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백(李在白)·단편소설 방

[단편소설] 어두운 터널 / 이재백◈소개작품◈

Demian-(無碍) 2011. 3. 23. 20:07

[단편소설]

 

어두운  터널

     
           
            /이재백(소설가)

 

 

움직이지 마.
여자가 몸을 꿈틀거리면서 저항을 하자
내 안의 얼룩무늬 사내가 나직이 명령을 내렸다.

잘못하면 넌 죽을 수도 있어. 이번엔 내가 중얼거렸다.

스스로 듣기에도 내 목소리는 부슬비가 내리는 날

공동묘지로 불어 온 바람 소리처럼 음산했다.
왜 이러세요? 정말.
여자가 조용히 눈을 떴다.
평소 초점조차 흐릿하던 그녀의 눈이 번쩍 빛을 내뿜었다.

그 눈 속에서 얼룩무늬 사내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다 죽여버릴 거야. 독주에 취한 사내의 눈은 이미 초점이 없었다.

번득이는 광기가 내 가슴 안에 두려움의 켜를 쌓아 가고 있었다.
난 화가입니다. 지난해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데모 같은 건 상상도 못했던 사람입니다.

정말 잘못 본 게 아닙니까?
입 닥쳐 새끼야. 난 원래 화가를 페인트 공만도 못한 놈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정의, 민주화? 웃기는 소리 좀 자그만 치 해라고, 밥맛 떨어지니까.
사내의 입가에 엷은 웃음이 스쳐 가는 순간 내 옆구리에서 창자를 끊는 듯한 통증이 왔다.

통증은 한 번만이 아니었다. 사내의 손에 들린 참나무로 만든 지압봉이 내 옆구리에서 춤을 추었다.
난 선량한 화가입니다. 아니 그냥 시민입니다. 정말로 믿어주세요?

나는 다이아몬드 계급장을 붙인 사내에게 몇 번이고 애원의 눈길을 보냈다.
끝내는 아스팔트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이번에는 다른 제복의 구둣발이 내 전신을 몇 번 걷어찼다.

가물가물한 정신 속에서 내 귀는 사내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을 듣고 있었다.
화가 좋아하네. 미친 새끼. 가져다 실어. 요런 데모꾼들은 하나도 안 남기고 족치란 말이야.

거칠고 억센 손이 내 몸을 질질 끌어다가 물컹한 살덩이들이 사과 궤짝처럼 쌓여 있는 트럭에 던져 넣었다.

비릿한 피비린내가 내 의식을 죽였다.
정말이야. 제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만 있어 줘.
절 어떻게 하겠다는 거예요?

내 뜻과는 상관없이 폭력으로 나를 가질 수 있다고 믿을 만큼 선생님은 엉터리였나요? 

정말로 실망스러워요.
절반쯤 열린 앞가슴을 여미면서 여자가 빤히 올려다보았다.

네 뜻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지금은 내가 너를 지배하는 시간이니까. 내가 중얼거렸다.

여자의 눈에 다시 안개가 끼고 있었다. 그건 체념이었다. 알아서 하세요.

여자가 몸에서 힘을 빼고 두 팔을 밑으로 늘어뜨렸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내 안의 얼룩무늬 사내가 사라진 것이다.
유리창을 흔들면서 바람이 불었다. 여자가 강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초여드레쯤의 달이 깨어진 유리창 사이로 비죽이 아틀리에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달의 얼굴은 우중충했다. 그건 내 자화상이었다.

잠시 후면 관속에 들어갈 주검처럼 검은 빛까지 돌고 있었다.

내게도 초생 달을 바라보던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던가?

그래, 그런 시절도 있었어. 밤하늘의 별빛이 기쁨으로 내게 내려와 앉을 때도 있었고,

시멘트 담벼락 아래에 핀 보랏빛의 어린 제비꽃이 소중하고 아름답게 여겨져

왼 종일 이젤 앞에서 보라색 물감을 화포에 칠한 날도 있었다. 그런 내게 하늘은 늘 푸른빛이었다.

설령 구름이 낀 날일지라도 내 눈은 구름 너머의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보고 있었다.
군에서 제대를 한 그 해의 국전에서 내가 그린 칠 십 년대의 자화상인「움직일 수 없는 움직임」에

대통령상이 안겨진 것은 나를 하루아침에 장래가 촉망되는 화가로 만들어 주었다.

신문마다 실린 그림과 우수에 잠겨 있는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내 얼굴은

수심에 잠긴 어머니의 얼굴에 화기마저 돌게 했다.
이, 이것이 참말로 너란 말이냐
예, 어머니. 내일은 텔레비전에도 나올 거예요.
내가 조금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하이고, 내 새끼 장허구나, 장혀. 지하의 니 아부지가 아시면 얼매나 기뻐하실꼬.
어린 자식 하나만을 바라고 살아온 이십 년 세월을 눈물과 외로움, 잠자리의 쓸쓸함까지 씻어 내듯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아 냈다. 어머니의 그 눈물까지도 내겐 기쁨이었다. 그러나 그건 고통의 시작이었다.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을 한 그 해에 대통령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다분히 행운이었거나,

아니면 아버지의 영혼이 돌보아 주신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내 수상 작품 「움직일 수 없는 움직임」은 아버지를 그린 것이다.

흐릿한 안개 속에서 아버지가 빛으로 서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예비역 영관을 상사로 모신 아버지가 엉뚱하게 수뢰 사건을 뒤집어쓰고

오월이면 빨간 넝쿨장미가 유난히도 곱게 피는 그 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한 것은

내 나이 여섯 살 때였다. 꼬박 일 년을 채우고 장미꽃이 피는 계절에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다음 해 장미꽃이 흐드러지게 핀 오월 어느 날

올해는 장미꽃이 유난히도 붉구나, 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대머리 국장은 끝내 문상조차 오지 않았다.

내가 철이 좀 들었을 때, 어머니가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던 화가의 길을 결심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아버지 때문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던 해에 어머니로부터

아버지의 예사롭지 않은 죽음의 내력을 듣고 내가 밤 새워 다짐했던 생각이었다.

아버지의 억울함을 의식하고, 권력의 집단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되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연상하면

가슴에서 열기 같은 것이 솟아올랐다. 붓을 쥔 내 손이 신명나게 움직여 주었다.
그래, 그림을 그리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나만의 세계를 화포에 옮겨 보자. 아버지의 모습도 그려야지.
어머니는 늘 한숨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그림에 미친 내 삶은 어머니의 한숨에 반비례해서 활기에 넘쳤다.

내가 붓을 쥐고 이젤 앞에 서면 시든 꽃잎도 부스스 살아나고, 빨간 불이 켜진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교통사고로 죽은 초등학교 삼 학년 때의 새침데기 여자친구 의 얼굴도 살았을 적의 새침데기 모습으로

펄펄 뛰쳐나오고는 했다. 그래서 내 그림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어머니조차도 참, 네 손은 요술쟁이구나.

진짜 화단에 피어 있는 꽃보다 더 아름다운 꽃을 그려낼 수 있다니. 언젠가는 저 장미도 한번 그려보렴.

니 아부지가 무척이나 좋아허셨던 꽃이니라, 하고 대견해 하기까지 했다.
그림에 대한 그런 열정이나 신명이 식은 것은 순전히「움직일 수 없는 움직임」 때문이었다.

그림이 전시되고 있는 동안 미술평론가들은 자신들의 잣대로 내 그림을 재단하여 가지고

안개에 쌓인 현실을 교묘히 조합해 낸 작품이라느니,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전신으로 느껴야 되는

중압감의 표현이라느니, 우리나라의 서양화단에서 색감의 배합을 한 단계 끌어올린 작품이라고

찬사를 남발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감동은 낯선 이질감으로 바뀌어 갔으며, 그림의 분위기는

점점 내게 아주 생소한 모습으로 다가와 당혹감만 안겨줄 뿐이었다.

폭력과 음모를 안으로 감춘 시대의 수상한 분위기를 안개 빛으로 처리하고

그 안에 아버지의 모습을 빛으로 처리한 내 그림이 평론가들의 붓끝이며 입 살에 올라 짓이겨지면서

전연 엉뚱한 작품으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작품은 어쩌다 꿈속에서 만난 내 얼굴처럼 낯설었다.

이건 내 작품이 아니야. 그 겨울 동안 거의 이젤 앞에 서지 못했다.

거리에는 날마다 안개가 끼었고, 안개 속에서는 수상하고도 거친 발소리들이 피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룻밤 새에 수십 개의 별들이 우수수 떨어지기도 했다.

그런 다음 날이면 신문은 유난히도 검은 빛이었다.

이단 통으로 뽑은 먹빛 제호의 활자는 그대로 시대의 대변이었으며 시대에 대한 협박이었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살아남을 천 구백 팔십 년도의 자화상이었다.

핏빛으로 뚝뚝 떨어지는 넝쿨장미 꿈을 거의 매일 꾸었다.

그리고 백주 대낮에 그 일이 일어난 것은 아버지가 심어놓은 우리 집 늙은 넝쿨장미가

몇 개의 꽃망울을 키워 가고 있을 즈음이었다.
마음대로 하세요. 어차피 선생님이 살려 주신 목숨이잖아요.
여자가 두 팔로 내 목덜미를 부등켜 안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내가 살려 준 목숨? 언제 내가 그런 거룩한 일을 했지? 여자의 몸 위에서 내려와 창가로 갔다.

바람은 아직도 거칠게 불고 있었다. 얼어붙은 한강의 얼음이 갈라지는지 쩍 하는 소리를 냈다.

나를 짐승으로 몰고 가던 알콜 기운도 말끔히 가시어 있었다.
내 눈이 여자가 뛰어내리려던 한강 다리의 어느 부분인가에서 멈추었다.

그 날 여자는 다리의 난간에 서서 절박한 몸짓으로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강 건너 포장마차에서 소주 세 병으로 혈중 알콜 농도를 높이고 돌아오는 내 눈에

여자가 철제 난간 위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안 돼.
순간적으로 그녀를 낚아챈 내가 가쁜 숨을 헐떡이며 호통을 쳤다.
흐흐, 댁이 뭔 데요? 댁이 뭔 데, 내 목숨에 간섭을 하시나요?
여자가 금방 따귀라도 한대 올려붙일 기세로 앙칼지게 항의를 해왔다.

그런 그녀의 입에서 잘 익은 감 홍시 냄새가 났다.

술 취한 내 코가 맡을 수 있는 술 냄새라면 그녀가 나보다 더 많이 마셨다는 얘기일 수도 있었다.
술 몇 잔에, 자그만 고통 때문에 버릴 수 있을 만큼 하찮은 생명이라면 세상에 애당초 태어나지 말았어야지.

술이 깨고 나면 오늘밤의 행위가 얼마나 부끄러운지 스스로 깨닫게 되겠지. 집이 어디야? 
그 순간이었다. 여자가 내겐 머물 집이 없어요, 하고 허물어져 온 것은. 여자의 몸은 가냘팠다.

힘주어 안으면 부서질 것처럼 연약한 모습이었다.

멀쩡한 정신으론 이렇게 엉뚱한 일을 저지를 수 없을 것이지만 주량이 도는 넘은 것 같았다.

놔두세요. 그것이 저를 도와주는 길이에요. 여자가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는데,

앙칼진 목소리와는 달리 눈빛은 초점도 없이 희멀끔했다.
내 아틀리에로 가자고, 여기서 가까워.
아틀리에? 아저씨는 화가, 그림도 그리시나요?
아주 짧은 순간 여자의 눈을 스쳐가던 희미한 빛줄기 속에서

내가 한때 나의 반쪽이라고 믿었던 영아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 이후의 만남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 화가야. 자화상도 제대로 못 그리는.
 여자의 허리를 안아 일으키면서 내가 신음처럼 내뱉었다.
 슬픈 화가네요.
 여자가 중얼거리면서 순순히 내 걸음에 발을 맞추었다.
 아저씨는 잘 팔리지 않는 화가지요? 그렇지요?

이렇게 어두운 그림이라면 아무도 거실에 걸어놓고 싶지 않을 거예요.
 아틀리에에 들어서자 자살을 시도했던 여자답지 않게 그녀가

내 「움직일 수 없는 움직임 」앞에서 이죽거리고 나왔다.

그러면서도 제법 진지한 모습으로 내 그림을 오랫동안 응시하고 있었다.
이쪽으로 와 주검의 모습들은 볼 필요도 없으니.
봄 이후 한 번도 쓰지 않던 전기장판의 코드를 꽂으며 내가 손짓을 했다.
이상하죠? 방금 봤던 백 호짜리 그림 말예요. 어쩐지 눈에 익어요.
내 쪽으로 다가오면서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백짓장처럼 하얗던 그녀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와 있었다.

저 희멀끔한 눈빛만 아니면 영락없는 영아구나. 그런 생각이 또 내 뇌리를 난도질 치며 흘러갔다.
소주나 마시자.
소주병을 꺼내어 이빨로 마개를 따면서 내가 말했다.
흐흐, 소주 좋지요. 아저씨, 우리 누가 더 많이 마시는지 내기할까요?

이리 봐도 전 아직까지 술 마시기에서 사내들한테 져 본 역사가 없다고요.

그것이 내 몸을 지키는 방법이었니 까요.
몸을 지키는 방법? 술집에 나갔다는 말투로군.
그래도 전 보통 술집 여자완 질이 틀리거든요.

제게 짐승의 눈빛을 보내오는 사내들을 어떻게 요리한 줄 알아요?

슬쩍 추파를 던져 기분 좋게 술을 먹이거든요. 섹스를 죽이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지요.

어리석은 사내 녀석들이지요, 지네들이 뭐 매력이 넘쳐흐른다나….

강 건너에 있는 빠,텐타라고 아세요?

저녁마다 거기에서 정신 나간 사내들의 호주머니를 털어먹고 살았지요.
여자의 동공에 다시 안개가 끼었다. 내 가슴에서 발작처럼 갑갑증이 일어났다.

소주병을 들어 병나발을 부는데, 그녀도 흐흐 웃으며 소주병을 하나 치켜들었다.

여자가 눈물을 보인 것은 그렇게 세 병의 소주를 마시고 난 다음이었다.

어느 순간 그녀가 마시던 술병을 방바닥에 내 팽개치더니,

내 가슴에 얼굴을 쳐 박고 흑 흑 흑 흐느끼기 시작했다.
가버렸어요. 모두 가버렸어요. 한 새끼는 군대에 가서 뒈졌고,

한 새끼는 나한테 사기만 치고 날아가 버렸어요.

밤마다 사내들 속에 살면서도 내겐 사내가 없었어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첫눈에 말예요. 아저씨가 씩씩한 왕자님으로 보이더라니까요.

아저씬 내 옷을 벗기고 싶지 않나요? 내 목숨을 살려낸 대가로 내 몸을 드릴 수도 있어요.

아저씬 그럴 권리가 충분히 있어요. 정말이에요, 거래가 아니에요,

나도 모르게 그런 마음이 앞선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라니까요. 마음대로 하세요.

자. 여자가 스스럼없이 가슴을 열어 젖혔다.
내 눈에 그녀가 영아로 보이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오래 전부터 이런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남자들은 다 그렇다고 하더군요.

군대에 입대하기 전날 밤이면 자기의 여자를 완전히 소유하고 싶어 하는…. 

어차피 전 영우 씨의 여자예요. 그 날 밤 영아는 망설이는 나를 오히려 부추겼다.

내가 자기를 갖지 않으면 마음뿐인 소속감이 언제 도망갈지도 모른다면서.
여자가 벌거벗은 모습으로 당당하게 내 앞에 섰다.

내 팔 안에서 왜 죽게 내버려두지 않느냐고 항의를 할 때 왜소했던 느낌과는 달리

그녀의 몸은 의외로 풍성했다. 그랬다. 그것은 부끄럼도 없이 내 앞에서 당당하게 옷을 벗고,

군대 생활이 고달프고 쓸쓸할 때면 지금의 나를 생각하세요. 그러면 몸에서 힘이 저절로 생길 거예요. 하던

영아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다. 그만큼의 싱싱함과 그만큼의 굴곡과 그만큼의 빛나는 살빛을 가지고 있었다.

여, 영아. 어느 순간 그 여자를 내 가슴에 넣었다. 내가 누가 되건 상관이 없어요.

내게 있어 선생님이 세 번째 남자라는 사실 외에는. 그녀가 술 냄새 풍기는 입술로 내 귀에 속삭였다.

그래, 넌 내 영아야. 고맙구나, 이렇게 와 주어서

그러나 그 날 밤에도 몇 번이나 시도한 내 섹스는 끝내 일어날 줄을 몰랐다.
추워요, 선생님.
여자가 앞가슴을 여미면서 침상에서 부스스 일어나 앉았다.

그녀를 흘끔 돌아보는 내 눈에 갈기갈기 찢어진 내 자화상들이며 쓰러져 뒹구는 이젤이 들어왔다.

도루코 날로 난자한 「움직일 수 없는 움직임」은 바람이 불 때 마다 펄럭거렸다.

이제야 겨우 정신을 차린 것일까. 여자가 눈을 크게 떴다.
아틀리에가 돼 이렇게 되었지요? 도둑이란도 들어왔던 것인가요?
가난한 화가의 방에 훔쳐갈 것이 뭐가 있다고 도둑이 들겠어? 내 스스로 치른 전쟁의 상흔이야.
전쟁?
그래. 전쟁. 십 년이 넘는 세월을 난 날마다 전쟁을 하면서 살아왔어. 내 안의 얼룩무늬 사내와 함께.
얼룩무늬 사내요? 혹시 광주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요?
광주? 너도 죽고 싶니?
내 뇌리에 다시 피를 흘리며 죽어 가던 선량한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고

살려 달라고 애원을 하던 사람들의 신음 소리가 귀청을 두드렸다.

그러자 내 의식을 죽이던 피비린내가 콧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내 눈빛에 광기가 번뜩인 모양이었다.
무서워요, 조금 전 카페에서 봤던 눈빛 같아요.

카페에서 광주를 말씀하실 때에도 소름끼치는 그런 눈빛이었어요.
 여자가 어깨를 움츠리면서 몸서리를 쳤다.
 빠.텐타. 이젤 앞에서 왼손으로 자화상을 그리다가 뇌리에 어른거리는 얼룩무늬에

순간적인 광기와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미친놈처럼 달려간 곳이 그 곳이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녀가 스스럼없이 다가와 내 곁에 앉았다.
 이상하지요? 참. 선생님을 뵐 때마다 선생님의 죽은 섹스를 살려내고 싶어 안달이 나니 말예요.

선생님의 섹스가 살아나면, 오른쪽 팔목의 신경도 살아날까요?

그러면 못다 그린 그림도 그리게 될 것 같아요. 기적 같지만.
그녀가 싱거운 웃음을 흘리면서 손 하나를 내 바지사이로 집어넣었다.

이러지 마! 내가 거칠게 밀어내자 그녀가 슬며시 손을 빼냈다.

그러면서도 새파랗게 어린 서빙 녀석이 와서 몇 번이나 귓속말을 하고 갔는데도

그녀는 줄기차게 내 곁을 지키고 있었다.
난 혼자 마셔도 괜찮으니까, 다른 자리로 가보라고.
아니에요, 상관없어요. 어차피 이 집에서 봉급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선생님은 일주일에 겨우 한 번밖에 안 들리잖아요.

오늘 하루쯤 돈을 안 벌어도 굶어 죽지는 않아요.
그녀가 고개를 내저었다. 술병이 세 개째 들어왔을 때였다.

내 눈앞의 불빛들이 호랑나비가 되어 날아다니기 시작하고,

가버린 영아의 그림자가 결핵균이 되어 내 가슴을 갉아먹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거친 손 하나가 덥석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너, 죽고 싶냐? 지금 오라는데 왜 안 오는 거야?

너, 내가 누군 줄 모르는 모양인데, 이래봐도 이년아,

수십 번도 더 공중에서 목숨을 걸고 뛰어내린 경력이 있는 사람이야.

너 같은 계집들은 눈 깜짝할 새에 죽일 수도 있다구.
거친 손의 사내가 그녀를 확 낚아채면서 이죽거렸다.
왜, 왜 이러는 거예요? 아무리 술집 여자지만 싫은 남자와 함께 술을 안 마실 자유는 있다고요.
그녀가 기죽지 않은 모습으로 항의를 했고,

사내가 자유? 자유 좋아하네, 하면서 먹이를 노리는 살쾡이의 눈빛으로

그녀의 목덜미를 움켜쥐는 순간이었다. 내가 사내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이러지 마십시오, 손님.
이 새끼는 또 뭐야?
사내가 그녀를 확 밀쳐내면서 주먹으로 내 면상을 갈겼다.

눈에서 불이 번쩍하면서 아주 빠른 순간 내 뇌리에 얼룩무늬의 사내가 들어와 앉았다.

그리고 사내가 두 번째의 주먹을 내미는 순간

내 무릎이 방심하고 있는 놈의 사타구니 사이를 여지없이 올려 찼다.

썩은 나무둥치처럼 놈이 내 발 밑에 얼굴을 묻었다.
내 약혼녀란 말야. 다시 또 귀찮게 군다면 네 대갈통에 구멍을 내주겠어.

그뿐인 줄 알아? 네 여편네의 가랭이를 찢어줄 수도 있다고.

어서 못 꺼져? 공수부대, 웃기지 말아. 이 개 새꺄.  공수부대보다 더 무서운 게 뭔지 맛 좀 보겠어?

고자를 만들기 전에 얼른 꺼져.
내 안에 자리한 또 하나의 얼룩무늬 사내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말했다.

사내가 잔뜩 겁을 먹은 눈빛으로 올려다보았다.
너, 새끼야? 팔 십 년도의 광주를 알아? 얼룩무늬니까 잘 알겠지?

시체더미 속에서 삼 일 간을 묻혀 있었어도 끄떡 않고 살아난 목숨이야.

어디서 까불어, 쥐새끼만도 못한 놈이. 이래 뵈도 사람으로 둔갑한 귀신이란 걸 명심해야 된다고.

너 같은 놈은 사람으로 취급도 안 하는 악당 중에 악당이 뭔 줄 알아?

공수부대 좋아하네, 공수부대가 아무리 악독하다지만, 이 귀신부대 앞에서는 꼼작도 못한단 말이야.

네겐 총이 없잖아? 그땐 총이 무서워서 꼼짝 못했지만.
사내가 개처럼 기어서 제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본 순간이었다.

사타구니 사이에 이물  이라도 들어 있는 것 같은 거북함이 느껴졌다.

그러자 내 뇌리로 번개같은 빛줄기 하나가 스쳐갔다.
아, 살아났구나.
그래, 고맙구나, 고마워. 내가 중얼거렸을 때였다.

느닷없이 내 귀에 영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저히 안 되겠어요.

처음에는 영우씨의 몸이 어떤 상태 건 곁에 지키고 있으면서 힘이 되어 드려야겠다고 작정을 했었지요.

그런데 같이 있으면 있을수록 영우씨의 마음뿐만이 아니라 몸까지도 그리워지는 걸 어떻게 해요.

영우씨 앞에서 늘 밝은 얼굴만 하고 있을 자신이 없어 졌어요.

그것은 우리 둘 모두에게 상처만 줄 뿐이에요. 마음은 영우씨 곁에 두고 몸만 떠날게요.

대신 영우씨가 화가로서 성공하길 빌겠어요.
시체 더미에서 삼일 동안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다가 시립병원 응급실에서 의식을 회복한 내게

의사는 어쩌면 영원히 오른손을 사용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선고를 내렸다.

그림을 포기해야 될지도 모른다는 절망에 빠진 내게 영아는 울먹이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오른 손을 못 쓴다면 제가 영우씨의 오른 오른손이 되어 드릴게요.

그리고 그림은 왼손으로도 그릴 수가 있잖아요. 그러나 그녀는 마음보다도 몸이 더 뜨거운 여자였다.

오른팔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 외에는 거죽은 멀쩡한 모습으로 퇴원했지만 예전의 나는 아니었다. 

그 뒤에 가진 몇 번의 잠자리에서 사내구실조차 못하게 되자 나의 절망보다 영아의 절망은 더했다.

그녀가 떠나기 전에 내 쪽에서 먼저 보내 주어야겠다고 작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변신이 특별히 상처로 남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영아가 내 곁에서 훌쩍 떠나 버리고 만 뒤의 허전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요골 부위의 상처. 얼룩무늬들은 내가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을 알고

일부러 요골 부위를 향해 곤봉질을 해 댔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악스런 파괴자로 변해 내 섹스까지 망가뜨리지 않았는가.

아버지의 파멸도 결국에는 얼룩무늬들의 소행이 아닌가.
양손이 다 없어서 발가락이나 입술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영우씨는 왼손으로나마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영아는 이따금 위로의 말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로 내게 용기를 주곤 했지만

그건 별 의미가 없는 허공의 메아리와 같은 것이었다.
아무런 죄도 없다고 완강하게 거부하는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했던 어머니의 가슴앓이가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무슨 업보나 되듯이 대를 물려야 하는 현실 앞에서

어머니는 몸을 사릴 만한 자제력마저 잃어 버렸다.
쥑일 놈들, 차라리 나를 쥑일 노릇이지.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오른 팔을 제대로 못 움직여 왼손으로라도 그림을 그리겠다고 낑낑대다가

절망에 빠져 하루에도 몇 번씩 붓을 던지고 짐승처럼 울부짖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의 가슴에 자리한 응혈은

두께를 더해 갔던 것이다.
그 여자를 잊어 뿌러야. 어머니는 영아가 내 곁에서 자취를 감춘 걸 알고도 짐짓 모르는 척 딴청만 부렸다.
너허고 오래오래 살라고 했는디, 인자는 가야 헐랑가 보다. 잊어 묵그라, 영우야.

잊어 묵지 않고 너 혼자 아파허면 결국엔 너만 손해여. 너도 알다시피 신문을 보나 텔레비전을 보나

광주 사람들을 그렇게 쥑인 놈들이 더 떵떵거리고 잘 살고 있지 않느냐?

너헌테 이런 소리까진 안 헐라고 혔는디, 나쁜 짓은 지가 다 헤쳐 묵고

그 죄를 네 애비한테 떼넘긴 놈한테 천벌이 무신 놈의 천벌이든….

그런 원한도 다 잊어 뿔그라. 그걸 가심에 담고 있으면, 나처럼 암뎅이가 생겨 제 명대로 못 사는 갑드라.
그런 어머니한테 나는 할 말이라곤 없었다. 시한부 인생. 간암 3기라는 진단. 3개월의 시한부 인생이라는

처절한 상황 속에서도 어머니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미움 그 자체를 운영으로 치부하려는 것은 미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입에 발린 거짓말도, 오래오래 사셔야 한다는 위로의 말도,

가슴에 증오로 남아 있는 사람들을 용서하겠다는 약속도 할 수가 없었다.

알았어요, 어머니. 내가 한숨처럼 내뱉었을 때였다.

아가, 저승에도 빨간 장미꽃이 피어 있을까나?

내가 귀를 바짝 들이대야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중얼거린 어머니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느그 아버님이 장미꽃 곁에서 나를 기달리고 있을끄나?
어머니의 눈을 왼손으로 감겨 드리면서 내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래요. 어머니. 어머니가 가시는 곳에도 빨간 장미는 피어 있음 거예요.

장미꽃 다발을 안고 아버지가 오랫동안 기다리고 계신댔어요.

내 눈물 몇 방울이 어머니의 볼 위에 떨어졌다.
영아야, 나는 조그맣게 부르짖었다.
밋밋해진 사타구니. 어디서 나타났는지 영아가 내 쪽을 향하여 웃음을 던지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이야. 어쩜 요골 부위의 통증도 사라질지 모르지. 뭐라고?
나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오랜만의 만남이지만 전혀 낯설지 않았다.

오랫동안 잠자리를 같이 해 온 사이나 된 것처럼 스스럼없이 대했기 때문에

그녀의 부드러운 손이 내 어깨를 짚고, 잠깐 전과는 다른 근심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조금치도 개의할 필요가 없었다.
너무나 무서운 얼굴이에요. 그녀가 질겁하며 두어 발짝 뒤로 물러섰다.
어서 내 아틀리에로 가자고.
나는 막무가내로 그녀의 팔목을 우악스럽게 움켜쥐었다.
내가 누구죠? 그녀가 조용한 눈빛으로 물어 왔다. 영아, 여긴 내 아틀리에야.
그녀가 누구인지 뻔히 알면서도 나는 엉뚱하게 대꾸했다.
얼마간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그녀는 이내 모든 것을 체념해 버린 듯

내가 하는 대로 자신을 맡겨 놓은 상태가 되었다. 그녀를 거칠게 침상 위에 눕혔다.

그리고 그녀의 가슴 쪽에 내 상체를 디밀자,

댁이 뭔데 내 목숨에 간섭을 하나요? 할 때의 그 눈빛의 앙칼진 저항을 해왔다.
싫어요, 대역은. 그 날 밤에도 선생님은 나를 영아라고 불렀어요.

난 내 몫의 삶을 살고 싶어요. 내게도 이름이 있으니 내 이름을 불러 주세요.

영아가 아닌, 진아 라는 이름을.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영아가 아니에요, 진아란 여자란 걸 똑똑히 알아야 되요.

그녀의 가녀린 손길을 내 사타구니 쪽으로 사정없이 끌어 당겼지만

잠깐 전의 기적은 사라지고 말았다. 환상이란 말인가? 환상은 아니었다.

그녀를 영아로 착각했던 사실 이외는 너무나 또렷했던 것이다.

내 영혼의 어딘가에 잠재했던 얼룩무늬의 골통을 여지없이 짓이겨 놓지 않았던가.
매서운 바람이 창문을 흔들고 지나갔다. 쩍 얼어붙은 한강의 얼음덩이가 갈라지는 모양이었다.

아, 내 입술 사이로 길다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나의 남성이 슬그머니 머리를 쳐든 순간 영아는 한 치의 사이도 없이

내 몸에 자신의 몸을 밀착시킨 채 얼마나 많은 시간을 머물고 싶어 했던가.

나는 깨어진 창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은밀한 숨결은 눈발의 속삭임일   까.
저 좀 보세요?
영아는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낯선 여자 하나가 허깨비처럼 가벼워진 내 육신에 깔린 채 가냘픈 비명이라도 지를 듯이

고통스럽게 이를 응등그리고 있었다. 나는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벽에 걸린 거울 속에는 내 모습과 너무도 닮은 새로운 내가 나를 향하여 음흉스럽게 미소 짓고 있었다.

일흔이 훨씬 넘어 보이는 노인이 거기 있었다. 환상이 아닌 실물이었다.

낡은 중절모에 구멍이 숭숭 뚫린 바바리코트를 입고 있었다.

잔뜩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리면, 부스스 고개를 들고

선이 없는 바이올린을 켜는 흉내를 낸다. 오른쪽 손목에 힘을 준다.

선이 없는 낡은 바이올린이지만 사람들의 발짝 소리가 가까워지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렇지만 노인의 오른쪽 팔목은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게다가 바이올린엔 선마저 없는 게 아닌가. 주름투성인 노인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뭐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소리를 지를 힘마저 쇠진된 모양인지 합죽이가 된 양 볼을 우물거릴 뿐이다.
노인은 황량한 서녘 하늘을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었다.

황홀해야 될 서쪽 하늘의 영광이라도 되새기려는 듯 노인의 눈자위에 이슬 같은 눈물 자국이 번지고 있었다.

너무나 아득한 옛날을 환상하고 있음인가. 황량한 가을바람이 노인의 낡은 바바리코트 깃을 스친다.

가을추수가 끝난 들판엔 인기척이라곤 하나도 없다.

키만 껑충한 수숫대가 바람에 나부끼면서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강추위가 몰아치는 북녘의 황야. 노인은 우레 같은 청중들의 박수 소리를 의식한다.

앵콜, 앵콜. 노인은 선이 없는 바이올린을 꺼낸다.
그렇게만 서 있으라고, 내가 덩달아 소리를 질렀다.
 노인이 하는 짓을 하나라도 안 놓칠 듯 나는 거울에서 잠시도 눈을 안 떼고 있었다.
 황혼의 악사, 나는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노인은 이내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많은 박수를, 노인은 두 눈을 스르르 감았다.

청중들은 숨을 죽인 채 바이올린의 선율이 어떻게 변할지 주시하고 있었다.
 허물어질 것처럼 위태롭기만 한 노인의 몸뚱이가 선이 없는 바이올린에서 쏟아져 나온 리듬을 따라

완만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의 시선은 이미 벽면의 거울에서 모델 대 위로 옮겨진 상태였다.
 언제부터 진아는 모델 대 위에 앉아 있었던 것일까?

먼지조차 더덕더덕 낀 모델 대 위에 오도카니 올라앉은 여자가 입술이 새파래진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쪽을 보아, 내가 소리쳤다. 황혼의 악사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벽면의 거울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이올린을 들고 옛날의 환상 속에서 좀처럼 깨어날 줄 모르던 노인은 내 자화상이었다는 말인가.
 뭔가 또 그리고 싶어요? 여자는 눈으로 물어 온 게 아니라 몸짓으로 물어왔다.

분명한 모델. 얼마 만인가. 너를 그려야겠어. 얼마 만에 만난 참한 모델인데.
 이제 환상에서 그만 깨어나세요,

여자는 모델 대에서 내려와 반쯤 너풀거리는 <움직일 수 없는 움직임>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그녀의 눈빛 속에 취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여자가 찢긴 그림 조각들을 붙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선생님을 처음 뵙던 날이었던가요, 이 그림이 눈에 많이 익는다고 했지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고등학교에 다닐 때 미술 선생님이 가지고 계시던 국전 도록에서 보았지 뭐예요.

그 때 미술 선생님이 그런 말씀까지 하신 것 같아요.

대학 재학 중에 국전에서 대통령상까지 받은 천재 화가였는데,

팔 십 년대의 광주가 화가한테서 그림만 빼앗아 간 게 아니라 영혼까지 죽여 버렸다고.

그런데 몇 번이고 만나 뵙다 보니까 선생님이 잃으신 것은 그림뿐만이 아니더군요.

영아라는 여자는 물론 삶에 대한 투지마저 잃어버렸어요.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차피 자신과의 싸움이 아닐까요?

절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을 기억하세요. 선생님을 안 만났다면 오늘의 내가 없을지 모르죠.
그만두지 못해, 더 지껄이면 널 죽여 버릴지 몰라.
이번에는 내가 얼룩무늬 사내의 말투를 흉내 내고 있었다.
정말로 그럴 용기가 있으세요.

여자가 도발적인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내가 왼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건 그렇고 침상 밑의 봉투는 무슨 약이죠? 청산가리, 아니면 수면제, 목적은?

지금도 절 영아라고만 생각하고 싶으시나요?

정 그렇다면 진아라는 여자가 영아라는 여자로 둔갑해 줄 수도 있는 일이에요.

 거야 어렵지 않은 일이죠. 생각하기 나름이니까요.

그렇게 해서 선생님의 의지가 되살아날 수 있다면….

시대의 자화상이건 선생님의 자화상이건 어둡고 우울한 자화상이 아니라

밝은 색깔의 자화상만으로 변할 수 있다면 제 몫의 삶을 포기할 수도 있어요.

그까짓 이름이 뭐예요? 이름이란 어차피 붙이기 나름 아닌가요?

저도 한때는 화가가 꿈이었다고요.

미술 선생님의 콧수염이 좋아서 짝사랑을 하기도 한. 우선 저를 한 번 그려 보실래요.

이래 봐도 내 육체에 정신을 놓아 버린 남자들이 얼마나 많았다구요.
빨리요. 그녀는 그 안에 너무나 많이 변해있었다.
얼룩무늬 출신의 악당을 작살내던 폭력이라도 휘둘러보시던지.
여자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자기 손으로 옷을 벗기 시작했다.
무엇을 그리고 싶나요? 어두운 영혼, 생명이 꺼져 가는 것을 그렇게 보고 싶나요?
모델대의 여자는 내 눈동자에서 풍겨 나오는 푸르스름한 광채.

살인이라도 저지르고야 말 무서운 시선을 거리낌 없이 받아넘겼다.
무엇을 그리고 싶죠? 자화상? 모델대의 여자는 다정스럽게 묻고 있었지만 목소리엔 울음이 가득했다.
저도 옛날엔 그랬죠. 자학과 절망만이 지상의 최대인 걸로 착각했으니까요.

죽음쯤이야 매일 한번씩은 단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렇지만 지금은 안 그래요. 악착같이 살아야겠어요.

아귀다툼을 해서라도 살아남기로 했어요. 왜 이렇게 변했는지 내 자신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선생님과 나와의 만남은 어쩌면 운명적일는지 몰라요. 전생의 인연이 끊을 안 놔준 때문인가요?  
반쯤 벗겨진 상체의 옷을 그녀는 급하지 않게 아주 서서히 벗어나갔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여자의 손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벽면에 걸린 거울 속에는 아무것도 안 보였다. 선이 끊어진 바이오린의 향수에 사로잡혀

먼 하늘을 응시하던 황혼의 악사도, 황량한 늦가을을 수놓던 갈가마귀 떼들의 처량하기만 한 울음들도.

짙은 어둠, 색깔조차 분명하지 않은 절망의 그림자들도.

싱싱한 육체에 넋을 잃은 채 욕망으로 뒤엉킨 한 사내의 모습만이 보일 뿐이었다.

이따금 내 의식의 저편에서 웅얼대던 얼룩무늬의 사나이도,

그리고 영아의 모습도. 진아? 내가 조용히 뇌까렸다.
그만해. 옷을 벗지 않아도 내 눈에는 다 보여.
여자를 가슴에 넣었다. 놀랍게도 아래로만 처져 있던 내 오른쪽 손이 여자의 허리 부근을 더듬고 있었다.
어마, 선생님. 그녀가 울먹였다. 나는 그녀의 허리에 힘을 가했다.
가슴만 훈훈해진 게 아니었다. 죽어있던 사타구니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있었다.

이제야 어두운 터널을 통과한 것일까.

저 앞에 보이는 둥그런 빛 속을 통과하여 나가면, 예전에 보았던 보랏빛 제비꽃이 피어 있을까.

하늘은 그 푸른빛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까?

나는 그녀의 등을 끌어안은 채 어두운 터널 밖을 상상하고 있었다. / 끝.

 

 

*원작출처 : [희구당집1618] - 다음 블로그   http://blog.daum.net/ljbb1618

 

‘질거운뜻 부지런팔뚝 갖이고’
‘가가(家歌)’부르며 더욱더욱 나아가는
곡성 목사동 농부소설가, 이재백(李在白)
2007-05-07남인희 기자  

▲ 곡성 목사동 이재백씨 댁엔 할아버지대로부터

50년 넘게 이어져 온다는 가훈과 ‘집노래(家歌)’가 있다.

ⓒ 김태성 기자 / 2007-05-07


“물오리들이 하늘로 날아오를 때의 울음소리가 푸른 비 내리는 것 같다”해서 압록(鴨綠)이라던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손꼽히는 석압로(압록∼석곡). 느릿느릿 순하게 흐르는 보성강 물길 따라가다

아미산 자락에 옴팍하게 안긴 마을 하나로 접어든다.
흐르는 듯 모나지 않은 고샅길을 만들고 있는 이끼 낀 돌각담들이 정다운 목사동이다.

 

실록을 쓰는 사관처럼 농촌 실상 기록
그 <돌각담>을 표제작으로 지난해 늦둥이 첫 소설집을 내놓은

이재백(69)씨가 이 마을(곡성군 목사동면 신전리)에 산다.

그는 고향을 지키며 소설 쓰는 농부다. 아니 농부 소설가다.

두 가지 일을 양 손에 들었으니 요새 사람들 하는 말로 치면 ‘투잡족(族)’이다.

주경야독이라고, 낮에 배밭으로 논으로 고샅으로 쏘다닌 발걸음은 밤엔 형광등 불빛 아래 그대로 컴퓨터에 옮겨진다.
<옛 사람들이 살아왔던,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 많은 흔적들이 얽히고설킨 황토 구릉마을,

그 입구마다 자그만 비문이라도 세워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아픔이, 그리움이, 분노가, 함께 하는 마음이

절절이 스며 있다고…>.
소설집 《돌각담》에 붙인 작가의 말이다.

▲ 벼농사만 짓고 살던 마을에서 처음 배농사를 시작한 이재백씨.

가가(家歌)의 노랫말처럼 그가 품은‘질거운(즐거운) 뜻’과 ‘부지런(한) 팔뚝’덕에

80여 농가가 참여하는 곡성배영농조합에선 연간 500톤이 넘는 배를 수출하게 됐다.

ⓒ 김태성 기자 / 2007-05-07


“젊은 사람들이야 이것이 전설도 아니고 뭣도 아니고 뭔 소린 줄도 모르고 관심도 없겠지만,

우리의 족적에서 사라질 것들을 새기고 농촌을 그려낼 수 있는 마지막 세대라는 생각으로 작품을 씁니다.”

잊혀져 가는 우리네 농촌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의 소설엔 마을의 역사나 농촌의 소소한 풍속들도

오롯이 재현되고 있으니, 소설가 이순원이 이 소설집에 붙인 평처럼

<그의 소설은 한 구석 새것에 대한 맹신적 경쟁이 없다.

이 체구 조그마한 늦깎이 작가는 늦었다고 서두르는 법 없이 자기 걸음으로 살아온 시대를 얘기하고

자기가 본 시대를 증언하며 또 이야기한다.>
서울에서 문예창작과를 나온 청년이 농촌으로 귀환했을 때, 사람들은 도대체 왜 돌아왔느냐고 물었다. 
“농촌에 살며 농촌을 쓰기 위해서였죠. 지금도 후회는 없어요.”

오래 전에 변방의 문학으로 쇠락해 버린 농촌문학을 숙명인 양 고집하는 시대착오적인 외곬수.

그이가 마치 실록을 쓰는 사관처럼 농촌의 실상을 기록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신 저녁마다 흙 묻은 장화를 벗는 농부이기 때문이다.
“소설 쓰는 이들 앞에서는 나는 농사도 짓는다 까불지 마, 허고

농사짓는 이들 앞에선 나는 소설도 쓴다 까불지 마, 허고 사는 것이지요, 허허.”

이 작달막한 어르신의 얼굴에 흐르는 봄햇살 같은 웃음을 대하노라면 ‘까불지 마’라는 엄포가

실은 어디서나 눌릴 것 없는 처지이면서도 늘 수그릴 줄 아는 겸양에서 나온 말씀이란 것을 알게 된다.

그러기에 이생진 시인은

<시골에서 배농사를 하며 글을 쓰는 이재백/ 서울에서 시를 쓰는 내 손이 부끄러워>라고 쓰지 않았겠는가.

20호 자가일촌(自家一村)을 이루고 사는 마을.

6000여 평 배밭에 3000여 평 벼농사를 손수 짓고 사는 그이지만

혹여 조금치라도 서툰 일 앞에서는 나이 불문, “일헌 데는 니가 내 선생이다” 고개 숙이고

한 수 배우기를 꺼리지 않는다.

집앞 마당의 바위좌대에서-이재백   ⓒ 김태성 기자 / 2007-05-07


벼농사만 짓고 살던 마을에 처음 배를 들여와
“지켜야 할 것은 지키고 바꿔야 할 것은 늘 자꼬 바꿔치기해야 해요.”
전통이라고 해서 무조건 답습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진취적 기상은 이 작은 마을을 배 수출 단지로 바꿔 놓았다.

지금이야 ‘골짝나라’ 곡성의 ‘목사동 배’가 명성을 얻었지만

벼농사만 짓고 살던 이 마을에 처음 배를 들여 온 공로는 이재백씨 부부에게 있다. 
“나주에 혼자 가서 들판을 본께, 어디 과수원에서 아저씨가 전정을 하고 있어요.

음료수 한 병 사 갖고 가서 꼬치꼬치 묻고 한번 모셔다가 전정 배우고 그 뒤로는 혼자서 했지요.”

시집와서야 농사를 배웠다는 그의 아내 이행숙(62)씨는 타고난 장손며느리였나 보다.

가세를 지키기 위해 내 몸을 희생하겠다는 각오로 배농사를 시작했다.

시어머니 생전에 “니 손은 참 좋은 손이다”는 치하를 들은 걸 보면 이 며느리의 바지런한 성정이 짚어진다. 

그렇게 배밭을 일구어온 지 30년이 넘었다.

배영농조합법인의 부지로 쓰겠다고 1000여 평의 멀쩡한 배밭을 무상으로 내놓은 남편에게 아내는 할 말이 많다.
“판판한 평지 땅은 마을에 내주고, 마느래(마누라)는 쩌 높은 산비탈을 다리 아프게 오르락내리락 일하러 가라 허데요.”

덕분에 80여 농가가 참여하는 곡성배영농조합에선 연간 500톤이 넘는 배를 수출하고 있으니,

목사동 골짜기는 떠나가는 농촌이 아니라 바야흐로 돌아오는 농촌이 돼 가고 있는 것이다.

내 식구보다 남의 식구 좋으라고 한 일이건만, 남편은 생색도 내지 않고 덤덤하게

“내 배밭 가차우니 내 일 보기도 편허잖여” 응수하고, 항변하던 아내의 얼굴엔 슬몃 웃음이 비친다. 
부창부수다. 부부는 닮았다.

▲ 그의 서재 희구당. 할아버지 때부터 지녀온 고서며 누렇게 바랜 옛날 문예지부터

요즘 신간 서적까지 사방으로 병풍을 두른 듯 촘촘하고 알뜰하게 정리된 것이

오래된 남와 어린 나무가 함께 자라는 숲에 들어선 듯.

ⓒ 김태성 기자 / 2007-05-07


편지 한쪽도 금쪽처럼 간직하는 그 마음
5대째 120년 세월을 이어 온 그의 집.

그 한 세월, 고물고물 기어다니던 갓난쟁이가 혈기 푸른 청년이 되었다가 순하게 늙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집이다.
바지런한 부부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을 성 부른 그 집의 안팎엔 고요하고 정갈한 윤기가 스며 있다.

사람으로 치자면 집은 외화내빈과는 도무지 거리가 먼, 속이 꽉 찬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사랑채에 들인 그의 서재엔 예사롭지 않은 필치의 현판이 걸려 있다.

희구당(喜懼堂). ‘즐거울 희(喜), 근심할 구(懼)’,

기쁨과 두려움을 안고 있는 처소라니 당호라기보다 인생 철학쯤으로 들린다.
“좋은 일 있으면 까불고 힘든 일 있으면 절망하는 것이 사람의 습성이지만,

좋은 일 앞에서도 너무 까불지 말고 절망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고 즐거움을 찾으라는 뜻이지요.”

서재는 온고지신하는 이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것 같다.

할아버지 때부터 지녀온 고서며 누렇게 바랜 옛날 문예지부터 요즘 신간 서적까지

사방으로 병풍을 두른 듯 촘촘하고 알뜰하게 정리된 것이 오래된 나무와 어린 나무가 함께 자라는 숲에 들어선 듯.

그의 소장목록엔 가령, 공초-오상순에게서 받은 담배 한 갑이 그 시절의 추억과 함께 끼여 있는가 하면,

희부연 창 옆에 걸린 액자엔 누렇게 바래가는 흑백사진 한 장이 남모르는 진가를 가진 보물인 듯 연륜을 더해 간다

(사실은 어느 잡지에서 뜯은 것이다).

“나한테 들어오는 것은 신문지 하나라도 안나간다”는 그이.

글자를 다루어 영혼을 아로새기는 작업을 하는 그이기에 인쇄물에 대한 애착이 각별하다.

“만든 이의 혼을 담은 것 아닙니까. 전라도닷컴도 한 200년 지나면 문화유산이에요.”
편지 한쪽도 금쪽처럼 여기는 그이의 집에서는 할아버지의 편지도 자랑스러운 역사고 유산이다. 

▲ 5대째 120년 세월을 이어 온 그의 집.

바지런한 부부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을 성부른 집의 안팎엔

고요하고 정갈한 윤기가 흐르고 속이 꽉 찬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 김태성 기자 / 2007-05-07


콩나물 깍대기도 없이 입으로만 전해지는‘집노래’
빛바랜 서책들 곁엔, 그것이 만들어진 세월을 짐작케 하는 표구 액자가 눈에 띈다.
할아버지대로부터 70년 넘게 이어져 온 가훈과 ‘집노래(家歌)’다.
만손일심(萬孫一心)하라 전해지는 가훈은

근면·진취요 ‘가도(家道)중심’은 화락(和樂)이다. 그 아래 씌어진 것은 ‘집노래’.

<깨끗한 피 궂센 힘 모아 닐우어/ 이천해 니여온 우리집 역사/ 겨레는 억천만 마음은 하나

/ 집을 위한 몸바친 우리집 주의/ 질거운 뜻 부지런 팔뚝 갖이고/ 더욱더욱 나어갈 우리집 가훈

/ 가론 땅갓 세로는 하늘과 함께 / 내 때 내손으로 될 우리집 가도(家道)>
이름도 생소한 집노래. 그는 “내 한번 불러 볼까요” 하고 첫 소절을 우렁우렁 부른다.

시조가락으로 할아버지가 부르던 것을 귀에 담아 기억한 것이다. 

“시골영감이 밥묵고 헐 일 없어서 헛폼 잡았는가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집안에 집노래가 있다는 게 자랑스럽지요.

콩나물 깍대기도 없이 입으로만 전해지는 놈이니

음대 작곡과 다닌다는 집안 아이놈한테 악보로 한번 정리해 보라고 할 참입니다.”
노래 속 ‘질거운(즐거운) 뜻 부지런(한) 팔뚝’을 좌우명처럼 살아가는 그이.

산등성이 희디희게 덮었던 배꽃들 다 지고 나면

낮으로는 새 잎 푸른 자리마다 종종거리고,

밤으로는 희구당 문 앞에 대숲 바람 소리 청정하게 흘려 놓고

오늘 아니면 새기지 못할 글을 새기고 있으리라.

기사출력  2007-05-07 16:53:13  

ⓒ 전라도닷컴

 

*출처 :광주전남소설가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 어이-쇠

 

 

 

* 글이 있는 돌각담 *

 

 

돌각담 육필비-전라남도 곡성군 목사동면 신전리

 

어떤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었습니다.

누구나 어른이 되는 것이어서 그 아이도 어른이 되었지요.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고 해서 서울로 왔다가,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닌 것 같아 고향으로 돌아가버렸습니다.

고향사람들과 비료를 나누고,

고향 산들에는 과일을 심고,

시간이 나면 젊은 날의 초상을 그렸지요.

그러기를 40년.

코 흘리개 아이들도 성장해 가정을 꾸리고,

어느덧 그에게도 황혼이 왔지요.

그 어느 황혼의 시간에서,

그는 새로운 인생을 만들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도 틈틈이 그가 그리던 젊은 날의 초상은,

그를 소설 돌각담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58세에 신인문학상을 받게 된 것이지요.

 

 

 

무어 농촌운동이 별스러울 게 있겠어요.

평생을 농촌에서 살면서 농업을 하면 그것이 농촌운동이지요.

허울 좋은 말보다 농촌 지키면, 그것이 진짜 농촌운동 아닌가요.

낮에는 농사, 밤에는 글쓰기.

평생을 그와 함께 있었던 농가의 돌각담.

이제 그 돌각담이 소설가의 꿈이 아닌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출처 :좋은 사람들 두레 원문보기   글쓴이 : 이재범

 

* 글이 있 는 돌 각 담 *  

 

인적조차 보기 드문 이 고샅길을 돌각담길로 가꾸고자 하는 마음은 별난 아름다움입니다.

그렇지만 더한 아름다움은 흙냄새 풍기는 순박한 마을 사람들의 고운 심성(心性)입 니다.

이 흔적痕迹은, 먼 후일後日에도, 희미한 달그림자로,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

 

“돌각담”의 형상화로 마을길을 아름답게 꾸미는 한편,

이 골짜기와 인연이 있는 분들의 육필(肉筆)을 돌각담 속에 숨겨 놉니다.

풀잎보다 싱싱한 모습으로,

고향 사랑의 잔 잔한 진혼곡(鎭魂曲)으로, 또한 글 자리의 디딤돌로...

 

*돌각담 사이를 장식한 글들.

 

<안내문>

 

글에 취(醉)한 돌각담은

하늘 아래 가장 쓸쓸한 땅에 있습니다.

햇살조차 머뭇거리는 이 골짝에

마을 사람들의 자화상自畵像을 남깁니다.

 

이 장 : 정 정 태

새마을지도자 : 이 봉 안

 

목사동 면장 : 마 덕 숙

총무계장 : 한 상 백

 

단기4341년 늦가을에. 마을 상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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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 전 리 봄

 

/임 보

 

아미산 산자락

대숲 마을 이른 봄 배 밭에

꽃이 일면

돌각담 골목마다

은 웃음들

떠가 던 흰 구름도

길 뭠추네

 

1940년 서울대 국문과. 현대문학 시 추천.

시집. “장닭 설법” “은수달 사냥” “가시연꽃” “자연학교”

충북대. 정년퇴임.

 

2)

 

/곽재구

 

외로운

해와

달이

잠시 머물러

지친 발걸음 쉬어가는 이곳

 

꽃과

바람과

새들의 춤이

인간의 주름살 곁에

오래 오래

머물은 이곳

 

그대여

문득 뒤돌아서서

바라보는 길들

또한

사랑스럽지 아니한가

 

/곽 재구

 

1954년 숭실대 대학원.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사평 역에서” “낙타풀의 사랑” “삶을 흔들리게 하는 것들”

순천대학.

 

 

3)

 

/공선옥

 

어둠이 좁은 방안에 밀려든다

어둠 속에서 나는 꿈틀한다.

무엇인가 꿈틀한다.

그곳은 깊고 어두울 것이다.

모든 생명이 움트는 곳은 어디나 다아 한가지로,

 

공 선옥 단편소설 “피어라 수선화” 중에서

 

 

1964년 전남대. 창작과 비평에 중편으로 등단.

소설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 “명랑한 밤길‘ ”유랑가족“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

 

 

4)

 

입춘 무렵

 

/윤 석주

 

소설 쓰며 배농사 짓는

싱건지 맛 그만인 목사동 李白 兄네

정월 초닷새 배곯은

달빛만 가득한 마당가

기방에서 쫓겨나 사립문

기웃거리던 梅花란 년

싹수 노오란 열일곱 고 가시내

지난 겨을

상사병 지독히도 앓터니

물오른 얼굴에 뾰루지 툭툭 불거졌네.

오매 저걸 어쩔거나

 

/이천팔년 늦가을 돌나무가 쓰다

 

1947년 시와 사람 신인상

시집 “잠든 숲에 사랑을 묻다” “해의 다비식”

 

 

5)

 

목 탁 2

 

/차 창 룡

 

몇 억 광년의 세월이 흘러 별빛이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보이지 않는 속도는 보이지 않는 소리이다.

 

날아가라 어서 목탁 소리여

이 목탁 닳고 닳아 먼지가 되면

돌아오리 보이지 않는 속도로

보이지 않는 길을 만들며

 

아득한 광년의 거리 너머

빠른 속도로 천천히 떨어지는 목탁 소리

별은 먼지이므로

눈에 들어가 눈물 흘려보낸다

보이지 않는 소리를 보여준다.

 

1966년 중앙대 대학원.

“문학과 사회” 로 등단

시집. “나무 물고기”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인도 신화”

김수영 문학상. 중앙대. 경기대. 서울여대 출강.

 

6)

 

/이재범

 

이 주차장에서 마을로 들어가니

확 트인 바다가 보이며 마을이 나타났다.

이아 마을, 그리스에서 일몰이 가장 아름답다는 곳이다

파란 지붕에 그리스정교회식 십자가를 단 교회들

그 사이로 넓은 날개가 달린 풍차들

히피서커스가 만개한 푸른색 지붕의 하얀 작은 집들,,,

이아 마을의 첫 인상은 그랬다.

이른바 카사비앙카(언덕 위의 하얀 집)가 아닌가?

누군가 일부러 만들어 놓은 듯 보이지만

실은 오랜 세월 척박한 자연 속에서 삶을 일구어 온

이곳 사람들의 땀이 배인 곳이다.

 

/이 재범 “나의 그리스 여행” 중에서

 

1951년 성균관대학.

“슬픈 궁예” “한반도의 외국군주둔사” “나의 그리스 여행”

경기대. 경기도문화재 위원장.

 

7)

 

/조용헌

 

인간을 연구한다는 것은 자연을 연구하는 것이고

자연을 연구한다는 것은 인간을 연구한다는 것이다.

하늘의 이치는 그때마다

인간을 통해서 나타나게 되어있다.

인간과 자연은 서로 상응하고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태풍을 보고 인간사를 예측할 수 있다.

난세의 조짐을 미리 보는 것이다.

하늘에는 측량하기 어려운 비바람이 있고

사람에게는 아침저녁으로 바뀌는 화복이 있다.

 

/조 용헌. “사주명리학 이야기”에서

 

1961년 원광대학교. 조선일보에 조용헌 살롱 연제중.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고수기행” 방외지사“ ”사주 명리학 이야기“

조선일보 논설위원. 원광대.

 

8)

 

개 떡

 

/문 순 태

 

내 유년의 초록빛 하늘에

개떡 하나 둥둥 떠 있다.

배고파 눈 질근 감으면

개떡 같은 보름달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내 희망은 개떡이었다.

어머니,

어릴 적에 맛나게 먹었던

보름달 개떡

어디에 숨겼어요

쫄깃쫄깃 들큼한 희망의 맛

돌려주세요.

 

1941년. 조선대. 한국문학으로 등단.

소설 “징소리” “철죽제” “타오르는 강 7부작” “정읍사”

전남일보 편집국장. 순천대. 광주대. 정년퇴임.

이상문학상 특별상. 문학의 집 생오지.

 

9)

 

/박 혜강.

 

천지간에 꽃잎 흩날리던 날,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깨달았다.

생의 무게가 얼마나 버거운 것이며,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어떻게 변하는지.

슬픔은 슬픔만큼 깊어지고, 슬픔은

슬픔만큼 넓어지고, 슬픔은 슬픔만큼

커졌다가 마침내 그 슬픔을 먹어치우고

또 그 슬픔을 넘어 이름 모를 꽃으로 다시

피어나게 될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무등일보 연재소설 “풀잎으로 눕다” 중에서

 

1954년. 조선대. 문학예술운동에 중편으로 등단.

소설 “ 운주 5부작” “도선비기” “조선의 선비”

광주전남 작가회의. 광주전남소설가협회 회장. 역임.

 

10)

 

/백시종

 

돌각담의 아름다움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참혹한 비극을

서정적인 문체의 돌과, 탐구

적인 시각의 돌과, 따뜻하지만

엄숙한 목소리의 돌과, 연민의

돌들을 생김새대로 차곡차곡 쌓아

놓는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10월. /백 시종.

 

1944년 서라벌예대.

대한일보. 동아일보 신춘문예당선. 현대문학 추천.

소설 “돈 황제” “걸어 다니는 산” “환희의 끝” “서울의 눈물” “물”

한국문학상. 오영수문학상. 채만식문학상. “계간문예” 주간.

 

11)

 

/이근배

 

어머니가 매던 김 밭의

어머니가 흘린 땀이 자

라서 꽃이 된 것아 너는 思

想을모른다 어머니가

思想家의 아내가 되어서

잠 못 드는 平生인 것을

모른다

 

졸시, 냉이꽃의 일절을

 

/사천-이근배 적다.

 

1940년 서라벌예대 문창과.

경향신문. 서울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노래여, 노래여” “한강” “시가 있는 국토기행”

시인협회회장 “한국문학” 주간역임.“문학의 문학” 주간. 재능대. 예술원 회원.

 

12)

 

/이명한

 

뜻이 조금 다르더라도

몸을 스치며 걸어가다 보면

얼었던 마음이

어느덧 따뜻해지는 것을

南과 北이 어찌 다를까.

저 푸른 하늘 함께 이고

비단 같은 땅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아

 

이 명한 :1932년 조선대.월간문학 신인상.

소설 “황톳빛 추억” “달뜨면 가오리다”

광주전남문인협회장. 광주전남 민예총 회장역임

 

13)

 

/이순원

 

대부분의 행성이 자기가 지나간 자리를

다시 돌아오는 공전주기를 가지고 있듯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런 질서와 정해진

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일

이란 일은 모두 2천5백만년을 주기로

되풀이해서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2천5백만년이 지나면 우리는 다시

지금과 똑같이 여기에 모여 오늘 우리

곁으로 온 별을 쳐다보며 이야기할겁니다.

 

소설 “은비령” 중에서

/이 순원

 

1958년 강원대. 문학사상 신인상.

은비령” “말을 찾아서” “순수” “아들과 함께 걷는 길”

효석 문학상. 한무숙문학상.

 

14)

 

/임철우

 

한때 우리는 모두 별이었다.

저마다 꼭 자기 몫만큼의 크기와

밝기와 아름다움을 지닌 채,

해 저문 하늘녘 어디쯤인가에서,

꼭 자기만의 별자리에서

자기만의 이름으로 빛나던,

우리 모두가 누구나 다 그렇게

영롱한 별이었다.

 

/임 철우 “그 섬에 가고 싶다 중에서“

 

1954년. 전남대. 서울신문신춘문예 당선.

소설. ”봄날 5부작“ “백년여관” “그 섬에 가고 싶다” “등대아래 휘파람”

단재상. 요산문학상. 이상문학상. 한신대. 교환교수로 중국에.

 

15)

 

/채희윤

 

도대체 누가 이 보리를 심었을까. 불하받은

땅이라서 아직 집을 짓기는 싫어서 그 대신 낭만을

심어 보자고 심은 것일까. 아니면 저 아파트에

서, 자식들에 얹혀사는 시골 노인들이, 억지로 버리고 온

고향을 그리워하며 남의 터에 파종을 했을까?

이제야 그는 조금 전 노인네들이 그들이 아닐까 생각

했다. 그들이 젊음을 그리워하듯이, 옛날 보리밭에

서의 정사를 생각하며 기분을 내 보려 자식들

몰래, 이 한밤에 나왔을까? 도대체 누구일까.

이렇게 푸른 절망의 씨앗을 파종하고, 퇴색한 상처를

되살리는 사람은.

 

소설 “밤, 견인의 시각” /채 희윤

 

1954년 서강대 대학원. 한국일보 신춘문예.

“별똥별 헤는 밤” “스무고개 넘기” “곰보아재” “소설 쓰는 여자”

광주전남 작가회의회. 광주전남소설가협회 회장 역임. 광주여대.

 

 

16)

 

이런 꿈 한자락

 

/천 승 세

 

 

모지락스러운 세상 목숨 벼르노라 사대육신

눅쳐지는 날엔 이런 꿈 한 가닥 담은 단

봇짐 들고 길 떠나보자.

 

섬도 아닌 땅 땅도 아닌 섬 한 곳 물색해서

자란자란 띠 돌리는 물길 모재비 헤엄질로 건너

연화리에 오똑 올라 풋각시 허릿매 같은

환한 길 한골로 닦아 목사동 되짚어 오를 일.

아직도 즈런즈런 젊디젊은 통명산 벼룻길

달근달근 타내려 필봉 서벅돌 틈 낙낙한

자리 한 곳 골라 곡성땅 마지막 파시

주렁주렁 키우는 감나무 한그루로 희우둠이 서서

붓대 쥔채 날밤세우는 신전리 재백(在白)이의

새하얀 새벽이나 지켜볼꺼나

 

1939년 서라벌예대. 성균관대.

동아일보 신춘문예. 국립극장 장막극 현상공모 당선.

소설 “맨발” “혜자의 눈꽃” “낙과를 줍는 기린” 시집 “몸굿“

 

17)

 

/한승원

 

거문고는 왜 신의 악기(神 琴)

인가 수많은 누에고치들의

순절 때문이네. 그들의 몸

비틀어 꼰 울음은 혼의 음

되어, 그 음은 빛이 되어,

그 빛은 새가 되어 펄펄

하늘로 날아가네.

 

詩, 글씨 / 한 승원

 

 

1939년 서라벌예대 문창과. 대한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설 “동학제 7부작” “해일” “원효” “추사” “아제아제 바라아제” “목선”

이상 문학상. 김동리 문학상. 수상. 해산토굴에 칩거. 조선

 

18)

 

목 사 동 연 가

 

/최 정 주

 

목사동 신전리 마당 넓은 그 집에는

배꽃같은 사랑이 살아요. 떠난 사랑으로

가슴에 꽃병이 들어 아픈 날이

주인 몰래 한번 다녀 가시지요

운이 좋으면 소쩍새가 부르는 사철가

한 대목 들을 수 있고요. 주인에게 들키

사랑같은 배 맛도 볼 수 있지요.

 

1951년 원광대 국문과. 한국문학에 중편소설 당선.

소설 “아리랑” “흰소” “일지매” “안개” “황진이”

백제예술대

 

19)

 

섬으로 가는 2박 3일

 

/이생진

 

이렇게 가족 몰래 사는 가족이 있었던가

모이니까 한 식구 같다

남원을 지나

곡성에서 이재백 소설가

돌각담 같은 순수한 사람의 손

진갑이 훨쩍 지난 것이 허무한 게 아니라

이런 만남이 고마워.....

고목에서 예쁜 꽃을 피우고 싶은 것은

과욕이 아니리라

생명의 존재를 다시금 확인하는 방법이다

 

시골에서 배농사를 하며 글을 쓰는

이재백

서울에서 시를 쓰는 내 손이 부끄러워

그의 손보다 먼저 내 얼굴에 미소를 바른다

술이 맛있는 것도 이런 손 때문이리라

그는 무궁화호에서 내려

다시 곡성에서 헤어졌다

이 세상에 태어나 글을 쓴다는 거

술을 마신다는 거

그리고 얼굴을 마주보며 취한다는 거

2박 3일은 그것을 확인하는 술잔이다.

 

1929. 국제대학.

현대문학 추천, 그리운 성산포. 바다에 오른 이유. 나의 부재.

윤동주문학상, 그리운 성산포로, 제주명예 도민증.

 

<1> 글 비(碑) :자연석19 개

<2 >돌각담 길이 135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