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창(北窓) 정염(鄭?)-용호대사, 정북창
☆북창(北窓) 정염(鄭?)-용호대사, 정북창
북창 정렴(1506∼1549)은
용호대사라고도 불렸던 조선시대의
대표적 도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선생의 자는 사결(士潔)이시고,
호는 북창(北窓)이시며 중종 때 분이다.
저서에 《북창집(北窓集)》
《동원진주낭(東垣珍珠囊)》
《유씨맥결(劉氏脈訣)》
《북창비결(北窓訣)》 등이 있다.
1530년 사마시에도 정통하여 장악원 주부로서
가곡의 장단을 지도하는 한편, 천문·의술에도 조예가
깊었으므로 관상감, 혜민서교수를 겸임했다. 뒤에
포천 현감이 되었으나 병으로 사임하고 양주 괘라리,
광주 청계사, 과천 관악산 등지를 전전, 스스로 약초를
구하면서 요양했다. 유교·도교·불교는 물론 복서, 한어에
이르기까지 모두 정통했다. 문장, 산수화에도 능했다.
사후 제학에 추증되었다.그는 유불선에 두루 밝았으며,
의학에도 정통했다. 어려서부터 천문지리 등을 공부하여
두루 능통했고, 특히 의학과 약리에 밝았다. 1544년에는
왕이 어려운 병에 걸리자 내의원의 추천을 받아 임금을
진찰하고 치료를 맡기도 했다. 포천현감을 지낸 적이
있지만, 벼슬에는 뜻이 없었다.
해동전도록에 실린 이야기를 보면, 그는
“본래 이인이며 저절로 외국어와
짐승의 소리를 알아 들었다. 또 3일간
삼매에 든 뒤로는 백리 밖의 일도 환하게 알았으며,
양주고을에서 10년 장좌불와를 한 뒤 죽으니,
사람들은 그가 신선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북창비결과 북창시집을 남겼는데,
이 가운데 북창비결이 바로 용호비결이며,
용호비결은 그 뒤, 모든 수행자의
필독서가 되어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태어날 때부터 신기하고 이상한 일이 많이 있었다.
어릴 적에 산사에서 선가의 육통법을 시험하려고
삼일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마음을 가라앉혀 사물을 보니
산 너머 백리 밖의 일까지 알게 되었다. 이로부터 천문,
지리, 의약, 복서, 율려, 산법, 중국어 및 기타
세계 만국어를 스스로 배워 통달하였다. 비록
천리 밖의 일이라도 생각만 하면 곧 알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나이 12세때 중국을 여행하다
봉천전(奉天殿)에서 도사를 만났는데,
도사가 묻기를..귀국에도 도사가 있습니까? 하므로
선생께서 거짓으로 대답하기를..
우리 나라에는 삼신산(三神山)이 있어
한낮에도 신선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항상 볼 수 있으니,
무엇이 그리 귀할 게 있겠소?라고 하였다.
그러자 도사가 크게 놀라, 어찌 그럴 수가 있소?하고
묻자 선생은 즉시 [황정경], [참동계], [도덕경],
[음부경]등의 도경을 들어, 신선이 되는 길을 밝게 설명하니,
도사는 굽실거리며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였다.
이때 유구(琉逑)에서 온 사신 또한 이인이었는데,
그는 자기 나라에서 역수로 미리 헤아려보니
중국에 들어가면 진인을 만날 것을 알고
길을 따라 물어가며 북경에 도착해서
여러 나라 사신이 머물고 있는 관저를
두루 찾아봤으나 만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선생을 만나게 되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기도 모르게 절을 하고, 지니고 있던 행낭에서
조그마한 책자를 꺼내는데, 거기에는 모년 모월 모일에
중국에 들어가면, 진인을 만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이것을 선생에게 보이면서, 이른바 진인은 선생이
아니시면 누구겠소?하고 역학을 배우기를 요청했다.
선생은 곧 유구어로 주역을 가르쳤다.
이에 관저 안에 있던 여러 나라의 사신들이
그 얘기를 듣고 다투어 와서 그 장면을 구경하였다.
선생은 각각 그 나라 말로 척척 응답하니,
모두 깜짝 놀라며 천인(天人)이라고 칭찬하였다.
어떤 이가 선생에게 묻기를...
세상에 새나 짐승의 울음소리를 해득하는 사람이 있으니,
다른 나라의 말은 곧 새나 짐승의 소리와 같습니다.
그 말을 해득하는 것은 간혹 있을 수 있는 일이겠으나,
그 말을 입으로 하는 것은, 또한 다르지 않습니까? 하였다.
선생께서 대답하시기를, 난 듣고서 해득한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은지가 오래 되었소.하였다.
선생은 삼교(三敎)를 관통하였으나,
근본을 성학(聖學)에 돌려, 그의
유훈(遺訓)도 효제(孝悌)를 남겨
오로지 효제에 힘쓰게 하였고,
[소학], [근사록]을 초학자의 지름길로 삼았다.
일찍이 선생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성학은 인륜을 중시한다. 그러므로
긴요하고 오묘한 곳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불(仙佛)은 오로지 마음을 닦고
본성을 깨달음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높이 도달한 곳은 많고,
낮고 쉬운 것을 배움은 전혀 없다.
이것은 삼교가 다른 까닭이고,
선불은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선생은 성질이 육식을 좋아하지 않았고,
술은 잘 마셔 두세 말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또 휘파람을 잘 불었다. 일찍이 금강산 꼭대기에 올라가
소리를 내니, 그 소리가 바위와 골짜기를 진동시켰다.
산 속의 중들은 놀라 피리소리로 여겼으나,
후에 알고보니 선생이 휘파람을 분 것이었다.
조정에서 선생이 천문, 의약, 율려에 통달했다 하여
장악원(掌樂院) 주부(主簿) 관상감(觀象監),
혜민서(慧敏署)의 교수로 임명하였고,
그 후 포천현감(抱川縣監)이 되었으나,
오래지 않아 벼슬을 버리고 양주 괘라리(掛蘿里)에
은거하였다는데, 깊숙이 숨어 세상과는 발을 끊고
연단화후법(煉丹火候法)을 수련하였다.
하루는 자신에 대한 만가를 지었는데...
一生讀破萬卷書,
일생 동안 만 권의 책을 독파하고
一日飮盡天鍾酒.
하루에 천 잔 술을 마시었네.
高談伏羲以上事,
복희씨(伏羲氏)이전 일을 고고하게 담론하고
俗說往來不掛口.
속설은 입에도 담지 않았네.
顔子三十稱亞聖,
안자(顔子)는 삼십을 살아도
아성(亞聖)이라 불리었는데,
先生之壽何其久.
선생의 나이는 어찌 그리 길더뇨?
그리고서 앉은 채로 세상을 떠나니, 그의 나이는 44세였다.
세상에서는 선생이 태어나면서부터 말을 할 줄 알았고,
또 대낮에도 그림자가 없었다고 한다.
그의 아우 [정작]의 호는 고옥(古玉)으로,
역시 이인(異人)이었다. 형을 따라 수련의 공부를
습득하여 36년을 홀로 살며 여색을 멀리하고 술을 즐겼다.
시에 능하고 의술도 깊었으며 방술(方術)에도
신효함이 많았고, 평생에 명리(名利)를 구하지 않았다.
그의 시에...[백수(白首)로 참동계를 읽고
홍안으로 누룩(酒) 봄을 맞네] 라 하였다.
나이 72세에 작은 병으로 좌화(坐化)하였다.
또 종형(從兄)되는 계헌 정초(桂軒정 礎)라는 이가
있었는데 젊어서 대과에 급제하고 높은 벼슬을 하다가
병을 핑계하고 벼슬을 버렸다. 두문불출하고
금단(金丹)의 비법을 연마하니 하늘에서 신선이
그의 방에 내려와 시를 지어주었다. 그 시에...
[계향(桂香)이 복욱한 신선의 행차가
하늘에서 이집에 오니 계(桂)자로 이름하네]
라고 하였다. 당호에 계자를 쓴 것은
이 때문이다.
일찍이 고옥이 지은 시를 보면...
[솥안에 회왕(淮王)의 약이 있으니
사람들이 허연(許연)의 집이라 하네] 하였으니
어찌 그 집의 실록(實錄)이 아니겠는가.
북창과 고옥형제 두 사람의 시를 한권으로
묶어서 세상에 전한다.
명신록에 의하면, 정염은 본디 몸이
허약하여 항상 조석으로 약을 다려 먹었다.
그리고 아침에는 입을 꼭 다물고 똑바로
앉아서 식사 때를 기다리고 해가 뜨면
비로소 말을 하였다. 밤에도 또한 단정히 앉아서
새벽이 될 때 까지 잠을 자지 않았다.
천하에 신선이 없으면 그만 이지만 있었다면,
북창이 틀림없이 신선일 것이다.
선생의 44세 죽음에는 일화가 전해져 온다.
선생의 친구중 한 사람이 선생을
찾아와서 말하기를..내가 사십사세가 되는
모월 모일 죽는다는데, 무슨 좋은 수가 없겠는가?
하고 묻자 선생이 되묻기를
그렇게 죽고 싶지 않는가?하자
친구가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선생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씀하시길
그러면 모월 모일 어느 마을 어느 곳에 가면
수레를 끄는 노인이 한 분 계실것이네,
자네는 아무 이유도 묻지 말고
그냥 그 노인에게 절을 하게나.
이 말을 들은 친구가 모월 모일 그 장소에 가니
마침 수레를 끄는 노인이 보이길래
보자마자 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인은
본 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는 줄곧 따라다니며
절을 하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마을밖을 벗어나자 노인이 뒤를 돌아보며
그 친구를 가만히 보더니 말했다.
북창이 보내서 왔군..한마디 하시곤 그냥 가셨다.
그 후, 그 친구는 사십사세를 넘기고도 건강히 살았지만,
북창선생은 44세에 세상을 떠나셨다. 이 일을 두고
사람들은 북창선생이 친구분과 수명을 바꾸었다고들
말을 한다.
☆명신록(名臣錄)에 이르기를,
[공이 원래 자신이 허약함을 염려하여 늘 자신의 병을
생각하고 하인을 시켜 아침 저녁으로 약을 달여 썼다.
아침이면 반드시 입을 다물고 단정히 앉아서 조반때를
기다리고, 해가 떠야만 입을 열어 출기(出氣)하였다.
밤에는 똑바로 홀로 앉아 밤을 세우니 이는 비단 수련에만
힘쓰는 것이 아니라, 고명한 마음을 두고
의리를 탐구함이라]고, 하였다.
☆을사전문록(乙巳傳聞錄)
정렴전(鄭 傳)에 이르기를,
[공이 일찍이 의정공(議政公)을 따라 관광차 중국에
들어가 봉천전(奉天殿)에서 도사를 만났다.
도사가 묻기를 '귀국에도 우리같은 사람이 있습니까'하니,
공이 말하기를..'우리나라는 본래 신선굴이라 합니다.
봉래 방장 영주의 삼산은 모두 우리나라에 있어서
혹은 대낮에도 하늘에 올라가는 사람이 있고
또 장생불사하는 사람이 있어서 우리들은 보통으로
보는 것이니 무엇이 그리 드문 일이라 하겠소' 하였다.
도사가 '어찌 그러 수가 있는가' 하며 놀랬다.
공이 바로 황정경(黃庭經) 음부경(陰符經) 등을 들어
복기연형(服氣煉形)의 계제(階除)를 처음부터 끝까지
얘기하고, 복서술(卜筮術)까지도 어렵지 않게 밝혀 주었다. 이말을 들은 도사는 어이 없이 면구한 태도로
말하지 못하고 다시는 더 묻지를 못하였다]고 하였다.
《정북창의 용호비결(龍虎秘訣)》
수단(修丹)의 도(道)는 간략하고 쉬운 것이다.
이제 이 道에 관한 책이 하도 많아 서고에 가득할 지경이나
말이 껄그럽고 황홀한데 들어가서 어렵다.그래서
고금의 학자들이 손댈 방법을 알지 못하여 장생(長生)을
얻으려다 도리어 요절(夭折)하는 자가 많았다.
참동계(參同契) 한편은 실로 단학(丹學)의 비조(鼻祖)가
되는 것이니 또한 천지의 이치를 참작하고 역상(易象)의
괘효(卦爻)를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어서 초학자로서는
추측하지 못할 바가 있다. 이제 입문에 관한 절실한 부분
약간장(若干章)을 논술하려 하거니와 깨달음의 방법은
한마디로 족할 것이다. 대개 단학의 시작은
우선 폐기(閉氣)일 뿐이다.
이를 한마디로 말하면 지극히 간략하고 쉬운 도(道)이다.
그런데 옛사람은 이것을 비밀로 하여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옛 사람이 손댈 방법을 알지 못하였다.
[수단(修丹)은 내 기식(氣息) 속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밖으로 금석(金石)에서 구하며 장생을 얻으려다 도리어
요절하였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이제 폐기(閉기)하려는 사람은 먼저, 마음을 조용히 하고
책상다리를 하고 단정히 앉는다.
〔불서에서 말하는 金剛坐-跏趺坐〕다음에
발을 드리운 것 같이 윗 눈까풀을 내렸뜨려 내려다 보며
눈으로 코끝을 대하고, 코로는 배꼽둘레를 대하고
수단공부의 정신은 오로지 이에 있으니,
이때에는 등뼈를 구부려 수레바퀴 같이 둥글게 하여야 한다.
숨을 들어마시기를 오래 계속하고 내쉬기를
조금씩하여 늘 신기(神氣)가 배꼽아래
한치 세푼에 있는 단전(丹田)에 머물게 한다.
〔들어마신 기운을 굳게 닫아 내보내지 않을 뿐 아니라,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더욱 마음을 굳게 먹고
기운을 아래로 내려보내기를 소변볼 때 같이 힘을 주면,
이른바 내뱉는 기운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억제하게 되고
속에 있는 손풍(巽風)과 합하여 숨을 내쉬지 않고도
참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마음을 안정하게 갖고서
머리를 숙여 눈을 내리깔고 눈으로 코를 보고
코는 배꼽에 닫도록 구부리면 기운이 올라오지
못할 뿐아니라 내려가지도 못하게 된다. 그 때가
바로 폐기되는 처음이다.
이 때에는 가슴이 답답해지며 혹은 찌르는 것같이
아프기도 하고 혹은 천둥소리 같이 울리기도 하며
여러 가지 징후가 생기는데 이것은 모두 좋은 징조이다.
상부(上部)의 풍사(風邪)는 정기(正氣)에 쫓기어
공동(空洞)으로 나가버리고 복기하는 기운이
내려가는 길을 얻은 연후에 기가 자연 평안하면
모든 병이 자연히 삭어 없어지는데, 이것이
처음 시작하는 길이요, 도를 시작하는 증험(證驗)도
되는 것이다.
항상 흉부(胸部)와 복부(腹部)에 병이 있는 사람은
진심껏 하면 가장 효력을 볼 것이다〕
이에 전념하여 이것이 상습이 되어 공부가
점점 이루어지면 그것이 소위 현빈일규
(玄牝一竅)로서, 일규(一竅)가
백규(百竅)를 모두 통하는 것이다.
〔胎息法에 있어 竅中에 이것을 터득하는 것이다.
이 一竅는 즉 仙法을 닦는 道이다〕
현빈일규에서 태식(胎息)이 되고,
태식에서 주천화후(周天火候)가 되고,
주천화후에서 결태(結胎)가 되니
태식과, 화후와 결태가 다 현빈일규에서
시작되지 않은 것이 없다. 어떤이는 말하기를,
방문(傍門)의 소술(小術)이라 해서
즐겨 행하려 들지 않으니 가석한 일이다.
신선이 되어 날아올라가는 술법은 나로서는
감히 말할 것이 못되나 비록 천만 백약이 있더라도
이에 비할 수는 없다.이 방법을 한달만 행하면
백가지 병이 모두 없어질 것이니
어찌 진심껏 하지 않겠는가.
대개 풍사(風邪)의 병은 혈맥(血脈) 속으로 숨어 들어
체내에 충만함으로서 부지중에 사람을 죽이는 도끼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오래되어 경맥(經脈)을 지나
고황(膏황)에 든 연후에 의원을 찾아 약을 쓸때는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醫家는 이미 병이 난 후에 병을 다스리나,
道家에서는 병이 나기전에 미리 병을 다스린다〕
정기(正기)와 풍사(風邪)는 물과 불과 같아서
서로 합하지 못하듯이 정기가 머물러 있으면
풍사는 저절로 달아서 백맥(百脈)이 자연히 잘 유통된다.
그래서 삼궁(三宮)의 기운이 자연히 잘 오르내리니
백가지 질병이 어디서 발생할 수 있겠는가.
좀더 정성을 다하여 계속하면 반드시 수명을 연장하여
죽음을 물리칠 것이다.이같이 하여 그 대강을 터득하면
또한 평생을 안이(安怡)하게 누리지 못함이 없을 것이다.
생에 애착을 갖고자 하는 사람은 내 일찍 여러분께
가르쳐 준 것이 있으니, 또한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내뜻을 짐작하는 사람은 이 분수 없는 것을
용서하여 주기 바란다.
삼가 생각건대 고인이 말하기를 순리(順理)로 하면
사람이 되고 역리(易理)로 하면 신선이 된다 한다.
대개 하나가 둘을 낳고, 둘은 넷을 낳고,
넷은 여덟을 낳고하여 64에까지 이르고
더나아가 만사(萬事)에까지 이르는 것이 인도(人道)이다.
〔順理工夫〕
가부좌를 틀고 단정히 앉아서 발을 드리운 듯이 눈을 감고
만사의 분요(紛擾)한 잡념을 걷어치우고 일심을 아무것도
없는 태극(太極)에 돌리면 태극이란 것이 곧 선도인 것이다.
〔易理工夫〕
참동계에 이른바, 심지(心志)를 다 맡겨 허무(虛無)에
돌림으로서 아무 생각도 없는 것이 상례가 되게
하라는 것이다.
《無라는 것은 太極의 本題》
이로 미루어 증험(證驗)하고 마음을 하나로하여
딴 생각이 없이하면 이는 신선이 되는 첫째 방법이다.
다만 신선에 뜻이 있다면 일찍이 원기가 있을 때
착수하는 것이 긴요하니, 만일 원기가 쇠패(衰敗)한 후에는
비록 백배의 공을 들여도 상선(上仙)의 자리에는
이르지 못한다. 폐기(閉기) [伏기 또는 累기]라고도 한다.
黃庭經에 말하기를, 神仙과 道士는 仙에 있는 것이
아니라 積精·累기로써, 참으로 바른 것이라 하였으니
바로 이를 이름이다〕
폐기(閉기)라는 것은, 눈으로 깃발을 삼고
기의 오르내림이 좌우와 전후로 마음이 시키는 대로
가게한다. 기가 올라오게 하려면 눈을 위로 뜨고
기가 내려가게 하려면 눈을 아래로 내려 뜬다.
左기를 올라오게 할려면 오른 눈을 감고 왼쪽 눈을 치뜨며
右기를 올라에게 하려면 왼눈을 감는다.기를 내리는 것은
任脈을 따라 내리고, 올리게 하는 것은
督脈을 따라 올라가게 한다. 神이 행하면
기도 행하고 신이 멈추면 기도 멈추고
신이 가는 곳에는 기도 안가는 곳이 없다.
주천화후(周天火候)
〔火는 內外와 遲速이 있다. 처음에는
血이 모두 虛하여 閉 한지 오래지 않아
火候가 발하기 쉬워서, 臍腹內에 熱이 모여
한참동안 흩어지지 않으면 따뜻한 기운이 그속에서 나온다.
이때를 당하여 기血은 점점 實하여지고
火기는 또한 좀 잦아진다.
또 文武의 법도 참작하지 않을 수 없다〕
주천화후(周天火候)라고 하는 것은
온몸에 돌고 있는 열기(熱氣)에 불과한 것이다.
신기(神기)가 배꼽 주위에 모일 때
이때에 만일 더욱 성심껏 내불면
〔이때에 文武火候와 斤兩法度가 있고
또 進退法이 있으니 가장 잘 살피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心身을 靜完시킨 후에 進火를 법대로 하면
膀胱이 불같이 뜨겁고 兩腎이 끊는 물과 같은데
허리 밑으로부터 맑고 시원한 기분이 난다.
만일 心身이 靜定되지 못하면서
進火를 법대로 하지 못하면 온몸에 크게 熱이 나서
도리어 몸에 큰 害가 된다〕따뜻한 기운이
조금씩 단전에서 생겨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니
熱기가 이르는 곳에 점점 벌어져 위로 올라간다.
마치 연꽃이 점점 피어 벌어지는 듯 한다.
이른바 화지(華池)는 연꽃이 피는 곳이다.
[神水華池라는 것은, 虛極에 이른 靜篤을
지키는 때이니 이것이 가장 긴요한 곳이다]
이것을 잘 지켜 좀 오래되면 열이 점점 생겨
이것은 이른바 꽃봉우리가 점점 피어
이슬이 무르녹음이다. 이때에 물이 거슬러 오른다.
단침(丹津)이 입에 모여 醴泉이 되니
이른바 玉漿金液이다] 이것이 성해지면
배속이 크게 벌어지며, 속은 아무 것도 없이
텅 빈 것 같아진다. 조금 있다가 열기가
온 몸으로 퍼지게 되는데, 이것을 이른바
"주천화후"라고 한다.
진실로 운화(運火)를 법대로 하면
참을 수 없는 정도까지 이르지 않는다.
배꼽아래 한치 세푼의 소위 하단전(下丹田)에
신기(神기)를 서로 모이게 한다.
하단전과 상단전(泥丸宮)이 상응하여
울리것 같이 되면 이것을 옥로(玉爐)의 화(火)라 한다.
이 화가 정상(頂上-泥丸)을 더웁게 하면
자색 노을 같은 기운이 생긴다.
이것이 아래 위로 쏟아져서고리같이 끝없이 돌 때,
진실로 이 불을 덥혀 길러서 잃지 않으면
청명한 기가 니환궁 위에 결정(結晶)된다.
이것을 선가(仙家)에서는 현주(玄珠)라 하고
불가(佛家)에서는 사리(舍利)라는 것이다.
이것은 필연적인 이치로서, 도가 이루어지는 여부는
수도하는 사람 자신의 정성여하에 달린 것이다.
다만 조달(早達) 되는 것이 귀하다 하겠다.
또 듣기에 불로 약을 고아 단(丹)으로써
도를 이룬다는 것은 신(神)이 기(기)를 거느리고,
기가 형체에 머물러서 서로 떠나지 않게하는데 불과하다.
詩에 이르기를,
[정기(正氣)가 항상 배속에 가득하니,
한가히 지나는데 무엇이 해로울꼬,
초연히 달통하여 태식법을 얻으니,
벽을 격(隔)해 물건을 보니 저절로 보이네]하였고,
황정경에는,
[사람들은 모두 오곡(五穀)의 정(精)으로 배를 불리나,
나는 홀로 음양기(陰陽기)를 배불리 먹네.]
하였는데, 이 두 시를 보면...
벽곡(벽穀)은 태식에 의한 것이니
진실로 능히 벽곡을 하고 다만 음양기로 배불리면
땅의 문(地戶)은 닫히고 천문(天門)이 열릴 것이다.
어찌 평지에서 신선이 되어 올라가지 않겠는가.
위의 세 조목은 비록 각각 이름 붙기는 하였으나,
오늘에 한 조목을 행하고 내일에 또 한조목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공부는 폐기(閉기)하는데
전념하여야 한다. 다만 공부의 심천에 따라
등급의 고하가 있으나, 변화하여 신선이 되어
올라가는 술법이 모두 이 세가지에서 벗어나지 않고,
다만 그 정성에 달려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