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했다.

             저작물로 이 있으며 시호는 淸簡(청간)이다.

 

 

乍晴-오던 비가 그치고 잠간 갬

還雨-갯다가 도로 비가 옴

天道-천지자연의 도리

猶然- ~도 오히려 그러하거니 하물며 ~~랴?

世情-세상사람들의 인정

譽我-나를 기림

便應-문득 응당히

還毁我-도리어 나를 헐뜯음

逃名-명예를 피하여 구하지 않음

求名-명예나 명성을 구함,

花謝-꽃이 떨어짐

春何管-봄이 어찌 주관 할것인가? 봄의 주관이 아니라는 반어

山不爭-산은 다투지 않음

寄語-전하여 말함

取歡無處得平生-평생정착하여 얻을 만족할 만한 기쁨이란 아무데도 없음.

부귀영화도 무상한 것이라 한평생을 걸만한 기쁨은 되지 못한다는 뜻

 

感賞을 위한 말

 

위에 언급한 매월당에 대한 소개로는 그의 문학세계,

사상과 철학에 대한 사유의 일면 등을 알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가 살았던 시대의 역사성, 사건들에 대하여 보다 넓은 탐구가 있어야 하리라 본다.

어려서는 신동, 나이 들어 광인이라 규정해 버리기엔 너무나 특별한 인물이기에 그러하다.

시대비판, 얽매임을 거부한 조선시대를 가로지른 인물이기 때문에 보다 넓게 들여다봄을

가져야 할 것이라는 말이다.

 

참여지향의 선동가, 유교지향의 실천 사상가, 불교철학의 사유를 공유하려했던 자유인,

귀속을 거부한 자유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초의 고전소설인 ‘’의 저자인 그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천재성, 인간적인 매력, 불완전한 고뇌, 흔들림, 사유와 저술을 함께 중시한 시인이요

문필가, 사상가라는 말이 맞다는 생각이다. 그는 유교사상에서 중시하는 가 현실에서

실현될 수 없음을 깨닫고 절망감, 고독감을 지니고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세때 천재라는 칭송이 자자하여 세종의 명으로 박이창이 시험을 본 그가

생원시에 조차 낙방했으니 천재가 맞는 말인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천재라는 말에 대하여 보다 성찰해야 할 소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단종의 폐위에 충격을 받아 삼각산 중흥사에서 뛰쳐나와 승려행각을 했다는 그가

수양대군이 계유정란을 일으켰을 때, 왜 조용했는가?도 갸우뚱하게 된다.

사육신도 죽고 단종도 죽은 그 때에 그는 초막동에서 은거 했으니 생육신이 맞는 말인가?

15살 위인 서거정을 하대하듯 ‘강중아’하고 불렀다니, 그의 위상은 참으로 보통생각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점도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그는 인간 본연성에 대한 고민을 한 것으로 알려졌고 신본주의, 인간평등 사상을 실현하려고

애쓴 사람, 유학자의 좁은 틀에 가둘 수 없는 사람 등으로 후세대에 각인되기도 했으니

천재임이 확실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한편 불교 내에서 여러 갈래의 종파가 있는데,

민중불교라고 일컬어지는 曹洞宗이 신라 화상 金和尙으로부터 一然으로,

그리고 김시습으로 이어졌다는 설도 있다.

 

선조의 명으로 간행된 梅月堂集(매월당집)에 2,200여수의 시가 있으니

특출한 문필가임에 분명하다.

續東文選(속동문선)에 시문 60수가 등재 되었는데, 50수 이상 등재된 자가

서거정과 김종직과 함께 세 사람 뿐이니, 참으로 대단한 천재 문필가라 할 것이다.  

자전적 시문, 고백적 글, 남에게는 관대하나 자신에게는 지나치게 엄격하여 자학적이기

까지 한 것으로 평하고 있기도 하니 예삿 인물은 아니다.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묘포에 ‘꿈꾸다 죽은 늙은이’라고 써 달라 했으나

그는 유교, 불교, 도가사상을 두루 공부하여 익히고 실천, 노력한 사상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감정의 기복이 심했으니, 고독한 자유인이라 하는 것도 이의가 없으리라...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기회를 얻지 못하였으불의의 사상에는 물들지 않았다는

후인들의 전언이니, 우리나라 역사상 보기 드문 인물임에 주목하게 된다.

 

   

위 시는 유불도의 영향으로 작자의 인생관이 다분히 녹아 표출된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속적인 명리를 더나 무위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인생관의 피력이라 보아지고

동서남북으로 유랑하게 했던 것이기도 하다.

   

변덕스러운 세태인정과 이를 부연한 예시로 표현했다.

남을 칭찬하고 기리는 일은 언제 그 태도가 표변하여 그를 헐뜯을지도 모를 양면성을 지니고

있음이 오늘날의 인정이니 새삼 이 시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가 크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명예를 뜬 구름인양 여기는 사람도 기실 오히려 은근히 명예를 추구하는 이중성을 지닌 것이

현실의 세태이니 말이다.

   

봄은 꽃으로 하여 봄다워지건만 그러나 꽃이야 피건 지건 관심 밖으로 자연에 맡겨놓고

있을 뿐이요, 산위로 넘나드는 구름에 따라 산의 얼굴도 달라지게 마련이지만

산은 구름이야 가든 오든 이래라 저래라 요구하는 일이 없이 그저 저 흐르는 대로

맡겨 놓고 있을 뿐이다.

 

사람은 공연히 제 스스로 바빠 입신출세다, 부귀공명이다 동분서주 안달하지만

설사 뜻대로 그것들을 얻었다 한들 필경 그것이 무엇이랴? 기쁨도 잠깐의 일이 될 것이고

또 새로운 고뇌가 따라 붙게 마련이다. 그러고 보면 어느 한 곳에 뿌리내려

한 생애를 스스로 얻을 만큼의 기쁨을 누릴 곳이란 이 지상에는 아무데도 없는 것이라는 ...

다만 저 대자연처럼 욕심 없이, 얽매임 없이, 담담히, 유유히 순리대로 살아가는 거기에

오히려 생의 즐거움은 있는 것이라고 세인들에게 충언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또 한편 어느 한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작자의 유랑의 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