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백(李在白)·단편소설 방

[단편소설]상여(喪輿)울음소리만 남았다./이재백◈소개작품◈

Demian-(無碍) 2011. 5. 31. 14:21

 

◈소개작품◈

 

상여(喪輿)울음소리만 남았다.           
  

                           
                           /이재백(소설가)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진단서에 기록되어가는 과정을 남의 일이나 된 것처럼

무심하게 바라보는 정호는

아예 딴전이라도 펼 듯이 복도를 지나는 발짝들을 보고 있었지만

신경은 매양 그쪽으로만 쏠리는 것이다.

꼭 움켜 쥔 손마디 끝부분에서 다시금 경련이 일어난다.

가슴이 또 답답해졌다. 어쩌면 이대로 숨이 막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정호는 흐릿해가는 의식을 스스로 놓치지 않으려는 듯

숨결을 모았다간 다시금 조심스럽게 내 뱉는다. 
진단결과는?

젊은 의사는 처방전에 난해한 영자英字를 부지런히 내 갈기고 있었다.

보나마나 뻔한 소리일 게 틀림없다.

심장판막증. 주기적으로 치료 요망, 더 악화 안 되어 다행임.

그렇지만 언제 악화될지 단언하기 어려움. 계속 약물치료는 해야 됨.
요즘의 증상은 어때요, 전번과 비교해서 말이죠?

젊은 의사는 눈으로 묻고 있었다. 중증은 아니니 안심해도 됩니다.

말은 안 해도 그런 게 틀림없었다.

세상만사를 즐거운 시각으로 보시고 항상 웃는 마음으로,

특히나 격한 감정 같은 건 절대 금물입니다.

술 담배는 물론이고요. 엷은 웃음까지 머금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새로울 거라곤 하나도 없는 일이다.

다행이라면 전번보다 차도가 좀 나아졌다는 걸까.

젊은 의사의 미소는 너무나 맑다 못해 투명한 수정처럼

정호의 마음 씀씀이까지 죄다 투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계속 약물 복용은 하셔야 할 겁니다. 귀가 따가울 만치 들어온 말이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신경 안 쓰시고. 제 말은 꼭 명심하셔야 합니다,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되씹는 게 집에서나 별다름 없었다.
 “정승이고 부자면 뭘 해요? 살아 있을 때 필요한 거지.

숨 끊어지고 말면 죄다 헛일 아니요. 그놈의 쓰레기소각장이고 나팔이고 이젠 알은 체 말아요.

그러다가 쓰러지면 당신만 손해 아니요. 집안일은 얼마나 엉망이요.

당신 아니라도 사람들이야 지천으로 깔렸으니

이젠 제발. 당신이 앞장 안 선다 해도 욕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 테니까요.”
정호 마누라는 거의 울상이었다.

집안일에다 농사일만 해도 벅찬 노릇인데

허구한 날 쓰레기소각장 반대 데모에 앞장 서니라 설치는 것은 관두고라도

그 일로 순천이나 광주로 무시로 쏘대야만 하니 복통이 안 터질 수 없었다.

게다가 달 달이 진단을 받아야 하고

심장병 약을 보약이나 된 것처럼 복용해야 하니 복통이 안 터질 수 없었다.
 “제발 나 죽는 꼴 볼라우?”
  마지막 으름장이었다. 젊은 의사의 말마따나 너무나 지당하신 말씀이다.

정호의 활동범위도 자연히 안식구의 눈총 때문에 제약을 받기 일쑤였으나

요즈음엔 눈에 뛰게 변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웬 일이다우?”
  보는 사람마다 정호의 안식구를 향해 알은체 했다.
  주암면 광천리 5일장 장터 한쪽모서리.
  차가운 세멘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쓰레기 소각장은 너희들 멋대로 안 된다고 악을 쓰느라

추위조차 잊은 군중들 틈에 어느 땐가부터 정호 안식구 모습이 보였다.

머릿수가 부족하여 애가심이 타는 판국에 생각도 안했던 사람이 나타난 건

천군만군의 지기를 얻은 것보다 더한 기쁜 일이었다.
 “참말로 반갑소 잉. 진즉부터 이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참말로 아심찮허요 잉.”
  저마다 공치사였다.

어찌 보면 정호가 한 일에 사사건건 물고 늘어져 눈살 찌푸리게 했던 일을

너그럽게 이해하겠다는 의중인 것도 같았지만 그런 티라곤 전혀 없는 따스한 목소리들이었다.

한 술 더 떠, 집안 일이 밀렸으면 우리 집 양반이라도 손을 모다줄팅께 걱정 말고 소리 허시씨요, 잉.

저마다 덕담을 던지는 걸 잊지 않았다.
 “무지렁뱅이 농투산이들이야 뭘 알것소?

그래도 알만한 양반이 앞장서야 해결될 일잉께로  참말로 고맙쏘 잉. 진즉부터 그랬어야지?”
  정호는 한숨이 앞서는 것이었다.

애당초부터 발을 안 디딜 걸 하는 자괴심이 앞서기도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자신의 건강이 더 중요한 일이었다. 호흡기 질환만이 아니었다.

예사롭지 않게 여겼던 몸에 이상이 온 것이 햇수로 벌써 두개가 지난 셈이다.

몸 조신이나 잘 해야 할 텐데, 머뭇거리며 방관만 하던 정호도

기어이 쓰레기소각장 반대 대열에 흡수되고 말았다.

때론 자신의 건강마저 외면해버린 채 날뛰는 걸 멈추지 않았다.

긴가민가하던 생각은 어느덧 뚜렷한 색채를 간직했다.

어정쩡하게 방관하던 자세가 보다 더 적극적으로 변했다.

엉뚱하게 젊은 혈기마저 되살아난 것 같았다.
  “순천시 주암면 구산리. 환경센타 건립지로 결정되다. ,,,,

주민들의 적극적인 유치활동으로 환경센타 예정지로 지정 되었다 한다.

혐오시설 자체는 지역이기주의 발동으로 설립자체가 난망한데

너무나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이 헌신적이 희생정신은 많은 감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어느 지방지의 기사내용이었다. 쓰레기소각장을 환경센타란 이름으로 살짝 바꿔

그럴싸하게 도배한 것도 주민들의 분노를 사기 마련인데 주민의 의사를 멋대로 왜곡하다니.

그나마 이 지역에서 알아주는 신문조차 이러다니. 개새끼들,

지각 있는 주민들의 입에선 막된 소리가 안 나올 수 없었다.

추진기관과 언론인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니라면 이런 기사가 나올 수 없었다.
  주민의 열화와 같은 환영으로,,, 이렇게 좋은 보물을 그 누구에게 줄 건가?

끝발 좋은 쓰레기소각장 주암으로 유치하자, 향내 나는 쓰레기 소각장아 우리는 통곡한다,,,

이런 현수막을 광천 네거리 주암면 사무소 앞이나

순천 시청 앞에 내걸자고 우겨대는 막무가내파도 한 둘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렇게 이뤄졌는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광주 직활시 여수시 순천시 광양시 멀리는 목포시민들의 식수 근원지임이기 때문에 더욱 기가 찰 노릇이었다.

게다가 지역발전을 위한다는 그럴듯한 사탕발림까지도.

250만 명의 식수를 제공하는 취수장에서 불과 500m뿐이 안 되는 거리에.   
  22번 27번 국도에서 인접한 순천시 주암면 구산리 산 321번지, 산 334번지로 향하는 길목엔

언제부턴가 세 개의 천막이 설치되었다. 자발적인 방어태세였다.

쓰레기소각장 예정지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주민들의 몸부림이었다.

열열이 환영하여 유치한 결과라고 거짓부렁이나 일삼는 언론의 취재조차 거부하였다.

도로변엔 울긋불긋한 각가지 현수막이 너절하게 걸려 전쟁터 같은 살벌한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어이, 듣는가? 저 말이시,,,”
  헨드폰이 울렸다. 많은 소음들. 병원의 복도였다.
 “저 말이시,,,”
  카랑카랑한 목소리엔 분노조차 실려 얼핏 쇳소리를 연상케 했다.

정호보다 예닐곱 살 위인 복다실 양반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빨리 와야 쓰겟네. 참말로 환장 헐 일이랑께. 어제 밤에 말이시,

그 느자구없는 새끼들이,,,”
  알만했다. 선산리 입구에 설치된 천막을 박살냈다는 것이다.

한 밤중에 그것도 목격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누구의 소행이라고 단언할 수 없는 일이지만 뻔한 일이었다.

정호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가슴의 통증이 또다시 시작된 것인가.

그럴수록 정호는 입술을 더 야물게 악무는 것이었다.
 “내일부터 천막에서 잠까지 자야 되겠습니다. 어르신.”
 “그렇지 않아도 그렇코롬 결정했다네. 자네 말을 듣기도 전에 말이시,,,‘
 
  인천 항공사가 운영하는 공항 쓰레기 소각장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다이옥신이 검출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1호기 쓰레기 소각장에 대한 다이옥신 측정 결과 m2당 기준치 0,1ng(나노그램.10억분지1 그램)보다

0,07ng를 초과한 0.17ng이 검출됐다고 6일 밝혔다.

이로 인해 인천공항공사는 인천 경제자유구역청으로부터 시설 개선명령과 함께

21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공항공사는 하루 70톤씩 처리할 수 있는 소각로 2기를 지난 2001년 3월에 건설해

인천공항과 영종 용유도 주민들이 배출한 쓰레기를 소각하며

1년에 두 번씩 다이옥신을 측정하고 있다.

특히 공항소각장은 공항 새 도시 아파트 단지와 불과 50m 떨어져 있다.
  공항공사는 1999년 소각장 건설에 앞선 환경영향평가 당시

환경부로부터 주민협의체제와 감시단 구성 편의시설 설치 등을 조건으로 허가를 받았으나,

강제사항이 아니라며 주민감시단 구성 등을 미뤄왔다.

또 지난 6월 이후 수차례 주민들과 가진 간담회에서도 다이옥신 초과 검출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공항관계자는 검사 당일 여과포에 미세한 틈이 생겨

다이옥신이 초과 검출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시설을 개선한 뒤

다시 검사한 결과 기준치 이내로 검출됐다고 말했다.
  다이옥신은 인류의 발명품 중 최악의 물질로 꼽힌다.

청산가리의 1만배에 이를 정도로 맹독성이 강해 실험용 쥐에 10억분의 1g만 투여해도 즉사할 정도다.

월남전은 30여 년 전에 종식이 됐는데도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고엽제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다이옥신은 1957년 미국농가에서 쓰이는 제초제에서 처음 발견되었으나

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올해 성수 소각장이 국내 배출기준치의 12배,

선진국 기준치의 64배가 넘는 다이옥신을 배출해왔으며,

일부 대형소각장의 배출농도도 선진국 기준치보다 훨씬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 뿐인가. 쓰레기 매립장 근처에 사는 임산부가

선천적 결함을 지닌 아이를 낳을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것은 

영국정부가 지원한 연구팀이 11년 간 조사 연구한 결과다.
  폐기물 수거차량 플랫폼, 폐기물 저장소, 폐기물 운반시설, 소각로 잔류물 회수장치 보일러 등,

열에너지 회수장치 대기오염방지용 가스 세정기 소각재 회수장치, 집진장치 가스배출용 굴뚝 등,

상상이외의 거대한 부속 건물들이 속속 들어설 것이다.

전문가가 아니면 그 규모와 자연환경에 미칠 영향을 단언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이 지역 사람들은 그게 아니었다. 모두가 환경문제에 대한 제 일인자가 되어 제 멋대로 떠들어댄 것이다.

쓰레기를 한 곳에 모아 불로 태운다는 과정을 가정집의 작업처럼 간단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소각로 본체와 오염방지설비의 사이에서 다이옥신은 주로 발생한다.

쓰레기 속에 본래부터 존재하던 것들의 일부가 소각 시 분해 되지 않은 경유이며

둘째로는 염화벤젠 염화페놀 염화비닐 등

다이옥신류와 관련된 화학구조를 가진 화합물들이 이미 쓰레기 속에 존재하였거나

소각 시 우선적으로 형성된 다음 이들로부터 후속 적인 반응을 통해 다이옥신 류가 형성되는 경우,

셋째는 다이옥신류와는 화학적으로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여러 물질들이

복잡한 반응을 통하여 이들을 형성 한다.

한 번 발생한 다이옥신은 퇴적된 상태로 소멸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예법 싸늘한 날씨였다. 색색의 현수막들이 차가운 겨울 날씨를 더욱 더 꽁꽁 얼 부풀리게 만들었다.
  광천리 5일 장터는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서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5일장을 보기 위하여 모여든 게 아니었다. 얼핏 보기에도 조직적이었다.

장바구니를 든 아주머니들은 하나도 안 보였다.

싸전이나 채소전 기타 잡화전의 문들도 꼭꼭 잠겨 있었다.
 “소각장은 안 된다. 소각장이 웬 말인가?”
  머리를 질끈 동여맨 수건에 쓰여 진 구호문들,,, 모조리 그 소리였다.
 “소각장 결사반대. 청정수 주암호는 다이옥신에 멍들어 간다.”
 “광주 목포 여수 순천 광양시민들은 왜 침묵하는가? 당신들이 마실 식수는 병들어가고 있다.

머잖아 당신들의 생명을 좀먹게 만들 것이다.”
 “엄중하게 경고하노라,,,”
  5일 장터 공 마당은 소각장설치 반대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자그맣고 조용하기만 한 시골 땅에도 검버섯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 잘못을 상대방에게 덤터기 씌우기에 열중한 나머지 이성조차 망각해버린 것 같았다.

소각장건립을 밀어붙이는 행정당국과 소각장 설립을 기필코 저지하겠다는 주민들은

조금도 양보 할 줄 몰랐다.

아예 상대방과 대화할 가치조차 없는 일이라고 깔아뭉갰다.
 “행정당국은 숨어서 우물거리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대응하라.”
 “주민 없는 행정당국은 무엇인가?”
 “탁상행정 그만하고 공개행정 실시하라.”
  지역 곳곳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현상이었지만, 이곳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곤

아예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이 지역의 자치단체 장이 바로 이곳 출신이 아닌가.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지난번 선거에서 얼마나 열성적으로 지지했던가.

속담대로 팔이 안으로 굽었으면 굽었지 밖으로 굽을 리는 없다고

지역적인 특혜사업에선 이 곳이 우선일 거라고 은근히 기대하고 믿어왔던 터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흰 눈발이 풀풀 날렸다.

시선을 왼쪽으로 향하자 거대한 암벽이 강줄기의 흐름을 차단한 채 천년의 고성처럼 우뚝 서있다.

암울하기만 한 암청색, 곰삭은 나머지 색깔조차 분명하지 않은 모습으로 가슴 한쪽을 시리게 만들었다.

옛날과는 너무나 다른 형태였다.

협곡 사이로 큰 뱀이 꿈틀거리듯 어기적거려 느긋하게만 흐르던 강물이 아니었던가.

섬진강의 상류 보성강 지류. 곰팡이 냄새조차 풍기는 암청색의 거대한 절벽은

훤히 트인 시야만 가로막는 게 아니었다. 혈관의 흐름조차 가로막았다. 호흡의 단절이었다.

갑자기 숨결이 멈추는 것 같았다. 주암땜이 생긴지 그렇게 오랜 세월이 안 되었지만

수 천 년의 연륜年倫을 더한 것 같은 이유는 무엇일가.

옛 풍경을 그려보려 애썼지만 역시 상상일 뿐이다.

강줄기를 따라 대광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송광사에 다다른다.

파랗기만 한 강변을 옆 눈으로 흘리면서 싸목싸목 걸어갈 때마다

뒤쪽의 산 그림자는 어느 틈에 뒤를 바짝 쫓아왔다.

잡아라, 잡아라, 마술사와의 숨바꼭질이나 되는 줄 알고 소년들은 얼마나 시시덕거렸는지 모른다.

중학교 시절이다. 벌써 반세기가 지났다는 이야긴가. 괜히 코끝이 시려졌다.

유년시절의 환상은 찰거머리처럼 인생의 질곡에서 좀처럼 벗어날 줄 몰랐다.
  그 산그늘, 호젓한 강변 정취의 흔적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누군가 말을 걸어왔지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고 들을만한 기분도 아니었다.

요란한 함성들, 그리고 징 소리와 어울려진 꽹과리들의 굉음들만이 귓전을 쑤셔대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일어났지만 시선의 겨냥 점은 한 치도 벗어날 줄 몰랐다.

유년 속의 추억들은 물 속에 잠긴 채 솟아 날줄 몰랐다.        
 “쓰레기 소각장이 환경센타라니 사기꾼이 따로 없다,,,.”
  젊은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풍경들. 육칠십이 넘겨 보이는 아낙네들이 대부분이었다.

오십쯤 되는 장년들이 보였으나 겨우 손꼽을 정도였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낯익은 시골 풍경이었다.

실버타운을 연상하기에 알맞을 터였다. 장터 변두리 세멘트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삼백 명은 남아 되었다. 어찌되었던 주암땜 근처에 쓰레기소각장만은 안 된다는 굳은 의지였다.
  주암땜에 담수가 시작되면서부터 예기치 않았던 일들이 일어났다.

안개가 한나절씩 벗어날 줄 몰랐다. 런던 브릿지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주암땜 밑의 광천교가 느닷없이 템스강의 런던 부릿지로 변했다.

순천시 주암면 광천 네거리는 대형 관광차로 좁은 길이 막혀버리기 일수였다.

관광객 때문에 사람이 북적거림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관광차의 행렬이 시들해지면서 땜 주변의 넓은 주차장과 그 부대시설엔 적막감이 깃들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적멸궁寂滅宮을 닮은 그림자만이 휑하니 서 있는 꼴이 되고 말았다. 주

민의 삶과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현상이었지만 인파의 몰림이 뜸해지자

다시금 옛날의 모습으로 복원한 듯싶었으나 허허로운 마음을 메울 방법은 막연했던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먼동이 트기 전부터 맑은 강물의 흐름도 흔적을 감추고

사위를 가로지르는 푸른 산들의 모습도 볼 수 없는 것에 대하여 탓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게 더욱 안타까운 일이었다.

오전 11시가 넘어 들녘에서 땀깨나 흘리고 새참거리 먹을 즈음에야 햇살이 보시시 떠올라

본연의 모습을 슬며시 내비치지만 산천은 항상 무심하였고 항상 그들의 것이기 때문에 어떤 감흥도 되새길 수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세월의 흐름을 알 수 있었고 한 하늘 아래의 풍경이 약간 변한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땜이 준공될 무렵만 해도 쓸데없는 말들이 수없이 오갔던 것이다.

특히 광천 네거리 상가 주민들은 엉뚱한 상상을 했던 것이다.

관광지역으로 개발되면 주위의 상권이 번창하여 경제적으로 새로운 토대를 이룰 수 있다는

막연한 환상에 사로잡히기도 했지만 역시 공염불이었다.

안개 삼일이면 하루의 비와 같다는 과학적인 이론은 아예 귀담아 들을 생각도 안했던 무지몽매한 농사꾼들.

물길을 막아 자연의 흐름조차 외면하는 행위를 개발이랍시고 덩달아 어깨 춤추던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 줄을 늦게나마 깨달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랄까.
  새로운 구호가 시작된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안개도 몸썰 난데 쓰레기소각장이 웬 말이당가?”
  참으로 어이없는 일들이 주민들도 모르는 사이에 소문 없이 진행되었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지리산 정상에서 영호남 화합을 위하여

완 샷- 하는가 하면 하동 화개와 광양 다압을 잇는 다리하나를 만들어 놓고

영호남 화합을 위하여 또 완 샷-풍경이 티브이 화면을 통해 그럴듯한 웃음거리를 또 하나 제공했다.

섬진강 맑은 물 살리기 운동이 그럴싸한 구호만을 앞세운 저주스러운 언어의 유희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사실이,

모든 걸 불신하게 만든 게기는 물론 주민의 분노에 불을 지른 형국이 되고 말았다.

섬진강의 지류 자치단체장들의 모임인 섬진강 맑은 물 살리기 운동은 주민들 호응을 얻기에

너무나 그럴 듯 했다. 일회용 선전물이라도 좋은 일이었다. 주민들의 가슴에 와 닿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맑은 물 살리기에 도움은 못 주더라도 손가락질 할 사람은 없었다.

의례히 구호만을 앞세우는 일들에 이골이 난 나머지 코 방구나 뀔 일이지만

그렇게 해로울 거라곤 없다는 생각이 앞서 강 건너 불구경하듯 심드렁하게 딴전을 피우기 마련이었다.
  “뻘 일들 허니라고 개 나팔 깨나 불어쌓네. 맑은 물 살리기라, 어디 두고 보드라고,,,.”
  댓 글은 안 달았지만 이번에도 마이동풍이었다.
  “또 사기 치는 것 아녀?”
  무조건 또 태클이었다.
  “그려, 그려, 두고 봐야 제,,,.”
  맑은 물 지킴이 섬진강 주변의 단체장 완-샷은 또 하나의 불신만 초래하고 만 것이 아니라

깊은 상처가지 입힌 꼴이 되었으니 참으로 가관可觀이다.
 “니미럴 환장 허것당께, 맑은 물 살리기가 바로 요거여, 콱 쎄나 박고 뒈질 일이제.

맑은 물 쓰레기소각장, 참말로 환장 해뿌러,,,.”  
  심상찮은 바람이 솔솔 일어난 건 몇 달 전부터였다.

말발이 설만한 사람들이 선진지 견학이란 명목으로 관광성 여행을 다녀왔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치밀한 각본이었다.

주로 쓰레기소각장이었고 표가 안 나게 양념 치듯 한두 군데 관광지에 슬쩍 들려 말썽이 날 소재가 없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선심관광은 본색을 드러냈다.

새로 건립된 쓰레기소각장의 번드레한 것 모습에 넋마저 빼앗기고

돌아온 사람들의 입에선 엉뚱한 말들이 새어나왔다.
  누군가의 은밀한 조정에 의해서 쓰레기소각장 유치의 움을 트게 만들었다.

치밀한 사전 공작이 이뤄진 것이 틀림없었다.

찬성하는 쪽은 억지 모함이라고 시치밀 뗐지만 눈뜨고 아웅 하는 격이었다.

들녘 넓고 인심 후하여 남도 땅에서 제일 살기 좋다는 이 곳,

가진 것 없어도 알뜰살뜰 인심하나는 으뜸이라고 여겼는데 이젠 완전히 쌈터로 변하고 말았다.

쓰레기 소각장이란 혐오시설에 대해 무조건 긍정적으로 인정하며

지역개발사업비로 몇 십억을 푼다는 사탕발림을 앞세운 일부 동조자와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려는 세력간의 연대는 많은 주민들의 분노를 앞세우기에 알맞은 거였다.
 “헛 참, 거, 요번 참엔 임도 보고 뽕도 따게 좋은 일이 생겼는데, 웬 시비들이 그렇게도 많아.

관청에서 추진하는 일은 다 뜻이 있는 벱 아니여, 농민들을 잘살게 하려고 그러는데,,,

밥 묵고 헐일 없으면 염불이나 외우고 낮잠들이나 자드라고 잉. 괜히 딴죽만 걸지 말고,,,”
  계속되는 집회현장에서 무심코 흘린 말 한마디 결국에는 불쏘시개를 던지는 꼴이 되고 말았다.

오원부락 강 영감이었다. 치밀한 세뇌작전으로 말미암아 나이깨나 먹은 노인들은

앞뒤도 안 가리고 좋은 일을 한다는 데 아, 그려, 참말로 반가운 소리구먼, 하고

큰 은덕이나 입은 것처럼 웃는 얼굴로 대하는 게 다반사였다.

관청 직원이나 그쪽에 동조하는 말발이 센 사람과 괜한 일로 평지풍파를 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본능이었다.
 “늙은 사람들이야 주는 밥 먹고 등 따시면 고만 아닌가?

그냥 입 다물고 세상 돌아가는 걸 구경만 하면 되는 거지. 뭘 알것능가.

글지만 말이시, 다시 한번 생각해보드라고 잉. 지금 순천시장이 누군가,

긍께 시장님이 고향을 생각하면 생각 혔지 해코지야 헐라등가?”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리라고 여겼지만 주위의 반응은 너무나 싸늘했다.

체통을 지키겠다고 뜸을 드리는 중이었다. 
  “뭣이라고? 어떤 영감이 또 실탑잖은 소릴 하는 거여 ,,,,,,,”
  느닷없이 불거진 목소리의 주인공이 겹겹이 쌓인 사람들 틈에 가려 누군지 알 수는 없었지만

목줄에 힘깨나 실린 게 분명했다. 한 술 더 떠,     
 “나이를 묵었으면 좋게 묵어야지, 그걸 말이라고 허시씨요?”
 “아니, 머시랑가? 어른을 몰라봐도 유분수지. 자넨 애비도 없고 에미도 없는가?

데모만 앞장서지 말고 말 뽄새부터 고쳐먹으라고 잉.

참으로 고얀지고, 그래 내가 못 헐 소리 했능가? 

숨어서만 소릴 지르지 말고 어디 얼굴이라도 한 번 보드라고.

성깔대로 이 늙은이를 메부칠 작정인감,,,‘
  깐깐하기로 소문난 강 영감이 호락호락 하게 물러서지 않으려는 듯

실눈을 사람들 틈 속으로 부지런히 헤집다간 멈칫거렸다.
  천만뜻밖이었다. 강 영감의 큰아들 경호와는 어렸을 때부터 친했던 꾀복쟁이 친구 진수의 무안해 하는 꼴이

눈대중 속으로 들어오는 것 아닌가. 인접한 마을에 살면서도 근자에 만난지가 한참이나 된 듯싶었는데

하필이면 이런 곳에서 맞닥뜨리다니. 강 노인은 미적거렸지만 진수는 일순간 낭패감이 앞섰다.

안 되먹은 흰소리가 나오면 대꾸하는 말이 도가 넘칠 수가 있어도 같은 또래들끼리야 무관하겠지만

그게 아니었다. 성깔이 난다고 멋대로 던진 말 한마디 때문에 이런 난감한 처지에 몰리리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강 영감인줄만 알았으면

부아가 더 치밀 소리를 했어도 모른 듯이 눈감아야 할 처지가 아닌가.

많은 사람 중에서 진수가 불거져 야문 소리로 면박을 줄 필요야 없었던 것이다.
 “아이고 어르신, 뉘신 줄 모르고 함부로,,,”
  어쨌든 그놈의 환경센타란 쓰레기소각장은 간 데마다 말썽을 일으켰다.

가까운 이웃을 평생의 적으로 만드는가 하면 넉넉한 성깔조차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빈대창시로 만들어버리니.

이웃으로 살아오면서 실타래같이 엉킨 좋은 인연들은 하루아침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쪽 아니면 저쪽, 붉은 색 아니면 청색, 끼리끼리 그런 꼴이었다.

진수가 무안한 나머지 얼굴을 붉히자

강 영감도 찡그렸던 얼굴을 마지못해 펴 보였지만 뭔가 미심쩍어 멈칫거렸다.
 “그건 그거고 말이여, 이런 말 물어도 암시랑토 않을랑가 모르겠네.

멍청이 같은 노인네라고 퉁사리만 줄 게 아니라 조곤조곤 말이시,,,.”
 “어르신인 줄도 모르고 정말로 쥑을 죄를 졌구만요.”
 “고 이야긴 인자 관두더라고. 자네나 나나 무신 감정이 있었겠능가.

요놈의 자리가 고렇코롬 만든 것이지,,,”
  강 노인의 얼굴이 맑아지자 진수의 표정도 밝아졌다.
 “가만히 봉께로 좀 이상한 생각이 드는구먼.

귀 동냥한 소리를 멍사모르고 했는데 고것이 아닌 것이지?

다짜고짜 소리 친 자네가 애당초 잘못인 것은 분명한데, 그게 아닌 것 같단 말이시...”
  강 노인도 성깔이 난 나머지 목청을 올렸지만 이내 분위기를 파악한 것 같았다.
  “어르신 정말 죄송합니다. 전부가 제 잘못이니,,,”
  재빠르게 상황판단을 한 정호가 얼른 참견한 바람에 뜨악했던 분위기가 일순간 변했다.
 “뭣을 또 쓸데없는 소리여. 그나저나 몸조차 성찮은 사람이 애쓰는구먼,,,”
 “아닙니다, 어르신들조차 이렇게 나와 주시니 정말로 고맙습니다.

쓸데없는 고생을 시키는 것 같아 죄송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쓰레기소각장 유치를 위해 아둔한 주민들을 상대로 추진된 세뇌작업은

거의 지하당 조직을 연상하기에 알맞았다.

맹목적인 지지자들로 만들었다.

로또 복권 당첨 행운아로 여기는 생각을 돌려세우기란 그렇게 쉽지 않았다.

별량을 예정지로 선정했지만 주민들의 완강한 반대에 처하자,

서면 지역으로, 그러다가 어느 사이에 250만명의 식수 근원지가 되는 주암땜 취수장에서

겨우 500M도 안 되는 곳으로. 어떻게 보면 이 지역의 주민들을 완전히 바보로 취급해버린 꼴이었다.

게다가 전 주민이 대거 찬성하여 지역이기주의의 관념을 초월한 모범적인 처사라고.

정호는 몇 백번이나 되풀이 했던 말을 강 노인에게 누누이 설명했다.
 “몇 십억을 이 지역을 위해 쓰겠다고, 건 사탕발림입니다.

어르신한테 돌아갈 돈은 한 푼도 없습니다.

이렇게 좋은 걸 별량 사람들이나 서면 사람들이 천치들이 아닌데 반대를 했겠습니까.

진짜보물 같았으면 우리 천신도 안 됩니다.”
 “그러고 보니 죄다 농판이들이군,,, 근데,,,”
  강 노인은 어이없게 웃었다. 쓰레기 소각장만 들어선다면 별천지로 둔갑할 것 같은 환상이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게 어이없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확실히 구별할 수 없다는 듯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시장이 여그 사람 아닌가벼?”
 
  엉뚱하게도 머나먼 나라 아메리카의 예를 곧장 앞 세웠다.

시가지 중심부에 건립된 쓰레기 소각장은 새로운 관광단지로 각광을 받은 나머지 시의 명예를 드높이고

한 발 더 나아가지역경제에 커다란 이바지를 했다는 것. 그뿐인가

한국에서도 이렇게 성공한 곳이 한두 개만이 아닌데,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한다면

지역개발을 언제 할 거냐는 둥.

거기에 솔깃해진 사람들은 당장 로또복권에나 당첨된 것처럼 기가 돋아 그려, 그려, 소리를 연발하였고

일사천리로 쓰레기소각장 유치작전은 전개되었다.

고샅길을 누비는 발짝들은 사람의 흔적이라도 숨길 듯 가만가만 움직였다.

말소리조차 정겹게 도란거렸다. 의례히 말끝에는 암, 암이었고

웃음소리조차 누가 엿들을까 싶어 조신하는 투가 역역하였다.
 “살다보니 별꼴을 다 보것소. 천지가 개벽되는 것 아닝게라우?”
  철없고 사람 좋은 노인들은 넥타이를 맨 손자뻘 되는 면사무소 직원들을 향해,
 “오지게 고생도 많이 해쌓소”
하고 공치사를 던지는 건 예사였다.  
 “자 여기에 지장을 찍으십시오.”
 “하믄요.”
  쓰레기소각장 유치를 위한 주민진정서는 완벽하였다. 문제를 제기할 만한 사람은 제외하였다.

부족한 인원이야 마을 회관에 비치된 인장을 사용하면 그만이었다.

다수원칙에 의하여 주민의 유치신청은 이렇게 합법화되었다.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고 주민들의 유치진정서는 무효라고 주장했지만

소귀에 경 읽기나 다름없었다.

쓰레기소각장반대투쟁에 앞장 선 사람들은 지역발전의 훼방꾼으로 몰아댔다.

부나비처럼 정처 없이 떠돌며 퇴짜 맞기 일쑤였던 쓰레기 소각장은

섬진강 맑은 물 근원지인 주암땜 취수장 근처에 자리 잡았다.

멋진 환경정책이었고 섬진강 맑은 물 지킴이의 원조遠祖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었다.

조직적인 저항이 시작되었고 긴가민가하던 주민들도 합세하였다.

찬성에 동의한적 없다는 볼멘소리들이 이곳저곳에서 불거졌다.

쓰레기소각장유치신청에 도장을 찍은 일은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말도 안 된 소리지, 지 손목데기로 도장 찍은 것도 아니라고 발뺌이여?”
 “그때는 그때고, 쓰레기소각장이란 말은 털끝만치도 안 했음스로.

 환경센타라고 허니께 오살나게 좋은 것인 줄 알고 도장을 콱 눌러버렸제.

쓰레기소각장이라면 누가 찍었것어. 양심이 있으면 말이나 해 보더라고 잉.

 이왕이면 합수통도 갖고 와야지. 그 사기꾼 같은 놈들이.”
 “뭣이라고?”
 “그려, 내 말이 틀렸어? 다들 허기 싫다고 난린데 뭣이 좋다고 억지로 끌어 오냔 말이여.

 게다가 땜 곁 식수 취수장 옆으로. 팔자를 고칠 돈 뭉텡이가 쏟아질 줄 아는 모양인데 말짱 구론산이여, 구론산.

 찬물 먹고 속 챙기드라고, 잉. 높은 놈들 장난에 놀아나지 말고 우리 땅 우리가 안 지키면 누가 지키겠는가.”
 “참말도 깝깝도 허시. 쓰레기소각장이 생긴다고 뭐가 나쁘당가. 같은 값이면 생색도 내고 실속기도 잡고 말이여.”
 “남의 장단에 춤들은 그만 춰라고. 참말로 오장육부가 터질 노릇이시,,,”
  간곳마다 입씨름들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쓰레기소각장예정지로 정착한 과정을

웬만한 사람은 거의 다 알게 되었다. 환경센타의 의미까지.

얼렁뚱땅, 하는 사이에 저울추가 기울어진 것도.
  볼썽사나운 현수막들이 국도주변에서 나풀거린 게 벌써 1년이 넘었다.

구산리 산 334 321번지 쪽으로 가는 길목을 차단했다.

지름길이 되는 선산마을 앞은 물론, 고샅길이 시작되는 금곡부락 입구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금곡부락 옆쪽에 간단하게 대형 천막이 설치되었다.

인심이 흉흉해진 것은 물론이 살기조차 팍팍한데 더한 재앙까지 겹친 꼴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농가 일손인데

이렇게 쓸데없는 일에까지 신경을 써야 되는 농민들의 분노는 하늘 높은 줄 몰랐다.

끼리끼리 모여 앉으면 상상할 수 없는 육두문자가 저절로 나왔다.

기만술책이나 다름없이 밀어붙이는 관가에 대한 분노는 반대투쟁 가두행진을 불러 일으켰다.

섭외 단을 조직, 선정 자체부터 정상적이 아니었음을 누누이 설명했지만 언론 기관 환경단체에서도 외면했다.

반응은 지역이기주의라는 냉소.

 250만 명의 식수 근원지임을 누누이 설명했지만 관여할 필요가 없다는 투였다.

그들도 역시 한 패거리인가.

하잘것없는 문제점이라도 제기해준다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무위였다.

결국엔 어느 지역이던 설치되어야 마땅하지만 완전한 속임수,

게다가 맑은 물 살리기 어쩌고저쩌고 하던 작자들이 이런 작태를 부리다니.

게다가 한 술 더 떠 관광단지가 되어 삶의 질을 높여 주기 위하여 이쪽으로 배려했다는 어설픈 생색내기.

누군가 미친 듯이 악을 바락 썼다.
  “그렇게 좋으면 연향동 큰 거리나 순천 시청 옆에다 딱 부쳐서 맹글먼 될 것 아녀.

농사짓는 놈들한테는 다 소용없는 일이구먼. 뭐시라고? 관광단지, 언제 해봤어?

농투성이들 배 아파라고? 주민의 뜻 조아하제. 나, 도장 찍은 일 없어.

어떤 놈이 맘대로 내 도장을 찍었어?

도장 무단 사용죄로 콱 고소했뿔팅께 알아서 허드라고 잉.”
  한술 더 떠,
 “환경단체, 뭐 신문때기들, 고것들도 똑같은 것들이단 말이시.”
  소문에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환경평가 전문기관에 용역을 발주하였으므로 후보지 환경영향평가를 한다는 것이다.

환경 평가결과 부적지라고 판단되면 자동적으로 쓰레기소각장예정지가 취소되니

결과나 한번 보자고 그럴듯한 수작을 부렸다. 하지만 그걸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도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건 뻔한 거였다.

나름대로 체인을 동원 정보수집하기에 열을 오렸다.

내일, 모레, 후보지 환경영향평가단이 온다는 소식만 들리면

현장으로 가는 길목을 차단하고 막된 몸짓으로 저항했다.

며칠거리로 면사무소 주위를 맴돌며 규탄시위를 벌렸다. 후보지환경영향평가는 필수적인 조건이다.

이 과정을 저지하는 게 급선무였다. 예정지 부지측량도 주민들의 결사적인 방해 때문에 이룰 수 없었다.

선정과정에서 주민들을 기만한 것, 쓰레기소각장의 위치 선정 등에 문제가 있었음이 백일하에 들어났지만

추진기관인 순천 시청에선 꿀 먹은 벙어리모양 끝내 모르쇠로 일관했다.
  "순천시청을 박살내자, 순천시민들은 뭣 하는가? 너희들이 먹을 식수는 다이옥신에 멍들어간다.“
  분노의 벽을 넘어 절규에 가까운 웽웽댐을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은 것이 더 분통 터질 노릇이었다.

대형버스를 동원했다.

작을 때가 세대 쯤. 많을 때는 5, 6대의 버스를 동원하여 백리에서 십리가 부족한, 구 십리 먼 먼 시청으로 향하였다.

말로만 듣던 연좌데모는 끝날 날이 없었다.

시청 앞 데모가 20회, 면내 데모가 40회를 넘었다.

많은 면민이 참여하여 성금을 각출 버스 동원비에 충당하였지만 어림없는 일이었다..
  이젠 지친 것인가. 소쩍새 울음대신 죽림천 여울 소리가 이따금 밤의 적막을 깨트렸다.

벼 베기가 끝난 들녘은 너무나 황량했다. 만월이 아닌, 초이렛날의 초생 달이 뜰 때면 더욱 그랬다.

삶의 의욕이란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고즈넉함만이 달그림자의 여운처럼 흐릿하게 깔리는 것이다.

풀물 든 신짝을 벗자마자 코끝을 후벼 파는 지독한 땀 냄새,

풀밭위에 아무렇게나 지은 천막 속으로 스며든 찜통더위.

개구리들의 합창이라도 들리는 여름철 밤이면 욍욍거리는 모기떼들의 성화에 밤잠을 설치긴 했어도

 이렇게 허황하지는 않았다. 들판을 가득 메운 벼 포기들의 숨 쉬는 소리가

피곤한 육신에 자장가의 코러스로 전해졌던 것이다. 그러나 작은 소망도 무망한 일인 것 같았다.

공들여 지었던 벼농사가 허나마나 한 꼴이 된 이후엔 더욱 그랬다.

죄다 허공을 향한 메아리가 되고 만 것 아닌가. 소리 없는 전쟁은 언제 끝날 줄 몰랐다.
  반대투쟁의 선봉 역할을 하던 정호마저 며칠 전에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한달정도의 요양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걱정거리구먼.”
  “정호가 없는 틈새기를 비집고 환경평간가 뭔가 헌다고 안 올랑가 모르겠어?”
  그렇지 않아도 실하지 않은 몸을 너무나 무리한 게 틀림없었다.
 “요 정도 됐으면 걱정 없어. 첨엔 뭐가 뭔지 몰랐지만 이젠 알만큼 알았응께.

정호가 없더라도 헐만 안 해여?”
  그래도 걱정이 앞섰다. 덜컥 들어 누워버리면.

입들은 다물고 있었지만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 안 할 수 없었다.

멀쩡한 사람도 느닷없이 죽는다는 그 병이 얼마나 무서운 줄 알만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쓰레기소각장위치 선정위원회에서 위치선정을 했으면 즉시 결정고시를 해야 하는데도

그걸 머뭇거리고 뜸만 들이는 게 아무래도 미심적은 거였다. 반대하는 주민들이 느슨한 틈을 타서

뒤통수를 칠 가능성이 다분했다. 어기찬 농성이 계속될 수는 없는 일이다.

먹이를 훔치려는 이리떼들의 음흉한 눈길은 상대방의 허점을 발견하면 눈 깜작할 사이에 해치우기 마련이다.

알맞은 기회가 지금이 아닐까. 위치선정 결정고시를 하고 환경영향평가조사단을 즉시 파견한다면,

장수 잃은 대열은 금방 오합지졸로 변할 게 아닌가. 결정고시만 나면 행정소송까지 하려고

변호사까지 선임해두었지만 짜고 밀어댄 데는 속수무책일 것이다.

반대투쟁의 리더라 할 수 있는 정호는 물론 정호를 보좌하는 진수까지 부재중이니,

철저하게 대비한다지만 뭔가 허전한 건 사실이다. 
  말들은 안 했지만 깊어가는 밤의 적막은 짙은 한숨만 내쏟는 그들의 심장에

무거운 바윗덩이를 올려 논 거나 다름없었다.
  잠이 안 오는지 누군가 몸통을 뒤틀며 씨부렁거렸다.
 “아무래도 일통이 터질란 모양이제,,,‘
 “썩어빠질 놈의 시상 뿌랑구조차 확 빼버리면 시원하겠네 그려.”

  아, 신라에 달밤이란 노랫가락이 구성지게 천막 안에서 흘러나왔다.
  천막이 박살나버린 다음부터 잠까지 자는 주제에 무슨 흥 타령인가.

노랫가락이 아니라 비탄에 서린 영가靈歌나 다름없었다.
 “집도 절도 없는 피난민처럼 청승을 떠는 데 뭣이 좋아서 노랫가락이여?

늘그막에 콩클대회나 나갈랑가?”
  누군가 신경질적으로 퉁바리를 줬다.
 “그러게 말이여,,,”
 “지미랄 요 일이 언제 끝날랑가?”
  몇 달 전과는 사뭇 다른, 지친 목소리였다.
 “그건 그거고, 벌써 몇 달째여,,,”
  누군가 한숨을 꺼지게 몰아쉰다.

가을걷이가 끝나고부터 냉기 때문에 잠을 편케 잘 수 없는 형편이었다.

대형 전기장판을 깐다 해도 뜨뜻한 온돌방하고는 천향지판이다.

얼른 잠이 안 드는지 또 다시 이어지는 신세타령들이다.
 “나락 매상도 안 밭아주고, 농협 빚 갚을 일이 캄캄하단 말이시.”
  허나마나 한 소리로 누군가 침묵을 깨트리자 다물었던 입들이 벌어졌다.

벌써 자정이 가까워 오지만 잠 잘 생각은 접어둔 것 같았다.

계속된 한데 잠에 공동취침이다 보니 저녁만 먹으면 깊은 잠에 빠져드는 습성도 변해버렸다.

쓸데없는 잡담들에 쓰레기 소각장건립에 대한 성토,

신세타령들을 하다 보면 으레 자정이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런 걱정일랑 관두더라고. 농협에 빚 없는 사람은 씨도 없으니까.

걱정하면 뭘 해여. 흰 머리칼만 늘어난단 말이시. 세월이 약이여,

세월이 지나면 다 해결될 것잉께 쓸데없는 걱정은 말더라고,,,”
 ‘‘그러고 봉께 자네 말이 명언이군.“
 “‘그려 공자 예수 말이 따로 있는가?“
  희미한 전등불빛 아래서 서로들을 처다 보고 허탈한 웃음을 지어보이다

애꿎은 담배연기만 피워 올렸다.

무료한 시간을 땜질하기 위하여 켜 놓았던 티브이에 뉴스가 나오자 대곡 양반이 체널을 딴 데로 돌려버렸다.
 “왜 그려. 얼른 돌리란 말이시.”
 “똑 같은 놈들, 보기도 싫구먼,,,”
 “그래도 뉴스는 봐야지, 안 그렁가?”
 “자넨 창사도 없는가?”
  대곡양반은 괜히 성깔이 난 듯 티브이 화면을 향하여 갑자기 악을 썼다.

칠십이 넘었어도 젊은이 못지않게 목소리도 깐깐하다.  

 “저 보소, 뭐 농업인라고? 우리가 사람인가, 개짐승들이제.

울화통이 목가심까지 차오른단 말이시. 이 미친 짓이 일년 하고도 얼마여?

그 난리를 피우고 악다구니를 써도 뒤도 안 돌아본 것들이 농민이 어쩌고저쩌고.

나 말이여, 농담이 아니랑께. 유서 써놓고 제초제 마실라마. 그때사 맑은 물 살리자고 된통 떨팅께,,,”
  농업인의 날이란 걸 농민은 알 수 없었다. 높은 양반들의 날, 것 치례 행사를 위한 날이 아닌가.

11월 11일. 엉뚱하게 삐삐로 데인가 빼빼로 데이로 난리를 치더니 농촌이 어렵습니다,

농촌의 어려움을 호소한 채 유명을 달리한 젊은이의 죽음을 두고 농촌의 어려움을 이제야 안 듯 난리 발광이다.

 14일에는 수원 어디선가 제초제를 마시고 경상북도 성주 어디서도 또 그러고.

쌀 협상 국회비준에 반대하며 15일 오후 여의도 공원에서 집회를 가진 농민들의 진출을 가로막은 전경들과

어우러짐이 신나게 방영되고 있었다. 경찰차가 분노한 농민들의 손에 의해 방화되는 장면도 나왔다.

여의도 문화공원 주위는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깨어진 병 조각과 보도불럭만 뒹굴고 있었다.

전경과 농민들의 부상자도 엄청나게 많은 모양이었다.
 “저런이라니,,,”
 티브이 화면에 쏠린 시선들이 일제히 비명을 삼켰다.

몰매를 맞는 나이 어린 의경에게 카메라의 앵글이 쏠렸다.

잠시 후에는 보도에 벌렁 누워버린 농민을 향해.
 “지수는 괜찮을랑가 모르겠네..”
  순천 농민회회원들과 함께 새벽밥을 먹고 서울로 간 진수 때문에 걱정들이 태산 같았다.
 “별 일이야 있을라고.”
  말들은 그랬지만 마음들이 편한 건 아니었다.
 “우리 면에서는 절대 못 간다고 뻗댈걸 그랬어.

농민회, 농민회, 해도 즈그들이 우리한테 해 준 게 뭐가 있어.

일년 동안 이 지랄해도 코빼기 하나 안 비치고 불구경만 한 놈들인데. 우리는 농민이 아닌가?,,,”
 “하먼, 그 말도 일리는 있구만 그려.”

  심신이 지치면 만사가 귀찮은 것일까. 간밤엔 하얀 눈송이가 내렸다.

평화로운 남녘땅에 나린 초설初雪이었다.

눈앞에 번지는 주암 들도 흰옷으로 포장하여 떠오르는 아침 햇살 때문에 눈부셨다.

아름다움다움이었지만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허허로움이었다. 간밤에 아무런 일이 없었음을 확인한 몇 사람들이 바람에 펄렁이는 천막의 문틈을 걷어내자

싸늘한 초겨울의 차가움이 몰아쳤다. 비보였다. 혹시나 했던 의구심이 사실로 나타난 것이다.

 데모에 앞장섰던 진수가 여의도 성모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은 면사무소 앞에서

“쓰레기소각장 철폐”라는 현수막을 앞세우고 행진을 시작한 바로 직후였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정호의 건강상태가 절망적이라는 소식도.
  며칠이 안 가서였다. 컴프터의 자판기 속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진전된 건.

쓰레기소각장이란 이름대신 환경센터예정지 설립공고, 환경영향평가, 완료였다.

부언하여 일부 저항세력이 있었으나 주민 대다수가 찬동하여,,,,,,,

그날 밤에 달맞이꽃 행사는 거창하게 진행되었다.

싸락눈이 안 녹은 주암 들 앞에 화염이 충천했다.
  구산리 산 321, 334번지 쪽으로 향하던 길목마다 세워진 세 개의 천막들이

거창한 불꽃을, 분노의 함성과 함께 먼 하늘로 쏘아 올리고 있었다. / 끝.

 

*원작출처 : [희구당집1618] - 다음 블로그   http://blog.daum.net/ljbb1618 

‘질거운뜻 부지런팔뚝 갖이고’
‘가가(家歌)’부르며 더욱더욱 나아가는
곡성 목사동 농부소설가, 이재백(李在白)
2007-05-07남인희 기자  

▲ 곡성 목사동 이재백씨 댁엔 할아버지대로부터

50년 넘게 이어져 온다는 가훈과 ‘집노래(家歌)’가 있다.

ⓒ 김태성 기자 / 2007-05-07


“물오리들이 하늘로 날아오를 때의 울음소리가 푸른 비 내리는 것 같다”해서 압록(鴨綠)이라던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손꼽히는 석압로(압록∼석곡). 느릿느릿 순하게 흐르는 보성강 물길 따라가다

아미산 자락에 옴팍하게 안긴 마을 하나로 접어든다.
흐르는 듯 모나지 않은 고샅길을 만들고 있는 이끼 낀 돌각담들이 정다운 목사동이다.

 

실록을 쓰는 사관처럼 농촌 실상 기록
그 <돌각담>을 표제작으로 지난해 늦둥이 첫 소설집을 내놓은

이재백(69)씨가 이 마을(곡성군 목사동면 신전리)에 산다.

그는 고향을 지키며 소설 쓰는 농부다. 아니 농부 소설가다.

두 가지 일을 양 손에 들었으니 요새 사람들 하는 말로 치면 ‘투잡족(族)’이다.

주경야독이라고, 낮에 배밭으로 논으로 고샅으로 쏘다닌 발걸음은 밤엔 형광등 불빛 아래 그대로 컴퓨터에 옮겨진다.
<옛 사람들이 살아왔던,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 많은 흔적들이 얽히고설킨 황토 구릉마을,

그 입구마다 자그만 비문이라도 세워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아픔이, 그리움이, 분노가, 함께 하는 마음이

절절이 스며 있다고…>.
소설집 《돌각담》에 붙인 작가의 말이다.

▲ 벼농사만 짓고 살던 마을에서 처음 배농사를 시작한 이재백씨.

가가(家歌)의 노랫말처럼 그가 품은‘질거운(즐거운) 뜻’과 ‘부지런(한) 팔뚝’덕에

80여 농가가 참여하는 곡성배영농조합에선 연간 500톤이 넘는 배를 수출하게 됐다.

ⓒ 김태성 기자 / 2007-05-07


“젊은 사람들이야 이것이 전설도 아니고 뭣도 아니고 뭔 소린 줄도 모르고 관심도 없겠지만,

우리의 족적에서 사라질 것들을 새기고 농촌을 그려낼 수 있는 마지막 세대라는 생각으로 작품을 씁니다.”

잊혀져 가는 우리네 농촌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의 소설엔 마을의 역사나 농촌의 소소한 풍속들도

오롯이 재현되고 있으니, 소설가 이순원이 이 소설집에 붙인 평처럼

<그의 소설은 한 구석 새것에 대한 맹신적 경쟁이 없다.

이 체구 조그마한 늦깎이 작가는 늦었다고 서두르는 법 없이 자기 걸음으로 살아온 시대를 얘기하고

자기가 본 시대를 증언하며 또 이야기한다.>
서울에서 문예창작과를 나온 청년이 농촌으로 귀환했을 때, 사람들은 도대체 왜 돌아왔느냐고 물었다. 
“농촌에 살며 농촌을 쓰기 위해서였죠. 지금도 후회는 없어요.”

오래 전에 변방의 문학으로 쇠락해 버린 농촌문학을 숙명인 양 고집하는 시대착오적인 외곬수.

그이가 마치 실록을 쓰는 사관처럼 농촌의 실상을 기록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신 저녁마다 흙 묻은 장화를 벗는 농부이기 때문이다.
“소설 쓰는 이들 앞에서는 나는 농사도 짓는다 까불지 마, 허고

농사짓는 이들 앞에선 나는 소설도 쓴다 까불지 마, 허고 사는 것이지요, 허허.”

이 작달막한 어르신의 얼굴에 흐르는 봄햇살 같은 웃음을 대하노라면 ‘까불지 마’라는 엄포가

실은 어디서나 눌릴 것 없는 처지이면서도 늘 수그릴 줄 아는 겸양에서 나온 말씀이란 것을 알게 된다.

그러기에 이생진 시인은

<시골에서 배농사를 하며 글을 쓰는 이재백/ 서울에서 시를 쓰는 내 손이 부끄러워>라고 쓰지 않았겠는가.

20호 자가일촌(自家一村)을 이루고 사는 마을.

6000여 평 배밭에 3000여 평 벼농사를 손수 짓고 사는 그이지만

혹여 조금치라도 서툰 일 앞에서는 나이 불문, “일헌 데는 니가 내 선생이다” 고개 숙이고

한 수 배우기를 꺼리지 않는다.

집앞 마당의 바위좌대에서-이재백   ⓒ 김태성 기자 / 2007-05-07


벼농사만 짓고 살던 마을에 처음 배를 들여와
“지켜야 할 것은 지키고 바꿔야 할 것은 늘 자꼬 바꿔치기해야 해요.”
전통이라고 해서 무조건 답습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진취적 기상은 이 작은 마을을 배 수출 단지로 바꿔 놓았다.

지금이야 ‘골짝나라’ 곡성의 ‘목사동 배’가 명성을 얻었지만

벼농사만 짓고 살던 이 마을에 처음 배를 들여 온 공로는 이재백씨 부부에게 있다. 
“나주에 혼자 가서 들판을 본께, 어디 과수원에서 아저씨가 전정을 하고 있어요.

음료수 한 병 사 갖고 가서 꼬치꼬치 묻고 한번 모셔다가 전정 배우고 그 뒤로는 혼자서 했지요.”

시집와서야 농사를 배웠다는 그의 아내 이행숙(62)씨는 타고난 장손며느리였나 보다.

가세를 지키기 위해 내 몸을 희생하겠다는 각오로 배농사를 시작했다.

시어머니 생전에 “니 손은 참 좋은 손이다”는 치하를 들은 걸 보면 이 며느리의 바지런한 성정이 짚어진다. 

그렇게 배밭을 일구어온 지 30년이 넘었다.

배영농조합법인의 부지로 쓰겠다고 1000여 평의 멀쩡한 배밭을 무상으로 내놓은 남편에게 아내는 할 말이 많다.
“판판한 평지 땅은 마을에 내주고, 마느래(마누라)는 쩌 높은 산비탈을 다리 아프게 오르락내리락 일하러 가라 허데요.”

덕분에 80여 농가가 참여하는 곡성배영농조합에선 연간 500톤이 넘는 배를 수출하고 있으니,

목사동 골짜기는 떠나가는 농촌이 아니라 바야흐로 돌아오는 농촌이 돼 가고 있는 것이다.

내 식구보다 남의 식구 좋으라고 한 일이건만, 남편은 생색도 내지 않고 덤덤하게

“내 배밭 가차우니 내 일 보기도 편허잖여” 응수하고, 항변하던 아내의 얼굴엔 슬몃 웃음이 비친다. 
부창부수다. 부부는 닮았다.

▲ 그의 서재 희구당. 할아버지 때부터 지녀온 고서며 누렇게 바랜 옛날 문예지부터

요즘 신간 서적까지 사방으로 병풍을 두른 듯 촘촘하고 알뜰하게 정리된 것이

오래된 남와 어린 나무가 함께 자라는 숲에 들어선 듯.

ⓒ 김태성 기자 / 2007-05-07


편지 한쪽도 금쪽처럼 간직하는 그 마음
5대째 120년 세월을 이어 온 그의 집.

그 한 세월, 고물고물 기어다니던 갓난쟁이가 혈기 푸른 청년이 되었다가 순하게 늙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집이다.
바지런한 부부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을 성 부른 그 집의 안팎엔 고요하고 정갈한 윤기가 스며 있다.

사람으로 치자면 집은 외화내빈과는 도무지 거리가 먼, 속이 꽉 찬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사랑채에 들인 그의 서재엔 예사롭지 않은 필치의 현판이 걸려 있다.

희구당(喜懼堂). ‘즐거울 희(喜), 근심할 구(懼)’,

기쁨과 두려움을 안고 있는 처소라니 당호라기보다 인생 철학쯤으로 들린다.
“좋은 일 있으면 까불고 힘든 일 있으면 절망하는 것이 사람의 습성이지만,

좋은 일 앞에서도 너무 까불지 말고 절망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고 즐거움을 찾으라는 뜻이지요.”

서재는 온고지신하는 이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것 같다.

할아버지 때부터 지녀온 고서며 누렇게 바랜 옛날 문예지부터 요즘 신간 서적까지

사방으로 병풍을 두른 듯 촘촘하고 알뜰하게 정리된 것이 오래된 나무와 어린 나무가 함께 자라는 숲에 들어선 듯.

그의 소장목록엔 가령, 공초-오상순에게서 받은 담배 한 갑이 그 시절의 추억과 함께 끼여 있는가 하면,

희부연 창 옆에 걸린 액자엔 누렇게 바래가는 흑백사진 한 장이 남모르는 진가를 가진 보물인 듯 연륜을 더해 간다

(사실은 어느 잡지에서 뜯은 것이다).

“나한테 들어오는 것은 신문지 하나라도 안나간다”는 그이.

글자를 다루어 영혼을 아로새기는 작업을 하는 그이기에 인쇄물에 대한 애착이 각별하다.

“만든 이의 혼을 담은 것 아닙니까. 전라도닷컴도 한 200년 지나면 문화유산이에요.”
편지 한쪽도 금쪽처럼 여기는 그이의 집에서는 할아버지의 편지도 자랑스러운 역사고 유산이다. 

▲ 5대째 120년 세월을 이어 온 그의 집.

바지런한 부부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을 성부른 집의 안팎엔

고요하고 정갈한 윤기가 흐르고 속이 꽉 찬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 김태성 기자 / 2007-05-07


콩나물 깍대기도 없이 입으로만 전해지는‘집노래’
빛바랜 서책들 곁엔, 그것이 만들어진 세월을 짐작케 하는 표구 액자가 눈에 띈다.
할아버지대로부터 70년 넘게 이어져 온 가훈과 ‘집노래(家歌)’다.
만손일심(萬孫一心)하라 전해지는 가훈은

근면·진취요 ‘가도(家道)중심’은 화락(和樂)이다. 그 아래 씌어진 것은 ‘집노래’.

<깨끗한 피 궂센 힘 모아 닐우어/ 이천해 니여온 우리집 역사/ 겨레는 억천만 마음은 하나

/ 집을 위한 몸바친 우리집 주의/ 질거운 뜻 부지런 팔뚝 갖이고/ 더욱더욱 나어갈 우리집 가훈

/ 가론 땅갓 세로는 하늘과 함께 / 내 때 내손으로 될 우리집 가도(家道)>
이름도 생소한 집노래. 그는 “내 한번 불러 볼까요” 하고 첫 소절을 우렁우렁 부른다.

시조가락으로 할아버지가 부르던 것을 귀에 담아 기억한 것이다. 

“시골영감이 밥묵고 헐 일 없어서 헛폼 잡았는가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집안에 집노래가 있다는 게 자랑스럽지요.

콩나물 깍대기도 없이 입으로만 전해지는 놈이니

음대 작곡과 다닌다는 집안 아이놈한테 악보로 한번 정리해 보라고 할 참입니다.”
노래 속 ‘질거운(즐거운) 뜻 부지런(한) 팔뚝’을 좌우명처럼 살아가는 그이.

산등성이 희디희게 덮었던 배꽃들 다 지고 나면

낮으로는 새 잎 푸른 자리마다 종종거리고,

밤으로는 희구당 문 앞에 대숲 바람 소리 청정하게 흘려 놓고

오늘 아니면 새기지 못할 글을 새기고 있으리라.

기사출력  2007-05-07 16:53:13  

ⓒ 전라도닷컴

 

*출처 :광주전남소설가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 어이-쇠

 

 

 

* 글이 있는 돌각담 *

 

 

돌각담 육필비-전라남도 곡성군 목사동면 신전리

 

어떤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었습니다.

누구나 어른이 되는 것이어서 그 아이도 어른이 되었지요.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고 해서 서울로 왔다가,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닌 것 같아 고향으로 돌아가버렸습니다.

고향사람들과 비료를 나누고,

고향 산들에는 과일을 심고,

시간이 나면 젊은 날의 초상을 그렸지요.

그러기를 40년.

코 흘리개 아이들도 성장해 가정을 꾸리고,

어느덧 그에게도 황혼이 왔지요.

그 어느 황혼의 시간에서,

그는 새로운 인생을 만들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도 틈틈이 그가 그리던 젊은 날의 초상은,

그를 소설 돌각담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58세에 신인문학상을 받게 된 것이지요.

 

 

 

무어 농촌운동이 별스러울 게 있겠어요.

평생을 농촌에서 살면서 농업을 하면 그것이 농촌운동이지요.

허울 좋은 말보다 농촌 지키면, 그것이 진짜 농촌운동 아닌가요.

낮에는 농사, 밤에는 글쓰기.

평생을 그와 함께 있었던 농가의 돌각담.

이제 그 돌각담이 소설가의 꿈이 아닌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출처 :좋은 사람들 두레 원문보기   글쓴이 : 이재범

 

* 글이 있 는 돌 각 담 *  

 

인적조차 보기 드문 이 고샅길을 돌각담길로 가꾸고자 하는 마음은 별난 아름다움입니다.

그렇지만 더한 아름다움은 흙냄새 풍기는 순박한 마을 사람들의 고운 심성(心性)입 니다.

이 흔적痕迹은, 먼 후일後日에도, 희미한 달그림자로,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

 

“돌각담”의 형상화로 마을길을 아름답게 꾸미는 한편,

이 골짜기와 인연이 있는 분들의 육필(肉筆)을 돌각담 속에 숨겨 놉니다.

풀잎보다 싱싱한 모습으로,

고향 사랑의 잔 잔한 진혼곡(鎭魂曲)으로, 또한 글 자리의 디딤돌로...

 

*돌각담 사이를 장식한 글들.

 

<안내문>

 

글에 취(醉)한 돌각담은

하늘 아래 가장 쓸쓸한 땅에 있습니다.

햇살조차 머뭇거리는 이 골짝에

마을 사람들의 자화상自畵像을 남깁니다.

 

이 장 : 정 정 태

새마을지도자 : 이 봉 안

 

목사동 면장 : 마 덕 숙

총무계장 : 한 상 백

 

단기4341년 늦가을에. 마을 상징문

----------------------------- 

 

1)

 

신 전 리 봄

 

/임 보

 

아미산 산자락

대숲 마을 이른 봄 배 밭에

꽃이 일면

돌각담 골목마다

은 웃음들

떠가 던 흰 구름도

길 뭠추네

 

1940년 서울대 국문과. 현대문학 시 추천.

시집. “장닭 설법” “은수달 사냥” “가시연꽃” “자연학교”

충북대. 정년퇴임.

 

2)

 

/곽재구

 

외로운

해와

달이

잠시 머물러

지친 발걸음 쉬어가는 이곳

 

꽃과

바람과

새들의 춤이

인간의 주름살 곁에

오래 오래

머물은 이곳

 

그대여

문득 뒤돌아서서

바라보는 길들

또한

사랑스럽지 아니한가

 

/곽 재구

 

1954년 숭실대 대학원.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사평 역에서” “낙타풀의 사랑” “삶을 흔들리게 하는 것들”

순천대학.

 

 

3)

 

/공선옥

 

어둠이 좁은 방안에 밀려든다

어둠 속에서 나는 꿈틀한다.

무엇인가 꿈틀한다.

그곳은 깊고 어두울 것이다.

모든 생명이 움트는 곳은 어디나 다아 한가지로,

 

공 선옥 단편소설 “피어라 수선화” 중에서

 

 

1964년 전남대. 창작과 비평에 중편으로 등단.

소설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 “명랑한 밤길‘ ”유랑가족“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

 

 

4)

 

입춘 무렵

 

/윤 석주

 

소설 쓰며 배농사 짓는

싱건지 맛 그만인 목사동 李白 兄네

정월 초닷새 배곯은

달빛만 가득한 마당가

기방에서 쫓겨나 사립문

기웃거리던 梅花란 년

싹수 노오란 열일곱 고 가시내

지난 겨을

상사병 지독히도 앓터니

물오른 얼굴에 뾰루지 툭툭 불거졌네.

오매 저걸 어쩔거나

 

/이천팔년 늦가을 돌나무가 쓰다

 

1947년 시와 사람 신인상

시집 “잠든 숲에 사랑을 묻다” “해의 다비식”

 

 

5)

 

목 탁 2

 

/차 창 룡

 

몇 억 광년의 세월이 흘러 별빛이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보이지 않는 속도는 보이지 않는 소리이다.

 

날아가라 어서 목탁 소리여

이 목탁 닳고 닳아 먼지가 되면

돌아오리 보이지 않는 속도로

보이지 않는 길을 만들며

 

아득한 광년의 거리 너머

빠른 속도로 천천히 떨어지는 목탁 소리

별은 먼지이므로

눈에 들어가 눈물 흘려보낸다

보이지 않는 소리를 보여준다.

 

1966년 중앙대 대학원.

“문학과 사회” 로 등단

시집. “나무 물고기”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인도 신화”

김수영 문학상. 중앙대. 경기대. 서울여대 출강.

 

6)

 

/이재범

 

이 주차장에서 마을로 들어가니

확 트인 바다가 보이며 마을이 나타났다.

이아 마을, 그리스에서 일몰이 가장 아름답다는 곳이다

파란 지붕에 그리스정교회식 십자가를 단 교회들

그 사이로 넓은 날개가 달린 풍차들

히피서커스가 만개한 푸른색 지붕의 하얀 작은 집들,,,

이아 마을의 첫 인상은 그랬다.

이른바 카사비앙카(언덕 위의 하얀 집)가 아닌가?

누군가 일부러 만들어 놓은 듯 보이지만

실은 오랜 세월 척박한 자연 속에서 삶을 일구어 온

이곳 사람들의 땀이 배인 곳이다.

 

/이 재범 “나의 그리스 여행” 중에서

 

1951년 성균관대학.

“슬픈 궁예” “한반도의 외국군주둔사” “나의 그리스 여행”

경기대. 경기도문화재 위원장.

 

7)

 

/조용헌

 

인간을 연구한다는 것은 자연을 연구하는 것이고

자연을 연구한다는 것은 인간을 연구한다는 것이다.

하늘의 이치는 그때마다

인간을 통해서 나타나게 되어있다.

인간과 자연은 서로 상응하고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태풍을 보고 인간사를 예측할 수 있다.

난세의 조짐을 미리 보는 것이다.

하늘에는 측량하기 어려운 비바람이 있고

사람에게는 아침저녁으로 바뀌는 화복이 있다.

 

/조 용헌. “사주명리학 이야기”에서

 

1961년 원광대학교. 조선일보에 조용헌 살롱 연제중.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고수기행” 방외지사“ ”사주 명리학 이야기“

조선일보 논설위원. 원광대.

 

8)

 

개 떡

 

/문 순 태

 

내 유년의 초록빛 하늘에

개떡 하나 둥둥 떠 있다.

배고파 눈 질근 감으면

개떡 같은 보름달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내 희망은 개떡이었다.

어머니,

어릴 적에 맛나게 먹었던

보름달 개떡

어디에 숨겼어요

쫄깃쫄깃 들큼한 희망의 맛

돌려주세요.

 

1941년. 조선대. 한국문학으로 등단.

소설 “징소리” “철죽제” “타오르는 강 7부작” “정읍사”

전남일보 편집국장. 순천대. 광주대. 정년퇴임.

이상문학상 특별상. 문학의 집 생오지.

 

9)

 

/박 혜강.

 

천지간에 꽃잎 흩날리던 날,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깨달았다.

생의 무게가 얼마나 버거운 것이며,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어떻게 변하는지.

슬픔은 슬픔만큼 깊어지고, 슬픔은

슬픔만큼 넓어지고, 슬픔은 슬픔만큼

커졌다가 마침내 그 슬픔을 먹어치우고

또 그 슬픔을 넘어 이름 모를 꽃으로 다시

피어나게 될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무등일보 연재소설 “풀잎으로 눕다” 중에서

 

1954년. 조선대. 문학예술운동에 중편으로 등단.

소설 “ 운주 5부작” “도선비기” “조선의 선비”

광주전남 작가회의. 광주전남소설가협회 회장. 역임.

 

10)

 

/백시종

 

돌각담의 아름다움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참혹한 비극을

서정적인 문체의 돌과, 탐구

적인 시각의 돌과, 따뜻하지만

엄숙한 목소리의 돌과, 연민의

돌들을 생김새대로 차곡차곡 쌓아

놓는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10월. /백 시종.

 

1944년 서라벌예대.

대한일보. 동아일보 신춘문예당선. 현대문학 추천.

소설 “돈 황제” “걸어 다니는 산” “환희의 끝” “서울의 눈물” “물”

한국문학상. 오영수문학상. 채만식문학상. “계간문예” 주간.

 

11)

 

/이근배

 

어머니가 매던 김 밭의

어머니가 흘린 땀이 자

라서 꽃이 된 것아 너는 思

想을모른다 어머니가

思想家의 아내가 되어서

잠 못 드는 平生인 것을

모른다

 

졸시, 냉이꽃의 일절을

 

/사천-이근배 적다.

 

1940년 서라벌예대 문창과.

경향신문. 서울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노래여, 노래여” “한강” “시가 있는 국토기행”

시인협회회장 “한국문학” 주간역임.“문학의 문학” 주간. 재능대. 예술원 회원.

 

12)

 

/이명한

 

뜻이 조금 다르더라도

몸을 스치며 걸어가다 보면

얼었던 마음이

어느덧 따뜻해지는 것을

南과 北이 어찌 다를까.

저 푸른 하늘 함께 이고

비단 같은 땅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아

 

이 명한 :1932년 조선대.월간문학 신인상.

소설 “황톳빛 추억” “달뜨면 가오리다”

광주전남문인협회장. 광주전남 민예총 회장역임

 

13)

 

/이순원

 

대부분의 행성이 자기가 지나간 자리를

다시 돌아오는 공전주기를 가지고 있듯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런 질서와 정해진

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일

이란 일은 모두 2천5백만년을 주기로

되풀이해서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2천5백만년이 지나면 우리는 다시

지금과 똑같이 여기에 모여 오늘 우리

곁으로 온 별을 쳐다보며 이야기할겁니다.

 

소설 “은비령” 중에서

/이 순원

 

1958년 강원대. 문학사상 신인상.

은비령” “말을 찾아서” “순수” “아들과 함께 걷는 길”

효석 문학상. 한무숙문학상.

 

14)

 

/임철우

 

한때 우리는 모두 별이었다.

저마다 꼭 자기 몫만큼의 크기와

밝기와 아름다움을 지닌 채,

해 저문 하늘녘 어디쯤인가에서,

꼭 자기만의 별자리에서

자기만의 이름으로 빛나던,

우리 모두가 누구나 다 그렇게

영롱한 별이었다.

 

/임 철우 “그 섬에 가고 싶다 중에서“

 

1954년. 전남대. 서울신문신춘문예 당선.

소설. ”봄날 5부작“ “백년여관” “그 섬에 가고 싶다” “등대아래 휘파람”

단재상. 요산문학상. 이상문학상. 한신대. 교환교수로 중국에.

 

15)

 

/채희윤

 

도대체 누가 이 보리를 심었을까. 불하받은

땅이라서 아직 집을 짓기는 싫어서 그 대신 낭만을

심어 보자고 심은 것일까. 아니면 저 아파트에

서, 자식들에 얹혀사는 시골 노인들이, 억지로 버리고 온

고향을 그리워하며 남의 터에 파종을 했을까?

이제야 그는 조금 전 노인네들이 그들이 아닐까 생각

했다. 그들이 젊음을 그리워하듯이, 옛날 보리밭에

서의 정사를 생각하며 기분을 내 보려 자식들

몰래, 이 한밤에 나왔을까? 도대체 누구일까.

이렇게 푸른 절망의 씨앗을 파종하고, 퇴색한 상처를

되살리는 사람은.

 

소설 “밤, 견인의 시각” /채 희윤

 

1954년 서강대 대학원. 한국일보 신춘문예.

“별똥별 헤는 밤” “스무고개 넘기” “곰보아재” “소설 쓰는 여자”

광주전남 작가회의회. 광주전남소설가협회 회장 역임. 광주여대.

 

 

16)

 

이런 꿈 한자락

 

/천 승 세

 

 

모지락스러운 세상 목숨 벼르노라 사대육신

눅쳐지는 날엔 이런 꿈 한 가닥 담은 단

봇짐 들고 길 떠나보자.

 

섬도 아닌 땅 땅도 아닌 섬 한 곳 물색해서

자란자란 띠 돌리는 물길 모재비 헤엄질로 건너

연화리에 오똑 올라 풋각시 허릿매 같은

환한 길 한골로 닦아 목사동 되짚어 오를 일.

아직도 즈런즈런 젊디젊은 통명산 벼룻길

달근달근 타내려 필봉 서벅돌 틈 낙낙한

자리 한 곳 골라 곡성땅 마지막 파시

주렁주렁 키우는 감나무 한그루로 희우둠이 서서

붓대 쥔채 날밤세우는 신전리 재백(在白)이의

새하얀 새벽이나 지켜볼꺼나

 

1939년 서라벌예대. 성균관대.

동아일보 신춘문예. 국립극장 장막극 현상공모 당선.

소설 “맨발” “혜자의 눈꽃” “낙과를 줍는 기린” 시집 “몸굿“

 

17)

 

/한승원

 

거문고는 왜 신의 악기(神 琴)

인가 수많은 누에고치들의

순절 때문이네. 그들의 몸

비틀어 꼰 울음은 혼의 음

되어, 그 음은 빛이 되어,

그 빛은 새가 되어 펄펄

하늘로 날아가네.

 

詩, 글씨 / 한 승원

 

 

1939년 서라벌예대 문창과. 대한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설 “동학제 7부작” “해일” “원효” “추사” “아제아제 바라아제” “목선”

이상 문학상. 김동리 문학상. 수상. 해산토굴에 칩거. 조선

 

18)

 

목 사 동 연 가

 

/최 정 주

 

목사동 신전리 마당 넓은 그 집에는

배꽃같은 사랑이 살아요. 떠난 사랑으로

가슴에 꽃병이 들어 아픈 날이

주인 몰래 한번 다녀 가시지요

운이 좋으면 소쩍새가 부르는 사철가

한 대목 들을 수 있고요. 주인에게 들키

사랑같은 배 맛도 볼 수 있지요.

 

1951년 원광대 국문과. 한국문학에 중편소설 당선.

소설 “아리랑” “흰소” “일지매” “안개” “황진이”

백제예술대

 

19)

 

섬으로 가는 2박 3일

 

/이생진

 

이렇게 가족 몰래 사는 가족이 있었던가

모이니까 한 식구 같다

남원을 지나

곡성에서 이재백 소설가

돌각담 같은 순수한 사람의 손

진갑이 훨쩍 지난 것이 허무한 게 아니라

이런 만남이 고마워.....

고목에서 예쁜 꽃을 피우고 싶은 것은

과욕이 아니리라

생명의 존재를 다시금 확인하는 방법이다

 

시골에서 배농사를 하며 글을 쓰는

이재백

서울에서 시를 쓰는 내 손이 부끄러워

그의 손보다 먼저 내 얼굴에 미소를 바른다

술이 맛있는 것도 이런 손 때문이리라

그는 무궁화호에서 내려

다시 곡성에서 헤어졌다

이 세상에 태어나 글을 쓴다는 거

술을 마신다는 거

그리고 얼굴을 마주보며 취한다는 거

2박 3일은 그것을 확인하는 술잔이다.

 

1929. 국제대학.

현대문학 추천, 그리운 성산포. 바다에 오른 이유. 나의 부재.

윤동주문학상, 그리운 성산포로, 제주명예 도민증.

 

<1> 글 비(碑) :자연석19 개

<2 >돌각담 길이 135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