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포대화상-미륵화상
<소개글>
미륵화상-포대화상
포대화상 일화 1
포대화상은 중국 당나라 명주 봉화현 사람으로 법명은 此이다. 호를 장정자라 했고 악림사에서 출가 했다.
뚱뚱한 몸집에 얼굴은 항상 웃는 모습이었으며, 배는 풍선처럼 늘어져 괴상한 모습으로 지팡이 끝에다
커다란 자루를 둘러메고 다녔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포대화상이라고 불렀다. 그 자루 속에다 장난감,
과자, 엿 등을 가득히 넣고는 마을을 돌면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포대화상은 무엇이든 주는 대로 받아먹고, 땅을 방바닥으로 삼고, 구름을 이불삼고서 어느 곳에서든지
벌렁 누워 태평하게 코를 골며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면서 세속 사람들과 같이 차별 없이 어울리면서
길을 가르치고 이끌었다. 그는 자연과 더불어 자고 깨었으며 자연과 더불어 행하였고 대자연으로 돌아간
걸림 없는 대자유인이 었다. 연꽃과 같은 삶이었다. 사방을 걸림 없이 다니며, 천지를 내 집 삼아 살던 포대화상은
때때로 길흉을 예언하였는데 조금도 틀림이 없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어도 스님이 나막신을 꺼내 신고
나타나면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그리고 장마철이라 비가 계속 내리다가 스님이 짚신을 신고 다니면
비가 그치고 날이 개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복장을 보고 날씨의 변화를 알아채곤 했다.
그는 약간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았지만 사람과 어울려 길흉화복에 대해 곧잘 얘기를 했는데 아주 신통했다.
한 사람이 포대화상에게 물었다.
"스님! 우리는 스님이 매우 높은 깨달음에 도달하신 훌륭한 스님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장난스러운 행동은 저희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찌하여 귀중한 시간을 아이들과 노는 데만 허비하고 계십니까?
정말 스님께서 선에 통달하셨다면 저회들에게 선의 진수를 보여 주십시오."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포대화상은 자신의 포대를 땅바닥에다 쿵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다! 이것이 선의 진수이다!"
그들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어안이 벙벙하여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자, 포대화상은 이렇게 들려주었다.
"이것이 내가 보여 주고자 하는 전부이다. 내가 짐을 내려놓았듯이 그대들도 자신의 짐을 벗도록 하라."
그러자 그들이 이렇게 물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러자 그는 아무 말 없이 포대를 후다닥 걸머지고는 발길을 내디디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바로 그 다음 일이다. 그러나 나는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짐이 나의 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나에게 이 세상의 모든 짐들은
단지 어린이어들을 위한 장난감이 되어 버렸다."
☞ 그러나 때로는 사람들에게 미친 사람으로 취급 받기도 하였다.
짓굿은 아이들이 막대기로 번갈아 가며 때리기도 하였으나 그는 웃음으로 받아넘기고,
아이들과 실랑이질 하기도 하며 바보짓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相見, 邪見을 가진 일반인들을 제도하기 위한 가르침이었다.
다음은 그의 게송이다.
一鉢天家飯 발우하나로 천 집의 밥을먹고
孤身萬里遊 외로운 몸 만리에 노닌다.
靑目覩人少 푸른 눈은 사람을 보는 일 없고
問路白雲頭 길을 물으니 백운의 끝이더라.
騰騰自在無所爲 늠름하고 자재하여 하는일 없으니
閔閑究竟出家兒 한가롭고 한가로와 출가한 장부일세.
若覩目前眞大道 눈 앞에 참된 도를 본다 하여도
不見纖毫也大奇 티끌만큼도 기이하게 여기지 않아.
我有一布袋 나에게 한 포대가 있으니
虛空無가碍 허공에 걸림이 없어라.
展開邊宇宙 열어 펴면 우주에 두루하고
入時觀自在 오므리면 관자재로다.
彌勒眞彌勒 미륵, 참 미륵이여
分身千百億 천백 억의 몸으로 나투어
時時示市人 때때로 시속 사람들에게 보이나
市人自不識 시속 사람들이 스스로 알지 못하더라.
포대화상은 네 번째의 게송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반석 위에 단정히 않은 채로 입적하였다.
사람들은 이 마지막 게송을 듣고 포대화상을 미륵불의 화신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런지 현재 중국 악림사 입구에 있는 미륵불은 양반 다리를 하고 크게 웃고 있는
포대화상의 형상을 하고 있다. 미륵상 곁에는 "배는 천하의 품기 어려운 일도 다 포용할 수 있고,
늘 웃는 그 입은 세상의 가소로운 인간을 비웃는구나." 라는 글귀가 있다.
그리고 악림사의 동당에는 그의 온몸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우리들이 지고 있는 번뇌망상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그 무거운 짐들을 훌훌 벗어버리면 무애자재한 대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땐 이 세상 전 부를 짊어지는 것이다. 포대화상처럼······.
포대화상 일화 2
돌방석에 넉넉하게 앉아있는 포대화상도 만날 수 있다. 포대화상은 중국 명나라때 스님이다.
어린이들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포대에서 꺼내주었다 해서 후세 사람들이
미륵불의 화현으로 받들었다.
"나에게 한자루의 포대가 있는데 닫으면 바늘 하나 들일 곳 없지만 열어놓으면 온 세계가 함께 하네"
포대화상의 전언에는 시대를 초월해 어느곳에서나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닫으면 바늘 하나 들일 곳 없지만 열어놓으면 온 세계를 들일 수 있는 것. 그것은 마음이다.
함께 나누는 마음, 베푸는 마음이다.
포대화상 참배방법도 친근하고 재미있다.
포대화상의 배꼽을 만지면서 아랫배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세 번 돌리며 만진다.
그렇게 손길이 많이 닿아서인지 배꼽부분이 거무스레하다. 포대화상이 크게 웃을 때
그 웃음을 따라 함께 웃으면 세가지 복이 생긴다 한다.
무병, 장수, 부귀이다. 그래서 포대화상은 우리말로 옮기면 '복(福) 할아버지'가 될 수도 있고
영어로는 '해피 부다(Happy Buddha)'이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부처님
또 다른 참배법으로는 포대화상의 웃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책갈피나 책상앞에 놓고 웃는 연습을 하는 것도 있다.
포대화상 일화 3
미륵이여, 참다운 미륵이여. (彌勒眞彌勒)
그 몸을 천백억의 모습으로 나투네. (分身千百億)
수시로 세상 사람들에게 나타내었으나, (時時示世人)
그들은 스스로 알지를 못하는 구나. (世人自不識)
포대화상은 916년 명주(明州) 악림사(岳林寺)의 동쪽 행랑 밑에서 위와 같은 게송을 남기고
단정히 앉은 채로 입적하였다. 이 게송을 듣고 사람들은 비로서 그가 미륵불의 현심임을 알고 탄식하였으며,
포대화상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상을 조성하여 숭배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입적한 후 얼마 되지 않아서 그의 상을 그려 숭배하는 것이 양자강 지역과 절강 지방에서 부터
전파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포대화상은 후량(後梁)시대의 선승으로 절강성(浙江省)
명주(明州) 봉화현(奉化縣) 출생이다. 법명은 계차(契此)이며 호는 정응(定應)대사 또는
포대화상이라 하였으며, 당시의 사람들은 장정자(長汀子) 또는 포대사(包袋師)라 불렀다.
그는 체구가 크고 대머리에 배가 불룩하며, 항상 커다란 포대를 둘러메고다니면서
시주를 받아 넣어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포대화상이란 명칭은 이 때문에 생겨난 것이며 입적 후에는 포대화상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널리 퍼졌다.
포대화상은 시대나 인간사의 길흉 또는 기상을 점치기도 했는데 신기하게 모두 맞추었으며,
복덕원만(福德圓滿)한 상을 갖추고 있어 회화나 조각 또는 시문(詩文)의 좋은 제재가 되었다.
다음은 그의 게송으로서 호방한 그의 사상과 행적이 잘 나타나 있어 다시 한 번 소개한다.
나에게 한 포대가 있으니, (我有一布袋)
허공조차 걸림이 없도다. (虛空無絡碍)
자루를 열어 펴면 우주를 두루고, (展開匯宇宙)
오므려 들일 때도 자재로움을 보노라. (入時觀自在)
금동미륵반가사유상
*포대화상과 산타할아버지
포대화상과 산타할아버지는 몇 가지 닮은 점에서 재미가 있다. 무엇이나 준다는 뜻에서 같은 이미지를 풍긴다.
포대화상은 포대를 지고 다니면서 누구에게나 주는데 누가 주면 주는대로 받아 넣고, 누가 달라고 하면
달라는대로 포대에서 꺼내주는 호인이다.
산타할아버지는 빨간 자루에서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준다. 용모에서도 같은 똥똥한 모습니다.
미래의 부처 모습은 이렇게 후덕하고 중후한 모습이라고 한다. 가장 핵심이 되는 점은 이들이 아주 가까운
이웃의 모습이라는 점이다. 부처님이나 보살이 아닌 소탈한 포대화상이었고, 성부 성자가 아닌 평범한
산타할아버지의 신분이었다.
포대화상이 비록 출가한 스님이었지만, 그는 승상을 내던지고 무애자재하게 살았고
산타할아버지 역시 대주교였으나 호인의 만화 캐릴터로 탈바꿈하였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들이 근엄한 고승과 대주교의 모습 그대로였다고 한다면 어떠하였을까. 결과는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포대화상은 절강성 명주 봉화현 사람으로 9세기에서 10세기에 살았던 고승이다.
세 분이 한 세트인 포대화상은 퍽 교훈적이다.
한 포대화상은 눈을 가리고 있고 다른 한 포대화상은 입을 가리고 있으며
또 다른 포대화상은 귀를 가리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는 이렇게 살라는 말씀.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눈을 가려보고 입도 가려보고 귀도 가려보고 조용히 살라는 교훈이다.
산타할아버지는 처음 이름은 세인트 니콜라스였는데, 산테클라스로 변하고 다시 산타클로스가 되어,
크리스마스 이브에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가져다 준다는 아주 친숙한 이름이 되었다.
산타클로스라는 말은 270년경 소아시아 미라 지방의 대교주였던 세인트 니콜라스의 이름에서 비롯한다.
그는 살아 생전에 남몰래 많은 선행을 베풀었고 사후에는 아이들과 먼 뱃길을 떠나는 뱃사람들에게
수호성인으로 모셔졌다. 17세기경에는 아메리카의 신대륙으로 건너간 네덜란드인들이
산테클라스라고 불러 자선을 베푸는 사람의 대명사로 삼았다.
19세기에는 크리스마스가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미국의 본토 발음으로 변해 오늘날의 산타클로스가 되었다.
키도 원래 후리후리한 키였다고 하나 통통한 볼에 뚱뚱한 몸집의 캐릭터는 19세기에 한 만화가가
처음 그린데서 비롯한다. 빨간색 옷은 엉뚱하게도 코카콜라의 로고 빨간 색깔을 나타내고
흰 수염은 콜라의 거품을 나타내는데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코카콜라 광고 모델로 등장한 빨간 옷의 산타클로스 모습이 그대로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이다.
홀연 한 해가 저물어 온다. 힘든 때일수록 포대화상이나 산타할아버지와 같이 따뜻한 웃음을 나누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간다면 평화로운 세상이 올것이다.
포대화상 일화 4
'포대화상'
포대(布袋)는 '자루'이고, 화상(和尙)은 '수행을 많이 하신 스님'
포대화상은 1100년쯤 전, 중국 당나라 계차(契此)스님을 일컫는 말이다.
늘 커다란 자루를 둘러메고 다녀서 그런 이름으로 불리운다.
뚱뚱한 몸집에 배는 풍선처럼 불룩하고 - 항상 웃는 얼굴..
무엇이든 주는대로 잘먹고, 어디서든 벌렁누워 태평하니 코를 골며 잘자고 어디에 머무는 바 없이,
이마을 저마을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았고, 특히 어린아이들과 친구처럼 잘 어울렸는데,
삼운사 벽화도 이렇게 아이들과 어울리고 있는 포대화상을 묘사하고 있다.
포대를 내려놓고 앉아있는 스님의 눈썹을 끌어당기고, 젖꼭지를 만지작대고,
배꼽을 찔러대고, 발바닥을 간지르고.. 온갖 짖궂은 장난을 쳐대는 아이들 -
그래도 얼굴가득 더할 수 없이 밝고 맑은 함박웃음을 짓고있는 스님..
마치 산타클로스의 선물자루같은 저 포대엔 무엇이 들어있을까?
전해내려오는 포대화상의 시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我有一布袋(아유일포대) 나에게 포대가 하나 있으니
虛空無가碍(허공무가애) 허공처럼 걸림이 없어라.
展開邊宇宙(전개변우주) 열어 펴면 우주에 두루하고
入時觀自在(입시관자재) 오므릴때도 자재하도다.
결국 무궁무진 자유자재한 '마음'의 도리를 노래한 것이리라.
포대화상은 그렇게 서민들과 아이들과 어울려가며, 불법(佛法)을 가르쳤던 것이다.
한사람이 포대화상에게 물었다.
"스님께선 매우 높은 깨달음에 도달하신 훌륭한 스님이라고 들었는데,
어찌하여 귀중한 시간을 아이들과 노는 데만 허비하고 계십니까?
정말 스님께서 불법에 통달하셨다면 저희들에게 법문을 하나 해주십시오."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포대화상은
자신의 포대를 땅바닥에다 쿵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다! 이것이 불법의 진수이다."
무슨 뜻인지 모르고 어안이 벙벙하여 얼굴만 쳐다보고 있자, 포대화상은 이렇게 들려주었다.
"이것이 내가 보여 주고자 하는 전부이다. 내가 짐을 내려놓았듯이 그대도 자신의 짐을 벗어버려라."
"그러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러자 그는 아무 말 없이 포대를 다시 걸머지고는 발길을 내디디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바로 그 다음 일이다. 나는 짐을 짊어졌지만 짐을 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짐이 더이상 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있기 때문이지."
삼운사의 벽화를 볼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포대화상은 참으로 친근한 이미지로 부담이 없다.
불룩한 배는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얼굴가득 함박웃음은 보는 이의 마음을 환하니 밝혀준다.
그것이 바로, 이 각박하고 냉정한 세상을 살아가고있는 우리에게 포대화상이 천년을 넘어
생생하게 전해주고있는 가르침이요, 선물이다.
*포대화상 일화 5. 포대화상과 산타할아버지
포대화상과 산타할아버지는 몇 가지 닮은 점에서 재미가 있다. 먼저, 무엇이나 준다는 뜻에서
같은 이미지를 풍긴다. 포대 화상은 포대를 지고 다니면서 누구에게나 주는데
누가 주면 주는 대로 받아 넣고, 누가 달라고 하면 달라는 대로 포대에서 꺼내주는 호인이다.
산타할아버지는 빨간 자루에서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준다. 용모에서도 같은 똥똥한 모습이다.
미래의 부처 모습은 이렇게 후덕하고 중후한 모습이라고 한다. 가장 핵심이 되는 점은 이들이
아주 가까운 이웃의 모습이라는 점이다. 부처님이나 보살이 아닌 소탈한 포대 화상이었고,
성부 성자가 아닌 평범한 산타할아버지의 신분이었다.
포대화상이 비록 출가한 스님이었지만, 그는 승상(僧相)을 내던지고 무애자재하게 살았고
산타할아버지 역시 대주교였으나 호인(好人)의 만화 캐릭터로 탈바꿈하였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들이 근엄한 고승과 대주교의 모습 그대로였다고 한다면 어떠하였을까.
결과는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포대화상(布袋和尙)은 절강성 명주 봉화현 사람으로 9세기에서 10세기에 살았던 고승(高僧)이다.
세 분이 한 세트인 포대화상은 퍽 교훈적이다. 한 포대 화상은 눈을 가리고 있고, 다른 한 포대화상은
입을 가리고 있고 또 다른 포대화상은 귀를 가리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가 이렇게 살라는 말씀.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눈을 가려보고 입도 가려보고 귀도 가려보고 조용히 살라는 교훈이다.
산타할아버지의 처음 이름은 세인트(聖) 니콜라스였는데, 산테 클라스로 변하고 다시 산타클로스가 되어,
크리스마스 이브에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가져다 준다는 아주 친숙한 이름이 되었다.
산타클로스라는 말은 270년경 소아시아 미라 지방의 대주교였던 세인트(聖) 니콜라스의 이름에서 비롯한다.
그는 살아 생전에 남몰래 많은 선행을 베풀었고 사후에는 아이들과, 먼 뱃길을 떠나는 뱃사람들에게
수호성인(守護聖人)으로 모셔졌다. 그 뒤 12월 6일에 축제일을 베풀었다.
17세기경에는 아메리카의 신대륙으로 건너간 네덜란드인들이 산테 클라스라고
불러 자선을 베푸는 사람의 대명사로 삼았다.
19세기에는 크리스마스가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미국의 본토 발음으로 변해, 오늘날의 산타클로스가 되었다.
키도 원래 후리후리한 키였다고 하나, 통통한 볼에 뚱뚱한 몸집의 캐릭터는 19세기에 한 만화가가 처음 그린 데서
비롯한다. 빨간색 옷은 엉뚱하게도 코카콜라의 로고 빨간 색깔을 나타내고, 흰 수염은 콜라의 거품을 나타내는데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코카콜라 광고 모델로 등장한 빨간 옷의 산타클로스 모습이
그대로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이다.
홀연 한해가 저물어 온다. 힘든 때일수록 포대화상이나 산타할아버지와 같이 따뜻한 웃음을 나누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간다면!
*포대화상 일화 6
중국 후량(後梁)의 선승(禪僧).으로 호는 정응대사(定應大師)이고 이름은 계차(契此)다.
별명으로는 포대화상(布袋和尙)·장정자(長汀子)·포대사(布袋師) 등이 있다.
명주 봉화현(明州奉化縣:浙江省 寧波) 출생. 체구가 비대하고 배가 불룩하게 나왔으며,
항상 커다란 자루를 둘러메고 지팡이를 짚고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시주를 구하거나
시대나 인간사의 길흉 또는 일기를 점쳤다 한다.
복덕원만(福德圓滿)한 상을 갖추고 있어, 회화·조각 또는 시문의 좋은 제재가 되었다.
게( 偈)를 잘하였으며, 봉화현 악림사(岳林寺)에서 죽었다 한다.
그는 미륵보살의 화신이라는 존경을 받았다.
내용참조 : http://100.naver.com/100.php?id=181995
포대화상 布袋和尙 五代的一位高僧。法名契此,又號長汀子。明州奉化(浙江)
당나라 명주 봉화현 사람으로 법명은 契此(계차)이다. 뚱뚱한 몸집에 얼굴은 항상 웃으며
배는 풍선 처럼 늘어져 괴상한 모습으로 지팡이 끝에다 커다란 자루를 걸러메고 다니는데,
그 자루 속에는 별별 것이 다 들어있어서 무엇이든 중생이 원하는대로 다 내어주어서 포대스님이라고 불렀다.
무엇이든 주는대로 받아먹고 땅을 방바닥으로 삼고 구름을 이불 삼고서 어느 곳에서든지 벌렁 누워
태평하게 코를 골며 이마을 저마을 돌아다니면서 세속사람들과 같이 차별없이 어울리면서 길을 가르치고 이끌었다.
연꽃과 같은 삶이었다.
그는 자연과 더불어 자고 깨었으며 자연과 더불어 행하였고 대자연으로 돌아간 걸림없는 대자유인이었다.
천백억으로 몸을 나누어도
낱낱이 참 미륵일세.
항상 세인에게 나뉘어 보이건만,
아무도 미륵임을 아는 이 없네.
게송을 남기고 반석위에 단정히 앉은채로 입적하였다.
포대화상은 중국의 선사로서 기인이었다.
그는 항시 개 뼈다귀로 가득한 자루를 지고 다녔다.
그는 이 마을 저 마을 자루를 지고 다니면서
"개 뼈다귀 사시오. 개 뼈다귀 사시오." 외치며 다녔다.
사실 개 뼈다귀는 전혀 쓸모가 없는 쓰레기와 같은 것이었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미친사람으로 취급하였다.
짖꿎은 아이들이 막대기로 번갈아가며 때리기도 하였으나,
그는 때론 울음 짓기도하고
아이들과 실갱이 하기도하며 바보 짓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相見, 邪見을 가진 일반인들을 제도하기 위한 가르침이었다.
다음은 그의 노래이다.
夜夜胞佛眠 밤마다 부처를 보듬고 자다가
朝朝還共起 아침마다 같이 일어난다.
起坐鎭相隨 일어나건 앉건, 서로 붙어다니며
語默同居止 말을 하건 않건, 같이 머물고 눕는다
纖豪不相離 털끝만큼도 서로 떨어지지 않으니
如身影相似 몸의 그림자 같구나.
欲識佛居處 부처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자 할진대
只這語聲是 다만 말하는 이놈이니라.
一鉢千家飯 하나의 바릿대 천 집에 밥을 빌며
孤身萬里遊 고고히 몸은 만리를 노닌다
靑目覩人小 알아보는 이, 별로 없어라
問路白雲頭 떠도는 흰 구름에게 길을 묻노라.
彌勒眞彌勒 미륵 참 미륵이여
分身千百億 천백 억의 몸으로 나투어
時時示市人 때때로 세속 사람들에게 보이나
市人自不識 세속 사람들이, 스스로 알지 못하더라.
我有一布袋 나에게 한 포대가 있으니
虛空無과碍 허공도 걸림이 없어라
展開편宇宙 열어 펴면, 우주에 두루 하고
入時觀自在 오므려 들일 때도, 자재로움을 보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