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백(李在白)·단편소설 방

[단편소설]나루터 전설 / 이재백(李在白)◈소개작품◈

Demian-(無碍) 2011. 2. 23. 19:15

 

나 루 터   전  설   

 

 

     /이재백(소설가)                             
                                                      

 

“저런 년은 맷돌에 갈아 마셔도 싸지, 싸.

덕석몰이를 시키던지 코 꿴 송아지 맹키로 동네방네 끌고 댕김서

광고라도 돌려야 될 것 아녀?

이놈 저놈 붙어먹었으면 창피한지나 알아야지

무엇이 잘났다고 땅바닥에 덜퍼덕 주저앉아

날 잡아 묵어라고 똥배짱만 부린단 말이여?

참말로 낯짝 하나 좋은 년이제,,,” 
  멧돼지 목줄이라도 끊어놓을 듯 불끈 움켜진 억보의 손목이 파르르 떨린다.
  핏자국이라도 길길이 뿌려야만 성깔이 풀릴 것 같은 억보는 숨결만 거칠게 몰아쉰다.

살인이라도 저지를 것처럼 눈자위엔 핏발마저 서렸다.
 “콱 저 잡년을,,,”
  강 건너 연화리 쪽에서 갈가마귀 떼의 목 놓는 소리가 들려오자

억보의 고개가 아래쪽으로 힘없이 꺽어진다.
 “쥑이던 살리던 이녁 알아서 할 일이제.”
  주먹가심 하나로도 작살날 것처럼 연약하게 보이는 점례의 등허리에

어느 듯 어둠이 스멀스멀 나리고 있었다.
 “참말로 뒈져볼 것이여?”
  억보가 이를 악물고 으르렁댈수록 점례의 가냘픈 등허리는 철갑선 마냥 점점 굳어지고 있었다.
 “몸서리난 놈의 세상 나도 얼른 그만 뒀으면 쓰것으니 쥑이던 살리던 이녁 맘대로 허시씨요.잉.”
  체념이 아니었다. 어쩌면 완강한 저항인지 모른다.

악에 바친 나머지 부르짖은 소리 같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자신의 의지를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판사판. 결국에는 막다른 골목까지 가자는 것 아닌가.
  열기를 뿜어내던 억보의 입술에선 가느다란 한숨이 새어나왔다.
 “이 우라질 놈의 날조차 염병이여. 이 늦가을에 천둥은 웬 천둥이여.

차라리 요 잡것들이 나 콱 조질 일이지 마른 놈의 하늘에 천둥이 뭐란 말이여.”
  억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사시나무처럼 떠는 점례의 팔목을

우악스럽게 낚아채다 말고 땅 바닥에  침을 내 뱉는다.
  먹장 같은 어둠이 서서히 밀려오더니 강나루 저쪽에선 이따금 섬광이 일었다.

하늘을 에워 싼 먹장구름들, 천둥의 웅얼거림,

칠흑 같은 어둠이 억보의 심장에 불길을 지피는 형상이었다.
 “콱!”
  억보는 살인이라도 저지를 듯 성깔을 돋구다간 제풀에 또 지쳐버린다.
 “니 죽고 나 죽으면 그만잉께,,, 이 똑똑한 여편네야.”
  또 천둥이 으르렁댄다. 이번엔 활머리 뒤쪽 여호골 골짜기로 벼락이 내려치는 모양이었다.

소나기라도 한줄기 몰고 올 듯 밤의 습기가 후줄근히 스며든다.
 “왜 말을 못 혀?”


  전라도 곡성 땅의 맨 남쪽. 섬[島]이 아니면서도 섬이나 다름없는 곳이 목사동이다.        

곡성이라는 고을 자체가 이름이 안 알려진 건 물론

혹시 기억하더라도 흉악스런 산골로만 여기는 게  아닌가.

게다가 나루터를 건너 일단 연화리로 되짚어나가야만 육로{陸路}가 시작되기 때문에

읍내 사람들은 이쪽 사람들을 싸잡아 섬사람이라느니

유배지 사람들이라고 은근히  얕잡아보기 일수였다.
  올망졸망한 노령산맥의 틈바구니에 촘촘히 들어박힌 마을들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옛날부터 산수 좋고 인심 좋아 살기 좋은 피난지로 일컬었지만 듣기 좋은 풍월일 뿐이다.

살기가 힘든데 뭘 해? 인심이야 사납더라도 교통 편리한 장터가 더 좋은 법이지.

장돌뱅이가 더 부러운 것 아닌가?
 “제기랄, 우리 면에 국회의원 하나만 있어도 뱃석거리 다리 하나는 받아 놓은 밥상인데,

이 게 무슨 꼴이냔 말이여.」
  눈보라가 세게 몰아치고 통명산 기슭에서 밀어닥친 강풍이 귓밥을 씹어 돌리면

입으로 어한이라도 풀 듯 엉뚱한 타박들을 해대는 이곳 사람들이다.
  지세가 험하고 고만고만한 산들만이 머리를 쫑긋거리니 햇살조차 인색하였다.

들녘이라야 우렁쉥이 창자 반쪽만한 거였으니

한나절씩 산그늘에 젖어드는 논배미는 들녘논의 반 수확이면 흡족한 터였다.
  조막손만한 땅마지기 하나 없이 알량한 뱃 새경만으로 호구지책을 해야 하는 억보의 형편은

보나마나 뻔한 노릇이었다. 게다가 이 알량한 놈의 뱃사공마저 몇 달 안으로 그만둬야 될 형편이니

겉으로는 남의 일처럼 태연했지만 아닌 밤중에 홍두깨 맞은 꼴이나 다름없었다.
  오뉴월 풋 서리가 나리든 칠팔월 우박이 쏟아지든 억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시절이 풍요로우면 잔치 집의 상차림에 접시라도 몇 개 더 올라 뱃심조차 든든할 터인데

흉년이라서 그런지 이런 인심조차 흉흉하였다.
  추수가 끝난지 엊그제 같은데 장리 쌀 얻을 궁리에 혈안들이었다.
 

연화리와 들말 사이를 잇는 다리[橋] 공사는 늦봄부터 시작되었다.

괴상스런 포크레인이 산더미 같은 모래자갈더미를 한 쪽으로 밀어 올려 둑을 쌓는다.

몇 개의 웅덩이를 만든다. 그리고 한쪽으로 새로운 물길도 만들었다.

대형모터들이 밤낮 쉴 틈 없이 웅덩이의 물을 품어 올린다.

선착장마저 순식간에 딴 쪽으로 옮겨놓는 것이다. 모든 것이 눈 깜작할 사이에 변해버렸다.
  벌써 몇 개의 교각들이 시야를 가로막는 것 아닌가.
  이따금 들려오는 산새소리와 여울 소리만이 어울리는 곳.

태고의 전설마저 삼켜버린 마의 음성 같은 것들. 보이는 것, 들리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어둠의 연속일 뿐이다. 천둥소리가 멎자 어둠 속의 대지는 두려울 만큼 깊은 적막 속으로 잠겨 들었다.

살아있다는 느낌은 가느다란 강물의 흐름소리 때문일까.
  점례의 흐느낌은 가냘픈 여인네의 음성으로 억보의 가슴을 떨리게 하였지만

웅얼거리는 엔진 소리에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십여 년을 계속해 오던 사공노릇을 그만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낭패감보다 더 무겁게

심장을 압박해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막힌 숨통이라도 터진 것처럼 좋아하는 연화리와 들말 사람들 모양

어깨춤이라도 덩실덩실 추어야 한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지만 그와는 정반대였다.
  어느 하루 편할 날이 없었던 억보였다.
  남들이 편히 쉬는 명절이면 더욱 바빴다.
하늘에서 먹장 같은 빗방울이라도 퍼부어

강변의 들녘까지 물이 넘쳐흘러 물난리가 나야 쉴 수 있었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더 힘든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억보의 초가삼간 뜰 앞까지 황톳물이 넘실거려 두발을 동동 굴려야 될 형편이었다.
  돌림병에나 몸살감기에 걸려 몸져누울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는바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빌어먹을 놈의 사공 짓은 그만 둔단 말이여, 이 짓 안 한다고 산 입에 거미줄 칠까 싶어서.”
  마음을 굳힌 지 오래였다. 그러고 보니 지난 세월이 너무나 허무했다.

일찌감치 때려치우고 딴 짓을 했더라면 이 보단 몇 배나 나을 것을, 하는 아쉬움만 남았다.

비록 뒤늦은 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오히려 잘된 일인 것 같았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호구지책을 위하여 평생 뱃사공 소리를 못 면할 터인데,

홀가분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지만 몇 번이고 다짐했던 결심은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마주 대하면서 또다시 흔들리는 것이다
  징그러운 굉음소리가 천둥소리와 엇갈려 억보의 귓전을 때리고 있었다.

치미는 분노를 가까스로 잠재워 놓았지만 다시금 돋구게 하는 것이다.
  나루터 초가삼간은 강풍이라도 세게 불어 닥치면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어린애 팔뚝만한 서까래는 연기에 그을려 연한 먹물 입힌 듯

거무튀튀한데 썩은 지지랑물을 뒤집어쓰고 있어서 그런지 그믐날 밤의 고목 응어리처럼 음습하게 느껴졌다.
  삼 년째 이엉조차 못한 지붕 위에는 시들어진 잡초넝쿨이 멋대로 널려 퍼져 있어 빈집을 연상시켰다.
  나룻배가 매여진 선착장에서 겨우 스무 발짝 남직한 거리였다.
  억보는 파랑새 한 개비를 피워 물고 지포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시커먼 먹구렁이 띠를 두른 가을 하늘의 변덕 때문에 강줄기며 나루터 건너편 큰길은 말 할 것도 없고

웅장한 통명산의 등신도 안 보이는 것이다.
  두 개의 교각만이 괴물처럼 어둠을 차단할 뿐이다.

희뿌연 저녁연기가 살살 피어올랐다간 낮은 기압골 때문에

강나루 수면에 맞닿을 듯 펑퍼짐하게 내려 깔리는 것이다.

초라하고 궁상스러웠지만 아늑하고 평화스런 안식처.

대대로 이어온 유산처럼 억보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채 진한 감동까지 주는 것이다.

억보가 죽기 전까지는 결코 떠날 수 없는 마음의 안식처로 느껴본 일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리 공사가 완성되어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팔 톤 트럭이며 버스가 지나게 되고

나룻배는 필요 없는 유물로 변한다 하여도 억보는 이 나루터에서 떠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신에게서 점지 받은 사명감 비슷한 거였다.
  억보는 분노를 삭일 속셈인지 백사장에 펑퍼짐하게 주저앉았다.

앉았다기보다 전신을 핑 개친 꼴이었다.
  오른쪽 손에 쥐어진 몽둥이가 힘없이 백사장에 내둥근다.
 “양심이 있으면 생각 혀 봐. 방금도 이 눈구멍으로 똑똑히 .봤응께.

그 새낀 내 손목뎅이로 기어코 때려죽이고 말 것이여, 지가 도망을 가,

가면 어디로 갈 것이냔 말이여.

니 주둥이로 그놈 이름을 확실히 말해 봐/“
  도둑고양이처럼 잽싸게 도망가 버린 공사장의 오 감독에게 향해진 분노보다

점례에게 향해진 분노가 더 큰 것이다.
 “ 정말로 말 안 할 거여? 나란 인간은 인자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응께 성깔난대로 해버릴 것이여,,,”
  점례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도 많았다.

긴가 민가 하는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간 사라지고 잊을만하면

다른 소문이 또 꼬리를 물었다. 누구와 상관했는지 목격한 사람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럴듯한 소문들이 심심찮게 이 사람 저 사람 입으로 옮겨졌다.
  입방아를 찧어도 모른 채 딴전을 피웠지만 그런 눈치나 쑥덕거림을 전혀 모르는 건 아니었다.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란 별명이 알맞을 만큼 무던한 위인이었으니 망정이지

동네 굿을 몇 번쯤 보일만한 터였다.

한 달에 한번쯤 갈까 말까한데 그나마 강나루 나룻배 지나듯 어물쩍 해버리는 터이니

점례만 탓할 일이 아니라고 수군덕거렸다.

유난히 그쪽 사정에 눈이 밝은 점례의 양을 못 채워주는 탓에

억보는 눈치를 채고도 모른 척 눈감아 준다는 풍설마저 그럴 듯 하게 떠도는 터였다.

사시사철 떠날 줄 모르는 궁기가 그런 소문들을 그럴싸하게 뒷받침해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석곡 장에서 잡화를 떼어다 도붓장수를 시작하겠다고 점례 쪽에서 말문을 열었을 때도

억보는 한마디로 묵살했지만 며칠이 못되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새파랗게 젊은 여자를 내돌린다는 것이 꺼림직 했지만 만류할만한 명분도 없었다.
 “허우대만 멀쩡하면 사낸가? 사내다운 구실한 번 제대로 해봤소, 어쨌소?

속이 있으면 시원하게 대답이라도 해야지, 꿀 먹은 벙어리같이 왜 입만 다물고 있소?”
  비아냥거림이 아니었다. 숫제 오장육부를 찢어발기는 막된 말이었다.
  애당초 고개를 끄덕인 억보에게 허물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날이 갈수록 생기조차 도는 점례의 얼굴과 맞닥트린 억보는 오히려 잘한 일인 것처럼 느꼈다.

암팡진 얼굴에 서린 독기가 사라진 것 같았다. 말끝마다 물고 늘어지는 투정도 그랬다.

오랜만에 느끼는 정겨운 맛이랄까. 세간 살림살이도 좀 더 윤택해진 듯싶었다.

어쨌든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을 때보다 점례의 옷맵시는 물론 얼굴의 치장도 몰라보게 변했다.

몸 전체에서 풍기는 새로운 생명력은 억보조차 가벼운 충동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겨우 석 달짼데 당신 일년 새경하고 막 묵게 생겼소.

요렇게 좋고 오진 걸 놔두고 여태 헛살았단 말이요.”
 “정말이여?”
  가까운 이웃마을이 오리, 약간 멀다한 한 마을은 십리, 좀더 먼 마을은 시오리길이다.

어물쩍거리다 보면 서편햇살이 슬그머니 머리를 숙이고 땅거미가 스르르 몰려온다.

우마차나 겨우 비집고 다닐만한 시골길이다 보니 어둠만 내리면 별천지와 다름없다.

어디선지 산짐승이 덮칠지도 몰랐다.

속된말로 도깨비불이 설칠 것 같은 암흑의 동굴이나 다름없는 터였다.

그보다 더한 것은 사람 도적일는지 몰랐다.

건강한 남정네가 다니기에도 위험스런 길을 젊은 여자가 혼자 다닌다는 것은

애당초 화를 짊어지고 다닌 거나 다름없었다. 밤길을 걷다가 봉변을 당한다면,,,

한 달이 채 못 되어 시작된 외박은 새로운 화근거리가 되었지만

미안한 기색이라곤 조금도 안 보였다.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치부했다.
 “그래서 미심쩍소. 여편네를 외박으로 안 내돌리려면 사내구실이나 제대로 해야지.

남들처럼 편케 한번 거쳐 해봤소. 그렇지 않으면 돈이라도 제대로 벌어다 줘봤소?”
  그러고도 또 오금을 밖아. 억보 쪽에서 입 한번 뻥긋 못하게 만들었다.
 “내가 그렇게 못미덥소? 그리고 뭐 몹쓸 짓이라도 했소?”
  점례의 투정에 넌더리만 낼 뿐 억보는 그때마다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이녁도 세상 바람 좀 쐐야지, 어디 갑갑해서,,, ”
  저녁이었다. 잠자리에 들기는 이른 시간이었다. 공연히 짜증이 앞섰다

못 올 것으로 짐작했지만 뭔가 켕기는 게 있었다.

일종의 예감이랄까. 그렇지만 억보는 머리를 내저었다.

쓸데없는 망상은 죄악이 아닌가. 자신의 무능이 만들어 논 업보가 아닐까.

억보는 문지방을 넘어서다 말고 문득 코끝을 스치는 향내를 의식했다.

점례와 살을 맞댄 게 달포가 지난 것 같았다.

점례 쪽에서 야멸스럽게 굴수록 마음을 다그쳤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점례의 몸매에서 풍겨 나오는 진한 향내, 너무나 오랜만이었다.

억보는 아래쪽이 불끈거리는 걸 느꼈다.

허구한 날 삶에 지친 나머지 소중한지 몰랐던 점례가 갑자기 그리워진 것은 웬일일까.
  어디선가 철지난 귀뚜라미가 쓰르르 쓰르르 울 것만 같았다. 연신 헛기침만 터트렸다.

어쩌면 밤늦게라도 점례가 귀가하리라는 바램인가.

그렇지만 억보의 발걸음은 엉뚱한 곳으로 향했다.

공사장의 인부 막사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오 감독의 막사 쪽으로.
  강 건너 연화리에선 반딧불 같은 희미한 호롱 불빛만이 아른거렸다.
  억보는 꺼질 듯 한숨을 몰아쉬었다.

 
  조계산 준령에서 기습공격을 받은 빨찌산의 대열이 전의를 상실한지 오래되었다.
  승산이라곤 없는 전쟁. 위기를 넘기고 나면 또 다른 위기. 미래라곤 없었다.

총소리로부터 먼 쪽으로만 달렸던 것이다.

이름 모른 계곡이며 산모퉁이들. 다람쥐 부채바퀴 돌 듯 부지런히 움직였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동료를 거들떠볼 여유조차 없었다.

사냥꾼에게 쫓기고 쫓기는 한 마리의 산돼지나 다름없었다.

적, 출현. 튀어, 항상 도망치란 소리였다. 계속 이어터지는 터지는 총소리들,

그리고 비명들. 또 몇인가 풀숲에 짐승 같은 죽임을 당했던 것이다.

억보는 아랫배를 내려 깔고 낮은 계곡으로 몸을 날렸다.

아미산 준령을 타고 도망간 곳이 활머리 뒷산 여호골이었다.

 

그러니까 억보의 초가삼간이 있는 나루터의 뒷산 쪽이었다. 벌써 십여 년 전의 일이었다.
  참을 수 없는 허기와 추위. 생존의 한계점에 도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숨을 쉰다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어느덧 눈발이 그치고 아침 햇살이 퍼졌다.

보성강 지류에 널려 퍼진 아침 햇살은 수면에 반사되어 죽음을 기다리는 억보의 눈을 흐리게 만들었다.

보이는 게 없었다. 강렬한 아침 햇살은 환희나 광명을 의미하기 전 죽음을 재촉하는 것 같았다.

억보의 눈을 가로막는 괴물 덩어리는 몇 백 근[斤]이 넘는 북극의 불곰이나 다름없었다.

쫙 벌어진 양어깨와 귀밑까지 눌러 쓴 털모자 속에서 솟구치는 강렬한 시선이 억보를 한눈에 압도했다.

안간힘을 주었던 총대가 손에서 힘없이 떨어졌다.

육중한 체구를 실은 발짝은 억보의 눈  앞에서 움직일 줄 몰랐다.

한 인간을 보는 게 아니라 수 천 년의 비밀을 간직한 골동품을 감상하는 진지하기만 한 눈빛이었다.

그렇지만 순간적으로 수시각각 변하는 그 표정은 언뜻 이해하기 힘들었다. 
  최후의 발악을 해대는 빨치산의 마지막 패잔병,

그 악명은 잠자는 어린 아이도 놀래 울음을 그친다는 게 아닌가.

떨어진 총대를 움켜쥐려는 억보의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노인은 자신의 심장을 향하게 될 총구를 태연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발버둥쳐서 총대를 집더라도 쏘지는 못할 거라는 확신이 서는 듯 너무나 여유 만만했다.
 “이런 개새끼,,,”
  억보는 전신의 힘을 모았다. 노인에게 향해진 욕설은 입 속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눈꺼풀이 스르르 감겨졌다. 움직일 수 있는 기력은 죄다 쇠진해 버린 것 같았다.
 “어리석은 짓은 안 하는 게 현명 혀. 그 알량한 명줄이라도 지탱하고 싶으면,,,.” 
  동녘 햇살이 연화리 나루터 물빛에 어리어 연백 색으로 희끗희끗한 해진 노인의 머리칼에 부대꼈다.
 “젊은이도 나 같은 사냥꾼인가?”
  노인은 무뚝뚝하게 내뱉고 나서
 “사냥을 나온 게 아니라 사냥을 당한 꼴이군.”하고 중얼거렸다.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천애의 고아였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 양친은 강원도 양구 골짝의 화전민으로 숨어살다가

어떤 무뢰배에게 칼침을 맞았다는 것이다.

철도 들기 전 일이어서 억보에겐 남의 이야기나 된 것처럼 긴가민가할 뿐이다.

몸담고 있던 고아원마저 육이오 사변이 일어나자 폭격을 맞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소년 의용대에 끌려갔다. 뭐가 뭔지도 모르고 혁명가를 부르며

산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하여 잔심부름 따위나 하다 영웅칭호까지 받았다.

악랄한 부역행위는 물론 미성년에다가 노인에게 자수한 걸로 되어

몇 년의 징역생활로 지겨운 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형기를 끝낸 억보가 연화리 나루터를 찾았을 때, 노인은 반가워하는 기색이라곤 전혀 안보였다.

낯선 사람을 만난 듯 덤덤하게 대했던 것이다.
 “자넨 뭣 때문에 여길 또 왔지?

갈 곳이 없어서 이 곳으로 온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법이여.

얼마 안 되어 발등을 찍고 싶을 만큼 후회하게 될 테니까. 빨리 이곳에서 사라지라고,

그렇지 않으면 붙잡아서 경찰서로 넘길 테니까.

총으로 나를 쏘려고 했던 악질 반란군이라고.

그때 말이야, 자넨 분명히 날 쏘려고 마음먹었으니까. 날 속일 생각일랑 말아.

귀신은 속일지언정 나는 못 속이니까,,,”. .
하고 엄포까지 놓았다.
 “이건 인연이 아니란 말이여.

불쌍해서 동정한 일은 있을지언정 인연을 맺은 일이 없응께 그리 알아서 혀.

새파랗게 젊은 사람을 나같이 맹글고 싶지는 않으니까,,,‘
  억보는 노인의 말에 섬뜩한 살기마저 느끼고

나루터에서 오랫동안 기거해서는 안 될 비밀이라도 숨겨 논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유일한 혈육인 점례를 억보와 연관시켜 노인의 의중이

억보 따윈 눈에 안 찬 나머지 미리 다그치는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억보보다 점례의 나이가 두어 살 위가 아닌가.


  활머리 뒷산 골짜기, 짐승들이 다닐 수 있는 길목마다 함정을 팠다.

산토끼며 노루며 멧돼지도 심심찮게 걸려들었다.

억보는 어느덧 노인의 식구가 된 것처럼 이른 새벽부터 골짜기를 뒤졌고

낮이면 노인 대신 나룻배를 저었다.

다그치는 투가 원래 정나미를 뗄만큼 우악스러운 것이어서 곧 떠나려니 마음을 먹었지만

막상 갈 곳도 없으려니와 그 때의 일은 잊은 듯 스스럼없이 대했기 때문에

어물쩍거리던 중 한 집안의 식구처럼 어울리게 되었다.
 “자넨 어디 대처로 나가야 될 텐데.‘
  달포가 지나서야 마지못해 노인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나야 해로울 것이 하나도 없지. 젊은 사람이 옆에 있어서 든든한 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 

허지만 그럴 수야 없지.”
  그야말로 선문禪門 선답禪答이었다.
  억보는 왜? 라고 묻고 싶었으나

약간 화난 듯한 노인의 옆얼굴이 무거운 바위처럼 굳어있는 걸 보고 입을 다물고 말았다.

두렵게만 느껴졌던 모습이 한 꺼풀씩 벗겨지자 새로운 면모가 나타난 것 같았다.
  말수가 적은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듬직한 체구며 좀처럼 표정이 없는 것이 그러했다.

온화한 것 같았지만 얼굴 전체에 스며드는 어두운 그늘들.
  억보를 쳐다보는 점례의 눈빛에 이상야릇한 감정이 솟구쳤지만

억보는 그럴수록 노인의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이대로 뱃사람 노릇만 할 참인가?”‘
  노인은 겁먹은 듯 퀭한 눈동자를 강나루로 던지며 남의 일이나 된 것처럼 건성으로 말했다.
 “글쎄요.”
  몸 둘지를 모르는 억보가 우스웠던지 노인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점례하고 두살 터울인가?”
하고 엉뚱한 질문만 했다.
  어쩜 노인의 노후는 물론 점례의 여생까지 돌봐달라는 말인 것도 같았다.
 “자네가 간다면 별 수 없지만 내 쪽에서 쫓아내진 않을 테니 이젠 안심해여.

허지만 딴 맘먹으면 절대로 안 되어, 그때는 패가망신 당한께 말이여.”
  억보는 송구스러울 뿐이었다.

점례와의 사이가 발각되었을 때에도 노인은 흡사 강 건너 불구경이나 하듯 덤덤할 뿐이었다.
 “꼭 이래야  쓰것는가?

이 지랄이나 하려고 여태까지 빈둥거리고 이 골짜기를 못 벗어난담?

내가 뭐라고 허든가? 자네가 있을 데가 못된다고 했지?

진작 쫓아낼 건데 발을 못 붙이도록 잡도리를 해야 하는 건데. 쯧 쯧 …”
 “……”
 “자넨  말이여, 저 년을 데리고 당장 꺼져버리라고. 낸 앞에서 꼴도 안보이게,,,‘
 “아부지, 다 지 잘못이라우.”
  점례가 목 넘어가는 소리를 하며 두 손을 싹싹 빌었다.
 “어르신 제가 쥑일 놈입니다. 어르신!”
 “왜 자네 잘못이여?” 저년 잘못이지.‘
  노인은 헛기침을 터뜨리며 한마디로 일축했다.
  점례가 꼬리를 쳤든 어쨌든 모든 책임은 억보에게 있다는 준열한 판가름 같았다.

억보가 변명이라도 늘어놓아 거북살스러운 장면으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노인의 표정이 너무나 무거웠기 때문에 한마디 변명조차 못한 채 처분만 기다리는 꼴이 되었다.

우람한 체구로 덮쳐누를 것도 같았고

우악스런 주먹으로 면상을 박살이라도 낼 것 같아 전신의 피가 바짝 바짝 말라붙었다.
 “어쩔 참이여?”
  매서운 눈길로 억보를 노려보았다.
 “인간사란 다 저 강물과 같은 것이여. 누굴 탓할 것도 없이 팔자소관이라 여기면 그만이지.

허지만 후회할 때가 있는 법이여.

물론 저년이 먼저 꼬리를 쳤으니께 사내로서 어쩔 수 없었겠지만 다 자네 탓으로 되는 거여.”
 “어르신 제가 ……‘
  억보가 어눌하게 말꼬리를 감췄다.
 “어쨌든 저 놈을 맡아야 돼.

혹시 저놈이 딴 놈하고 이런 짓을 하더라도 맡아야 된단 말이시, 무신 말인지 알겠는가?」
  얼떨결에 노인이 하는 말에 무조건 굽실거리며 위기를 모면했지만

억보는 무슨 뜻으로 엉뚱한 말을 되씹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살기 어린 노인의 눈이 황소의 눈망울처럼 순하게 변했다.

입가의 주름살에 가느다란 미소가 번졌다.
 “아부지 죄송해요.”
  억보는 감동한 나머지 몸 둘 곳을 몰랐다.
 “알았으면, 명심하게.‘
  물론 그때만 해도 살인이라도 저지를 것 같은 노인의 위압에 짓눌려

무조건 머리만 주억거릴 뿐 노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내 아들이제?”
  노인이 죽기 이틀 전 일이었다. 참으로 뚱딴지같은 말이었다.

아들이라니? 사위였지, 왜 아들이람.

할머리 뒷산에서 처음으로 마주했을 때의 의아스러움이었다.

노인의 강렬한 시선이 억보의 심장까지 꿰뚫었다. 아무 말도 안 해야지.

입술을 들썩거리려든 노인이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어쩌면 쓸데없는 말은 무덤까지 가져가야겠다는 결심인 것 같았다.
  “비밀은 지켜줘야지,,,”
   노인은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다 내 불찰, 어쩌면 업보겠지,,,.    
  우람한 몸뚱이처럼 잔병치레라곤 모르고 지내온 노인이었다.

배앓이나 감기 한 번 걸린 적이 없었다.

좋은 혈색이며 나이에 걸맞지 않은 단단한 체격, 활동이 왕성한 젊은 사람 뺨칠 정도였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구먼.”
  노인은 오랫동안 억보의 얼굴에서 시선을 거둘 줄 몰랐다. 표정이 없는 것처럼

모든 사물에 대해 철저하게 외면해 버리기 일쑤였던 노인에게서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가라앉을 듯이 무거워진 목소리,

고통스런 호흡으로 그렇지 않아도 어두컴컴한 분위기는 더욱 침울해졌다.

무서운 음모와 저주가 뒤엉켜있는 비밀이라도 터뜨리려는 순간 같은 긴장이 흘렀다. 
 “어이……”
  노인은 달달 끓어오르는 해소 때문에 말을 더듬거렸다.

그 눈빛은 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살펴보노라면 분노와 절규로 뒤끓는 것 같아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슬픈 내색은 조금도 안 비췄던 것이다.

칠면조의 날개처럼 변해 가는 표정을 억보는 죄다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속내조차.
 “팔자소관이라, 참 옳은 말이여.

이런 말은 내 생전에 입 밖에 안 내려 작심했지만

자네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얼마나 헛된 일인가 하고 뉘우친다네.

다 자네 심성이 너무 고운 탓인지 모르지만,,,”
  이 근동에서 노인의 과거지사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점례만 달랑 데리고 와 뱃사공 노릇을 했다는 것 외에는.

이따금 노인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놓으려면 대답은 고사하고

눈자위만 번득이기 때문에 말꼬리를 얼른 사리기 일쑤였다.
  남의 일은 알 필요도 없고 알아보았자 무엇 할 거냐는 투였다.

주위에서 참한 과부가 있으니 장가라도 들것을 권유했지만

그때마다 말을 꺼낸 사람이 코를 싸맸다는 소문이니,

누구하나 짝지어주려는 염두도 못 냈다.

말 못할 사연을 숨긴 채 살아가는 게 틀림없으리라는 추측들만 앞세웠다.

그뿐이 아니다. 억보는 물론 점례조차 점례의 어머니와 어떻게 이별했는지 알 수 없었다.

내심 궁금했지만 물어볼 염두조차 낼 수 없었다. 그것은 일종의 불문율이나 다름없었다.

노인은 방문의 문고리를 확인했다.
 “자네 안식구한테도 비밀이여. 그러고 내가 한 말은 자네만 알기로 약속을 해야 혀.”
  노인은 억보에게 몇 번이고 다짐했다.
 “살인자였지. 딱 한번, 그것도 한꺼번에 둘씩이나 말이여.”
  노인은 덤덤하게 말했다. 남의 일인 것처럼. 노인의 음성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화전민이었지. 사냥꾼에, 살인범. 보다시피 뱃사공. 괴상한 웃음만 허공으로 날렸다.
  점례의 어머니가 두어 차례 바람을 피웠지만 노인은 모른 체했다. 그리고 깊은 산골로 숨어들었다.

그녀를 소유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눈먼 사랑 때문인가.

외부와의 철저한 차단만이 그녀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화전민에 사냥꾼. 그렇지만 그 생활도 이년이 채 못 되어 어이없이 끝나고 말았다.
  점례 어머니는 젓 먹이 점례조차 팽개치고 이웃에 사는 떠꺼머리총각과 눈이 맞아 줄행랑을 놓았다.

점례를 업고 조선 팔도를 헤매기 사년 만에 강원도 양구 골짜기에서 만났다.

노인은 불문곡직하고 두 년 놈들을 단박에 박살냈다.

달랑 남은 핏덩이 사내아이조차 물고를 내려다 간신이 참았다.

이리저리 흘러 다니다가 정착한 것이 연화리 나루터였다. 
 “세상 인연도 끊었고 내 신세도 이렇게 조졌지. 그러나 후회는 안 해여.

얼마나 좋은가? 저 여호골을 올라가서 저 나루터를 보면 알 거여.

내가 죽거든, 자네를 처음 보았던 자리에 나를 묻어주게.”
  “,,,,,,, ”
 “점례 때문에 원망도 많이 할 것이여.

내 말을 안 들은 자네가 원망스러울 때가 있을 것이여. 뭔 말인지  알겠는가?”
  억보는 대답 대신 영문도 모른 채 머리만 주억거렸다.
  점례에게도 불순한 피가 흐르고 있으니 조심하란 뜻인가?
  노인처럼 엉뚱한 액땜을 할지 모르니 미리 조심해라고 예고해 주는 것처럼 들렷다.

그리고 노인의 예언은 적중했다.
 “그렇지만 단 하나뿐인 혈육이란 말이여.. 그럴 리야 없겠지만 그땐 날 봐서......”
  노인과 억보의 손등이 솥뚜껑처럼 겹쳐졌다.
 “자넨 참 좋은 사람이여.”
  노인의 걸쭉한 목소리가 억보의 귓전을 스쳤다.

그렇지만 애원에 가득한 목소리가 환영이란 걸 깨달았을 땐 분노가 더 무섭게 솟구친 것이다.

  억보는 오감독의 막사 곁에서 귀신에 홀린 듯 우두커니 서 있었다.

부지런히 걸어오느라 몸에 베인 열기 때문인지 초가을의 싸늘한 강풍에도 추위를 느낄 수 없었다.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어둠에 익숙해질 무렵 다시금 떠보는 것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의 사물들이 가느다란 점처럼 희미하게 비치기 시작했다.
 “혹시 눈치 챈 것 아녀?」
  공사판 오감독의 막사에서였다.

막연한 소문들이 고리를 물때마다 미친 것들, 하고 웃어넘겼다.

어떤 녀석과 눈이 맞았는지 요모조모로 궁리했지만 짐작조차 간 곳이 없었던 것이다.   

억보는 몽둥이를 꼭 움켜쥐었다. 
 “걱정할 건 없어, 눈치도 못 챘을 걸,,,”
 “그래도,,,”
  오감독은 뒷일이 씁쓸한지 약간 걱정스러운 투였다.
 “그건 그렇고 약속한 건 진짜지?”
  둘 사이에서 진한 정담들이 오가고 있었다.
 “ 여기선 못살겠어. 대처로 데려다 준다는 약속은 진짜지?”
 “또 바보 같은 소리,,,”
  막연한 소문이었지만 막상 맞부딪치자 억보는 어떻게 할 줄 몰랐다.

손끝과 아랫입술이 부들부들 떨린 것 같아 소리라도 지를 뻔했다.

살인이라도 저질러야 될 분노 대신 아득한 절망의 심연 속으로 한없이 빠져드는 것이었다.
  먹장에 잠긴 수면 속에서 수백 마리 먹 뱀들이 똬리를 틀고 머리를 치켜들었다.

어슴푸레 나타나는 교각의 몸체는 커다란 장벽으로 억보의 시야까지 가로막고 있었다.

어둠 속을 꿰뚫은 여울소리만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다.

모든 건 죽어 있었다. 정지된 상태였다. 온 세상은 먹 뱀의 똬리처럼 검은 색깔이었다.
  몇 번이나 그 짓을 했는지 알 수 없어도 억보로부터 영원히 떠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똑 바로 말 못해? 그놈하고 어디로 도망치기로 약속했지?”
  점례 마음이 향하는 곳이 어딘지 확인하고 싶었다.

점례의 마음만 돌아선다면 유유한 물결의 흐름처럼 이 상처를 잊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오감독의 머리통을 작살낼 수 있었지만 어깻죽지만 후려친 건 잘한 일인지 몰랐다.
  피를 부른다면, 순간적으로 솟구치는 살의. 그렇지만 몽둥이를 움직일 수 없었다.

억보는 미친 듯 울부짖었다.

다른 힘이 억보의 팔목을 움직일 수 없게 천천히 조여 왔던 것이다.

놔둬란 말이여. 나처럼 되면 안 되지,,,.
 “뱃사공 이젠 지긋지긋하단 말이여.”
  점례의 발악이었다.
 “그렇다고 멀쩡한 서방 놔두고, 딴 짓이여? 뱃사공도 이제 그만 아녀?

그래도 서방질이여?”
 “내가 뭣이 잘못했어? 동생 같은 것이 그래도 서방노릇은 하겠다고?”
 “요런 잡것이,,,”
  새소리와 더불어 유유히 흐르는 물결 소리,

가난하지만 훈훈한 정들이 넘친 이 나루터.

괴물 덩어리 같은 다릿발이 불쑥 솟아오르면서 전설 속의 모습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아닌가.

그렇지만 억보는 이 나루터에서 떠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전신에 모았던 기력이 쇄진해버리고 아랫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손아귀에 굳게 쥐어진 몽둥이가 힘없이 떨어졌다.
  ‘여기서 살기가 싫다고 서방질이여? 핑계 한 번 좋구나, 그려 니 맘대로 해봐,,,?
  어느덧 억보의 억센 주먹이 점례의 목덜미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동생 같은 것이 서방노릇까지 헐란다고? 언제는 그런 줄 몰랐남?”
  “백 번 쥑여도 싸지 싸. 그렇지만 꼭 이래야만 쓰겠는가?”
  노인의 목소리가 여호골 골짜기에서 어렴풋이 들려오고 있었다.
  우르르 쾅/  우르르 쾅/ 하늘도 미친 듯 울부짖고 있었다.

점례의 목 줄기를 조여 가는 억보는 중얼거렸다.
  “아부지 정말로 죄송허그만요,,, 정말로,,,”
  억보는 기어이 짐승 같은 울음을 쏟아냈다.

 

*원작출처 : [희구당집1618] - 다음 블로그   http://blog.daum.net/ljbb1618

 

<작가소개>이재백(원로소설가)

 

[돌각담]의 저자, 소설가-이재백

 
- 처녀작 돌각담이 오랜 산고끝에 태어나다.-
- 농사짓는 소설가 희구당(喜懼堂)이재백 -
 
   /ⓒ데일리안 광주전남 http://www.dailian.co.kr/gj
    [김선영 기자] /2006-05-02 18:27:53 
    
봄 햇살이 따사롭고 눈부신 날 승주에 인접해있는 곡성의 목사동을 찾아갔다.

길눈이 어두운 필자가 첩첩산중이라 표현한 그의 집을 찾지 못하자

손수 먼 곳까지 마중을 나와 준 이재백 작가는 외가댁 아저씨 같은 인상이었다.

 
◇ 대문이 없는 소설가의 집 / ⓒ 데일리안

세월에 휘둘리지 않는 후덕한 자애와 소박함이 구성진 전라도 사투리에 곰상스레 묻어나는

이재백 소설가는 1939년생으로 우리나라 역사의 질곡을 고스란히 체험해온

우리들의 어버이이자 우리들의 스승일 것이다.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졸업했고 1995년 월간문학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을 했지만

환갑이 넘어서서야 작품집인 [돌각담]을 펴냈을 뿐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서슴치않고 농사꾼이라고 말할 만큼

농촌은 그의 삶에 녹아있는 사상의 토대이고 생활의 터전이다.

 

김규성 시인, 소설가 이목연씨,

우리 문학사의 대들보이신, 소설가-이순원 등이

그의 [돌각담]에 대한 찬사와 작가에 대한 아낌없는 애정을 담아서

서로 앞 다투어 책 출간을 축하해주고, 담론을 벌일 만큼

이재백 소설가는 진솔하다.

 
◇ 향기로운 사과꽃이 피어있는 뜨락. / ⓒ 데일리안

다음은 한국소설 2006년 5월호에 이재백 창작집 [돌각담]에 대한

소설가 이목연씨의 글을 발췌해봤다.

 

-[돌각담]은 작가가 환갑을 넘어 세상에 내놓은 늦둥이 소설집이다.

어느 작품인들 작가와 닮지 않았을까마는 한 작가의 가슴 속에 오래 묻혀 있던 탓일까.

작품집 [돌각담]은 영락없는 작가의 분신이다.

지리산 자락에서 나고 늙어간 작가답게 작품마다에 깊은 한과 오기

그리고 우직한 뱃심을 버무려놓고는 슬그머니 궁글리는 모습이 그 산과 닮았다.

산 아래 자투락 마을이 겪는 시련과 역경은 지리산보다 높은 한과 오기를 품게 하지만

그러나 산자락을 에두르는 섬진강 줄기에 그 한을 풀어낼 뿐,

타인을 향해 칼날을 들이대지 않는다.

가슴 속에 자란 옹이를 삭이는 방법은 결국 그 산자락,

그 물줄기를 바라보며 지어보는 작은 몸짓, 한풀이 일 뿐이다.

그렇기에 [돌각담]속의 작품들은 치열하다.

요즈음의 문예 풍조인 나른한 권태나 풍요속 잉여를 노래하지 않는다.

 
◇ 고서와 현대출판물이 빼곡한 서가 / ⓒ 데일리안

작가 이재백은 예리한 작가의식을 가지고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지리산 아랫동네 사람들의 절박한 생존의 문제를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빛이 강한 곳일수록 더 짙은 그늘을 만든다던가.

작가는 활동적이고 급변하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힘없고 남들만큼 빠르지도 못하고,

주목도 받지 못한 채 살고 있는 산 아랫마을 사람들의 얘기를 전하고 있다.

“타고난 천성이 천하에 몹쓸 거라도, 내 것이니 그대로 사랑해줘야제잉. 숙명을 거부할 수는 없는 것이지.”
작가의 말에 들어 있는 이 말은 정작 작품 속 주인공들이 하고 싶은 말이리라.

역사적인 배경만 바꾸리 뿐 그닥 변할 것 없는 우리네 삶의 방식.

작가는 그 과정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주목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숙명을 거부할 수 없듯이 역사가 저질러 놓은 상처까지 싸안는다.

 

작품집 [돌각담] 속에서는 해방과 함께 지리산 자락을 찾아 든 이념의 갈등이나

권력의 부조화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돌각담]의 동혁이나 덕배의 부모들처럼 이념적 대립의 틈바구니에서

무모하게 일어난 희생이나, [두 친구]의 운호나 석구처럼 해방과 함께

6.25를 겪는 과정에서 두 사람의 사사로움과는 상관없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어야 하는

이념의 갈등이 이제는 끝난, 옛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 너무도 닮아있는 두 부부  / ⓒ 데일리안

[흔적을 찾아서]의 점수 어머니가 현재 겪고 있는 상황 역시

그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일본 패망과 6.25의 어지러운 정국을 오가며

치부를 한 박 사장은 빨치산과 한패라고 점수 아버지를 고발해 죽인다.

그리고 점수 어머니 당몰댁 까지 겁간하려던 박사장은

유신체제에서도 여전히 힘을 유지하는 권력가이다.-(이원호)

 

이 밖에도 [어두운 터널], [흔적을 찾아서], [나루터 전설]같은 글들이 실려 있는데

[나루터의 전설]이 다리를 놓는 현대화 과정에서 생긴 비극과 [상여 울음소리]처럼

환경 센터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 쓰레기 소각장을 건설하려는 정부에 대항하는

마을 사람들의 처절한 저항을 그린 작품도 수록되어있는 [돌감담]은

과거와 현재의 치부와 아픔을 아우르는 저항적이지만

운명에 순응하는 작가의 사상이 켜켜이 앉아있다.

 

소설가, 이순원은 말한다.

“이 체구 작고 조그마한 늦깎이 작가는 늦었다고 서두르는 법 없이,

자기걸음으로 살아온 시대를 이야기하고,

자기가 본 시대를 증언하며 또 이야기한다.

나는 그것이 곡성 땅과 지리산이 그에게 준 힘이라고 생각한다.”

 

문학평론가, 오윤호씨의 말을 빌면

-오랜 시간 숙련된 필력으로 인생의 고단함을

빠른 서사적 전개로 풀어내는 소설쓰기도 일품이지만,

사람의 일에 대해 통찰력 있는 연륜의 태도를 취하며

또닥거리는 연민의 손길도 빼놓을 수 없는 이 소설집만의 맛이다.-

 
◇ 토란이 피어있는 뒷뜰 / ⓒ 데일리안

이재백 소설가의 [돌각담]이 태어난 곡성의 목사동.

구절양장같은 산을 굽이굽이 찾아간 그곳에

아담한 한옥이 고즈넉이 둥지를 틀고 있고 사과꽃향기가 가득한 뜨락엔

이름 모를 풀들과 나무들, 탐스럽게 핀 철쭉과 돌탑들이 즐비했다.

토란잎들이 마치 군무를 추듯이 담 아래 피어있고 서재로 쓰고 있는

그의 사랑채는 할아버지 대에서부터 모았다는 고서들과 함께

이재백 소설가의 활자에 대한 사랑을 알고도 남을 만큼 많은 책들이 서가에 꽂혀있었다.

 

농사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이재백 소설가의 아내.

감히 이름도 묻지 못할 만큼 기품이 있는 농부이자 소설가의 아내는 그와 닮아있는 얼굴이다.

그의 서재에는 희구당(喜懼堂) 이라는 오래된 서체가 걸려있었다.

할아버지께서 직접 쓰신 글이, 이재백 소설가의 호가 되었다며 웃는다.

기쁠 때도 항상 조신하라는 뜻의 글이다.

그렇게 대를 이어 세월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서재에는

오래된 책에서 나는 냄새가 숙연한 기분마저 들게 만들었다.

 
◇ 부부가 손수 일군 배밭 / ⓒ 데일리안

공초(空超)오상순선생님(서울 출생. 경신학교(儆新學校)를 거쳐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 종교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20년 김억(金億)·남궁 벽(南宮璧)·염상섭(廉想涉)·황석우(黃錫禹) 등과 함께 《폐허(廢墟)》 동인이 되고, 처음으로

《시대고(時代苦)와 그 희생》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이후 《폐허》를 통하여 계속 작품을 발표했는데, 초기 시들은

주로 운명을 수용하려는 순응주의, 동양적 허무의 사상이 짙게 깔려 있다. 1924년 보성고등보통학교 교사,

1930년에는 불교중앙학림(佛敎中央學林:동국대학교 전신)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세월을 방랑과 담배연기,

고독 속에서 보냈다. 1954년 예술원 종신회원에 선출되고 1956년 예술원상, 1962년 서울시문화상을 수상했으며,

주요작품으로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 《방랑의 마음》 《첫날밤》 《해바라기》 등 50여 편이 있다.)

 

공초(空超)오상순선생님의 제자였던, 이재백 소설가는 애연가이다.

공초 선생님께 받아왔다는 담배를 소중하게 음미하는 그는

돈 없던 학창시절의 낭만과 60년대 문인들의 아지트였던 종로의 다방을 기억하며

담배연기로 추억을 승화시켜보였다.

학업을 끝마치고 가업인 농사를 대물림하기 위해, 시골로 낙향했다는 그에겐

시골에 있든 도시에 있든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문화를 잊지 않고 사는 것이야말로

삶의 주체이자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단다.

 
◇ 배꽃이 아름답다. / ⓒ 데일리안

전남에서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전통문화와 유산에 대한 안타까움을

후손들에게 가르치고 그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서 고향을 지키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재백 소설가.

그러나 전통이라고 해서 무조건 답습해서도 안 된다는 어려운 화두를 던져준 체

목사리를 떠나는 필자를 배꽃나무 피어있는 과수원 언덕에서 웃음으로 보내주었다.

향긋한 배꽃과 사과나무에 홀린 듯 쳐다본 하늘은 황사가 걷히고 맑고 높았다.

 

ⓒ데일리안 광주전남 http://www.dailian.co.kr/gj
[김선영 기자]
 

 

‘질거운뜻 부지런팔뚝 갖이고’
‘가가(家歌)’부르며 더욱더욱 나아가는
곡성 목사동 농부소설가, 이재백(李在白)
남인희 기자  

▲ 곡성 목사동 이재백씨 댁엔 할아버지대로부터

50년 넘게 이어져 온다는 가훈과 ‘집노래(家歌)’가 있다.

ⓒ 김태성 기자


“물오리들이 하늘로 날아오를 때의 울음소리가 푸른 비 내리는 것 같다”해서 압록(鴨綠)이라던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손꼽히는 석압로(압록∼석곡). 느릿느릿 순하게 흐르는 보성강 물길 따라가다

아미산 자락에 옴팍하게 안긴 마을 하나로 접어든다.
흐르는 듯 모나지 않은 고샅길을 만들고 있는 이끼 낀 돌각담들이 정다운 목사동이다.

 

실록을 쓰는 사관처럼 농촌 실상 기록
그 <돌각담>을 표제작으로 지난해 늦둥이 첫 소설집을 내놓은

이재백(69)씨가 이 마을(곡성군 목사동면 신전리)에 산다.

그는 고향을 지키며 소설 쓰는 농부다. 아니 농부 소설가다.

두 가지 일을 양 손에 들었으니 요새 사람들 하는 말로 치면 ‘투잡족(族)’이다.

주경야독이라고, 낮에 배밭으로 논으로 고샅으로 쏘다닌 발걸음은 밤엔 형광등 불빛 아래 그대로 컴퓨터에 옮겨진다.
<옛 사람들이 살아왔던,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 많은 흔적들이 얽히고설킨 황토 구릉마을,

그 입구마다 자그만 비문이라도 세워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아픔이, 그리움이, 분노가, 함께 하는 마음이

절절이 스며 있다고…>.
소설집 《돌각담》에 붙인 작가의 말이다.

▲ 벼농사만 짓고 살던 마을에서 처음 배농사를 시작한 이재백씨.

가가(家歌)의 노랫말처럼 그가 품은‘질거운(즐거운) 뜻’과 ‘부지런(한) 팔뚝’덕에

80여 농가가 참여하는 곡성배영농조합에선 연간 500톤이 넘는 배를 수출하게 됐다.

ⓒ 김태성 기자


젊은 사람들이야 이것이 전설도 아니고 뭣도 아니고 뭔 소린 줄도 모르고 관심도 없겠지만,

우리의 족적에서 사라질 것들을 새기고 농촌을 그려낼 수 있는 마지막 세대라는 생각으로 작품을 씁니다.”

잊혀져 가는 우리네 농촌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의 소설엔 마을의 역사나 농촌의 소소한 풍속들도

오롯이 재현되고 있으니, 소설가 이순원이 이 소설집에 붙인 평처럼

<그의 소설은 한 구석 새것에 대한 맹신적 경쟁이 없다.

이 체구 조그마한 늦깎이 작가는 늦었다고 서두르는 법 없이 자기 걸음으로 살아온 시대를 얘기하고

자기가 본 시대를 증언하며 또 이야기한다.>
서울에서 문예창작과를 나온 청년이 농촌으로 귀환했을 때, 사람들은 도대체 왜 돌아왔느냐고 물었다. 
“농촌에 살며 농촌을 쓰기 위해서였죠. 지금도 후회는 없어요.”

오래 전에 변방의 문학으로 쇠락해 버린 농촌문학을 숙명인 양 고집하는 시대착오적인 외곬수.

그이가 마치 실록을 쓰는 사관처럼 농촌의 실상을 기록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신 저녁마다 흙 묻은 장화를 벗는 농부이기 때문이다.
“소설 쓰는 이들 앞에서는 나는 농사도 짓는다 까불지 마, 허고

농사짓는 이들 앞에선 나는 소설도 쓴다 까불지 마, 허고 사는 것이지요, 허허.”

이 작달막한 어르신의 얼굴에 흐르는 봄햇살 같은 웃음을 대하노라면 ‘까불지 마’라는 엄포가

실은 어디서나 눌릴 것 없는 처지이면서도 늘 수그릴 줄 아는 겸양에서 나온 말씀이란 것을 알게 된다.

그러기에 이생진 시인은

<시골에서 배농사를 하며 글을 쓰는 이재백/ 서울에서 시를 쓰는 내 손이 부끄러워>라고 쓰지 않았겠는가.

20호 자가일촌(自家一村)을 이루고 사는 마을.

6000여 평 배밭에 3000여 평 벼농사를 손수 짓고 사는 그이지만

혹여 조금치라도 서툰 일 앞에서는 나이 불문, “일헌 데는 니가 내 선생이다” 고개 숙이고

한 수 배우기를 꺼리지 않는다.

 

집앞 마당의 바위좌대에서-이재백   ⓒ 김태성 기자


벼농사만 짓고 살던 마을에 처음 배를 들여와

지켜야 할 것은 지키고 바꿔야 할 것은 늘 자꼬 바꿔치기해야 해요.”
전통이라고 해서 무조건 답습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진취적 기상은 이 작은 마을을 배 수출 단지로 바꿔 놓았다.

지금이야 ‘골짝나라’ 곡성의 ‘목사동 배’가 명성을 얻었지만

벼농사만 짓고 살던 이 마을에 처음 배를 들여 온 공로는 이재백씨 부부에게 있다. 
“나주에 혼자 가서 들판을 본께, 어디 과수원에서 아저씨가 전정을 하고 있어요.

음료수 한 병 사 갖고 가서 꼬치꼬치 묻고 한번 모셔다가 전정 배우고 그 뒤로는 혼자서 했지요.”

시집와서야 농사를 배웠다는 그의 아내 이행숙(62)씨는 타고난 장손며느리였나 보다.

가세를 지키기 위해 내 몸을 희생하겠다는 각오로 배농사를 시작했다.

시어머니 생전에 “니 손은 참 좋은 손이다”는 치하를 들은 걸 보면 이 며느리의 바지런한 성정이 짚어진다. 

그렇게 배밭을 일구어온 지 30년이 넘었다.

배영농조합법인의 부지로 쓰겠다고 1000여 평의 멀쩡한 배밭을 무상으로 내놓은 남편에게 아내는 할 말이 많다.
“판판한 평지 땅은 마을에 내주고, 마느래(마누라)는 쩌 높은 산비탈을 다리 아프게 오르락내리락 일하러 가라 허데요.”

덕분에 80여 농가가 참여하는 곡성배영농조합에선 연간 500톤이 넘는 배를 수출하고 있으니,

목사동 골짜기는 떠나가는 농촌이 아니라 바야흐로 돌아오는 농촌이 돼 가고 있는 것이다.

내 식구보다 남의 식구 좋으라고 한 일이건만, 남편은 생색도 내지 않고 덤덤하게

“내 배밭 가차우니 내 일 보기도 편허잖여” 응수하고, 항변하던 아내의 얼굴엔 슬몃 웃음이 비친다. 
부창부수다. 부부는 닮았다.

 

▲ 그의 서재 희구당. 할아버지 때부터 지녀온 고서며 누렇게 바랜 옛날 문예지부터

요즘 신간 서적까지 사방으로 병풍을 두른 듯 촘촘하고 알뜰하게 정리된 것이

오래된 남와 어린 나무가 함께 자라는 숲에 들어선 듯.

ⓒ 김태성 기자


편지 한쪽도 금쪽처럼 간직하는 그 마음

5대째 120년 세월을 이어 온 그의 집.

그 한 세월, 고물고물 기어다니던 갓난쟁이가 혈기 푸른 청년이 되었다가 순하게 늙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집이다.
바지런한 부부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을 성 부른 그 집의 안팎엔 고요하고 정갈한 윤기가 스며 있다.

사람으로 치자면 집은 외화내빈과는 도무지 거리가 먼, 속이 꽉 찬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사랑채에 들인 그의 서재엔 예사롭지 않은 필치의 현판이 걸려 있다.

희구당(喜懼堂). ‘즐거울 희(喜), 근심할 구(懼)’,

기쁨과 두려움을 안고 있는 처소라니 당호라기보다 인생 철학쯤으로 들린다.
“좋은 일 있으면 까불고 힘든 일 있으면 절망하는 것이 사람의 습성이지만,

좋은 일 앞에서도 너무 까불지 말고 절망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고 즐거움을 찾으라는 뜻이지요.”

서재는 온고지신하는 이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것 같다.

할아버지 때부터 지녀온 고서며 누렇게 바랜 옛날 문예지부터 요즘 신간 서적까지

사방으로 병풍을 두른 듯 촘촘하고 알뜰하게 정리된 것이 오래된 나무와 어린 나무가 함께 자라는 숲에 들어선 듯.

그의 소장목록엔 가령, 공초-오상순에게서 받은 담배 한 갑이 그 시절의 추억과 함께 끼여 있는가 하면,

희부연 창 옆에 걸린 액자엔 누렇게 바래가는 흑백사진 한 장이 남모르는 진가를 가진 보물인 듯 연륜을 더해 간다

(사실은 어느 잡지에서 뜯은 것이다).

“나한테 들어오는 것은 신문지 하나라도 안나간다”는 그이.

글자를 다루어 영혼을 아로새기는 작업을 하는 그이기에 인쇄물에 대한 애착이 각별하다.

“만든 이의 혼을 담은 것 아닙니까. 전라도닷컴도 한 200년 지나면 문화유산이에요.”
편지 한쪽도 금쪽처럼 여기는 그이의 집에서는 할아버지의 편지도 자랑스러운 역사고 유산이다. 

 

▲ 5대째 120년 세월을 이어 온 그의 집.

바지런한 부부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을 성부른 집의 안팎엔

고요하고 정갈한 윤기가 흐르고 속이 꽉 찬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 김태성 기자


콩나물 깍대기도 없이 입으로만 전해지는‘집노래’

빛바랜 서책들 곁엔, 그것이 만들어진 세월을 짐작케 하는 표구 액자가 눈에 띈다.
할아버지대로부터 70년 넘게 이어져 온 가훈과 ‘집노래(家歌)’다.
만손일심(萬孫一心)하라 전해지는 가훈은

근면·진취요 ‘가도(家道)중심’은 화락(和樂)이다. 그 아래 씌어진 것은 ‘집노래’.

<깨끗한 피 궂센 힘 모아 닐우어/ 이천해 니여온 우리집 역사/ 겨레는 억천만 마음은 하나

/ 집을 위한 몸바친 우리집 주의/ 질거운 뜻 부지런 팔뚝 갖이고/ 더욱더욱 나어갈 우리집 가훈

/ 가론 땅갓 세로는 하늘과 함께 / 내 때 내손으로 될 우리집 가도(家道)>
이름도 생소한 집노래. 그는 “내 한번 불러 볼까요” 하고 첫 소절을 우렁우렁 부른다.

시조가락으로 할아버지가 부르던 것을 귀에 담아 기억한 것이다. 

“시골영감이 밥묵고 헐 일 없어서 헛폼 잡았는가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집안에 집노래가 있다는 게 자랑스럽지요.

콩나물 깍대기도 없이 입으로만 전해지는 놈이니

음대 작곡과 다닌다는 집안 아이놈한테 악보로 한번 정리해 보라고 할 참입니다.”
노래 속 ‘질거운(즐거운) 뜻 부지런(한) 팔뚝’을 좌우명처럼 살아가는 그이.

산등성이 희디희게 덮었던 배꽃들 다 지고 나면

낮으로는 새 잎 푸른 자리마다 종종거리고,

밤으로는 희구당 문 앞에 대숲 바람 소리 청정하게 흘려 놓고

오늘 아니면 새기지 못할 글을 새기고 있으리라.

기사출력  2007-05-07 16:53:13  

ⓒ 전라도닷컴

 

*출처 :광주전남소설가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 어이-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