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 氣天門◈

◈<소개글>기천문(氣天門)-뿌리는 육천년전, 한웅 단군천제님 (치우천왕 등...)의 무예

Demian-(無碍) 2011. 8. 29. 21:51

 

<소개글>

기천문(氣天門)-뿌리는 육천년전, 한웅 단군천제님 (치우천왕 등...)의 무예

 

‘기천문(氣天門)’ 의 뿌리는 오천년전, 단군의 무예

해동조선의 다물(多勿)을 꿈꾸는 기천문(氣天門) 사람들

 

[33호] 2003년 12월 01일 (월) 강은지 기자 happy@minjog21.com

지난 2002년10월 3일

평양 단군릉 앞에서 열린 개천절민족공동행사 문화공연 가운데,

남측에서 준비한 이색적인 공연이 펼쳐졌다. 진도군립예술단의 장단에 맞춘

단군수련법 ‘기천문 예무단’의 공연이었다.
부드럽게 휘어지는 팔과 다리의 움직임이 춤을 추는 듯도 하고

그 손끝과 발끝에서는 알 수 없는 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도 한

선단학 기천문의 공연을 지켜보면서

기자는 단군수련법이라는 선단학 기천문(氣天門)이 궁금해졌다.

 

 

   
 

기천문 검법을 선보이고 있는 김영기 원장.[유수 기자]

‘기천문’ 뿌리는 오천년전, 단군 무예

 

선단학 기천문의 초대 사무총장을 역임한 김영기(47) 기천문 광화문수련원장은

기천(氣天)은

단군 조선 때로부터 우리 민족에게 전해 내려오는 한민족 고유의 심신수련법이라고 설명한다.

최치원 선생이 국유현묘지도-풍류도라 일컫기도 했던

기천은 백두산을 중심으로 하는 심신수련법으로

단군 조선에서 고구려, 발해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고구려와 발해의 멸망 후 기천은 전통 춤, 민속놀이 등에 흔적을 남긴 채

산중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후 지킴이들에 의해

그 정통의 맥이 깊은 산중에서 비전되어 면면히 이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와 함께 초기에는 백두산 중심이었던 흐름이 조선 말엽께는

그 뿌리가 태백산맥으로 옮겨지고 일제 시대에 기천인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하면서 맥이 거의 끊겼다가

기천문의 선대 문주인 "원혜상인"과 기천의 마지막 전인인 박대양 진인(眞人)의 노력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것이 김영기 원장의 설명이다.

“현재 기천 복장을 보면 흰옷에 띠를 매고 있잖아요.

산에서는 새끼줄로라도 그렇게 맸다고 해요.

그러면서도 왜 띠를 매는지는 몰랐는데,

북에서 고구려 시대 무사 석상이 발견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지요.

임금을 가장 가까이에서 호위하는 어장군의 복장이 지금 기천 복장하고 똑같더라고요.”

김영기 원장은 우리의 선조인 "단군 할아버지가 기의 달인이고 무예의 고수였다." 고 주장한다.

그리고 고조선 2천년 왕국, 고구려 1천년 왕국이 가능했던 이유가

우리 민족이 지니고 있던 뛰어난 무예와 군사력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금 일본이 꿈꾸는 대동아공영을 그때 고조선은 이미 이루고 있었어요.

 당시의 청동기 문화라든가 그 넓은 지역을 2천년 동안 평화롭게 다스렸던 기록들을 보면

고조선은 2천년 후에 등장한 로마 제국과 비슷한 군사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어요.

무예도 엄청나게 뛰어났어요.

그래서 그 전통을 이어받고자 고구려가 ‘다물(多勿)’을 국시로 했던 겁니다.
다물(多勿)이 뭡니까...?

되물리자, 되찾자. 민족얼을, 옛날의 우리 조국을 되찾자는 거지요.

고구려가 다물하고자 했던 조국, 그게 바로 고조선이에요.

지금 우리가 다물해야 할 조국도 고구려, 더 나아가 단군 조선, 고조선입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뿌리 국가 고조선의 핵심문화가

단군수련법 기천을 통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기천이야말로 우리 뿌리 문화의 최고 핵심이고 민족얼 자체입니다.”


30년전 다시 세상에 나온 기천문

산중으로 숨어들어갔던 기천이 세상에 다시 나오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인 1970년. 지금의 기천을 전해준 초대 문주 대양진인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원혜상인 밑에서 산에서 자라면서 기천의 모든 수련법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민족수련법 기천을 민족에게 전파하라는 원혜상인의 말을 따라

산에서 내려와 기천을 가르치기 시작했다는 것.

하지만 기천이 단군수련법이라는 것을 밝힌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과거에는 ‘단군’에 대한 인식 자체가 상당히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대양진인이 세상으로 나온 1970년대는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로

전통민족사상이나 정신수련법 등은 거의 미신으로 취급받던 시기였다.

이 때문에 기천의 유래를 밝히고 온전하게 전하는 것이 어려웠다.

한 예로 기천의 가장 기본이 되는 수련법의 하나인 "단배공"의 경우

사실은 "단군배공"의 준말로 단군께서 깨달음과 건강과 예를 가르쳐주신 공법임에도

이를 밝히지 않았고, 단배공의 단 자도

단군 단(檀)이 아니라 붉을 단(丹) 자를 사용했을 정도라고...

그래서 대양진인은

어떤 때는 무예로, 어떤 때는 선도로, 활명으로, 춤사위나 호흡법 등으로

가르치는 상대와 장소에 따라 각각 다른 방법으로 기천을 전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기천은

‘전통무예 기천’ ‘산중무예 기천’ ‘민족선도 기천’ ‘기천 활명’ ‘기천 춤사위’ 등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천문도 힘이 생기고 단군에 대한 인식도 새로워져

김영기 원장이 초대 사무총장을 맡으면서부터는 단군수련법을 공식적으로 표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기천문 수련도장이 20여 개,

기천을 거쳐간 사람들만 해도 벌써 20~3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김영기 원장은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단군 할아버지가 남긴 민족의 보고 기천을 더 널리 알리고 싶어한다.

그를 위해 ‘산중무예’ 혹은 ‘민족무예’라 불리던 기천문에

 ‘선단학 기천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었다.

무예라는 말에 여성들이나 노인들이 무서워서 접근하지 못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경기도 일산 호수공원에서 기천문을 연마 중인 수련생들.[유수 기자]  

   
 

지난 2002년, 10월 3일 평양 단군릉 앞에서

기천무를 선보이고 있는

기천문 2대 문주-박사규 씨.[기천문 제공]

 

그래서 부드러운 맛을 주기 위해 선단학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너무 어려워서 쉽게 따라하기 어려운 기천 동작들도 하나씩 풀어서 체계를 다듬었다.

또 “말이나 글에 집착하지 말고 몸으로 수행하라”는 기천의 가르침 때문에

말이나 글과 같은 이론적인 것이 전혀 없었던 기천의 이론과 체계를 잡은 것도

김영기 원장의 공로다.

기천의 가장 기초적인 자세를 배우는데는 6개월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그리고 고수가 되려면 5년 이상을, 깨달음의 경지까지 가려면 10년은 해야 한다고.

기 치료가 가능한 고수의 단계를 넘어 정신적 깨달음을 얻어 영통하게 되면

세상 돌아감의 이치를 훤히 보고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단군운동 생활화가 기천문

기천은 또 다른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 고수의 경지까지가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질병 예방과 치료에 좋다고 한다.

혈액순환, 혈압개선에는 ‘내외단공’이, 하체단련, 정력 증강에는 ‘역보조법’이

당뇨, 고혈압 등 성인병 자가치료에는 ‘단배공’과 ‘내가신장’이

그리고 골다공증, 관절염에는 ‘육합단공’이 특효라는데

특히 뛰어난 다이어트 효과와 함께 호신술도 겸할 수 있어

최근에는 여성들도 기천을 많이 배운다고 한다.

사실 김영기 원장이 기천에 입문하게 된 것도 자신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서였다.

“제가 원래 책만 읽던 백면서생에다가 민족운동,통일운동,단군운동을 하면서

매일 술만 마시고 했더니 몸이 굉장히 나빠졌었어요. 어느 날은 아침에 일어났는데

손이 막 떨리고 칫솔 들 힘이 없어서 칫솔까지 떨어뜨리는 거예요.

그때 《한배달》이라는 잡지에 기천문 소개가 실린 것을 보고 찾아가서 배우게 됐지요.
제가 원래 팔굽혀펴기를 열 번도 못했는데 기천을 한 삼개월 했더니

손가락으로 팔굽혀펴기 삼십번을 너끈히 하더라고요.

게다가 보통 사람이 25살이 넘으면 성장이 멈춘다고 하잖아요.

제가 기천을 처음 수련하기 시작한 게 35살 때였는데

저는 기천을 하면서 키가 1cm 컸어요.

한손에 잡히던 발목도 이렇게 굵어졌고요. 완전히 환골탈태한 거지요.”

그러나 그가 기천을 사랑하고 널리 알리고 싶어하는 것은

비단 건강에 좋은 비법이어서가 아니다.

그는 기천이 심신수련을 통한 무예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단군 이래로 역사 속에 검증되어 온

기천의 위력을 민족과 인류의 지킴이에게 전수하는 것,

곧 민족의 얼을 이어받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진정한 통일운동이 바로 단군운동이에요.

오랜 분단 세월 때문에 남북 문화가 많이 이질적이고 달라졌잖아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국조 단군의 한 핏줄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거든요.

그러니 우리 민족이 하나될 수 있는 길이 단군에 있고

그 단군운동 생활화를 위해서는 기천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어요.” [2003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