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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심법요(傳心法要) / 황벽(黃蘗)선사

Demian-(無碍) 2011. 7. 27. 23:09

 

전심법요(傳心法要) / 황벽(黃蘗)선사

 

學道人  若欲得成佛  一切佛法總不學  唯學無求無着

학도인  약욕득성불   일체불법총불학  유학무구무착

 

 

불교 공부를 하지 말라.


道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만약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불법을 모두 다 공부하지 말라.

오직 본래로 구할 것 없고,

집착할 것이 없음을 배우라.


- 황벽(黃蘗)선사 『전심법요(傳心法要)』

 

사람들은 불교를 믿고 공부하고

수행하는 목적을 저마다 여러 가지로 표현한다.

혹자는 성불(成佛)이라고도 하고,

혹자는 중생들을 교화하는 보살행이라고도 한다.

또는 죽음을 면하는 생사해탈이라고 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보살행이든 생사해탈이든

성불을 하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성불이 목적이라고 하는 편이 정답에 가깝다.


장구한 불교 역사의 산맥에서 황벽(黃蘗, ?~850) 선사는

그 높이가 얼마인지 알 수 없는 대단히 높은 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임제(臨濟, ?~867) 선사와 같은 희대의 인물을 길러낸 사람이기도 하다.

 

불교사상이 발전과 진보를 거듭했다지만,

아직은 황벽 선사와 임제 선사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황벽선사는 『전심법요』에서

불교의 지상 목표인 성불에 대해

매우 명쾌하고도 정곡을 찌르는 가르침을 준다.    


‘도(道)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말에서

도(道)는 불교의 최종 목적인 성불이며

해탈이며 열반이며 불도(佛道)며 깨달음이다.

황벽 선사는 그러한 도(道)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만약 부처가 되고 싶다면,

일체의 불법을 공부하지 말라고 이야기 한다.

 

불교의 거의 모든 가르침은

성불(成佛)을 하기 위한 방법들이다.

방편에는 사성제· 팔정도· 십이인연·

육바라밀· 참선· 기도· 간경· 염불· 주력 등 많은 것들이 있다.

사람들은 그와 같은 방법을 통해 수행해야만,

비로소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황벽 선사의 말은 어떻게 되는가?

도대체 부처는 무엇인가?

황벽 선사의 가르침대로 간단히 표현하면

부처란 사람들의 본래 모습이다.

아무 것도 더 보탤 것이 없는

이미 존재하는 모습 그대로가

완전무결한 부처님인 것이다.

현재의 인간 그대로가 완전한 부처이지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뭔가 새롭고 다른 모습의 부처를 상상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부처라는 사실을

이해를 하든 못 하든

사람은 그 자체로 원래부터 부처이다.

고려청자를 알아보고,

국보로 지정하여 박물관에 진열을 해 두든,

아니면 그 가치를 몰라보고

시골구석에서 개밥 그릇으로 사용하든

고려청자는 언제나 고려청자이듯이...


예컨대, 갓 태어난 어린아이도 사람이며

80, 90된 노인도 사람이다.

눈이 하나 없어도 사람이며

다리가 하나 없어도 사람이다.

지극히 선한 사람이나, 극악무도한 악한 사람이나

건강하거나 몹쓸 병에 걸렸거나

어떤 외적인 차이가 있어도

모두 사람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는 동일하다.

이것은 어느 나라에서든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이든 부처라는 점에서 모두 똑 같다.

계를 지키거나 파계를 하거나, 불교를 알거나 모르거나

아니면 불교를 사탄이라고 비방하는 사람까지도 모두가 부처님이다.

수행의 덕화가 매우 높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도 실은 똑같은 부처님이다.

모든 사람들이 본래로 이미 다 갖추고 있는

무한의 생명과 공덕과 복덕을 생각하면

석가와 일반인의 차이도 있으나 마나 한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황벽 선사는

“성불하고자 하거든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서 더 이상 공부하지 말라.

누구든 자신이 아닌 밖의 것에 집착을 하지만 않는다면

이미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완전무결한 부처님이다.”라고 한 것이다.

인간 개개인이 이미 갖추고 있는 부처의 존엄성을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는 길만이

세계평화의 열쇠이며 인간불교(人間佛敎) 시대의 대안이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소를 때려야 하는가,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소개글>

 

임제선사가 삼년간 황벽선사 밑에서 공부 하였습니다.

황벽선사 수제자가 임제선사에게 와서

“왜 그대는 삼년간 질문을 안하는가? 한번 하여보라”

“무엇을 질문해야할지도 모릅니다.”
“부처님이 오신 큰뜻이 무어냐 물으면 어떠할까?”

그리하여 임제선사가 황벽선사에게 그 질문을 합니다.

그리곤 바로 방망이로 머리를 맞습니다.

다시 돌아오니 수제자가 다시 물어보라 하고

이런식으로 세 번을 묻고는 세 번다 방망이만 맞습니다.

임제선사가 물어도 스승이 때리기만하자

드디어 떠날 결심을 합니다.

떠나기전에 인사드리니, 스승이 이르기를

가는길에 대우선사를 만나보라 합니다.

임제선사 가는길에 대우선사 만나자 마자 하소연을 합니다.

“제가 진지한 질문을 던졌는데요 때리기만 합니다”

대우선사가 말하기를 “스승이 다 말하여 주었는데도 모른단 말이냐?”

그제사 임제선사 그 자리서 깨달았다 합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우리 스승은 구질구질한게 하나도 없었구나!”

대우선사가 참으로 알았냐며, 계속묻자

임제선사가 바로 대우선사 옆구리인가를 세 번 냅다 때렸다는군요.

그리곤 임제선사 다시 스승에게 돌아오고,

스승이 대우선사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냐 묻자,

임제선사 소상히 아뢰었답니다.

황벽선사듣고 하는 말이

“말많은 대우 늙은이 다음에 오면은 때려주겠다”고 하였고,

그소리 들은 임제선사 냅다 스승을 때렸다는군요.

그리고 임제선사가 스승이 된후, 제자들에게 설하길

“계를 다 지켰다. 경을 다 읽었다.

헌데 그러한 것은 사는데 도움이 되었을뿐이다.

이제 말하노니...

길을 가다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하였답니다.

보이는 족족 무엇이건 죽이라 하였답니다.

부처님의 큰 뜻이 무업니까? 하고 임제선사 묻자

황벽선사가 방망이로 때린 이유는?
1. 그대가 부처인데 무얼 묻는건가?
2. 부처님의 큰뜻이란 번뇌(생각)가 끊어진 자리인데

    묻고 들어서 또 하나의 망상을 지려는가?
3. 진지한 질문을 묻고 대답을 기다릴 때,

    스승이 대답대신 밑도 끝도 없이 때린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요?

    아마도 진퇴하던 생각이 툭 끊어질겁니다. 더러는 그때에 바로, 삼매상태가 됩니다.

임제선사가 대우선사에게 하소연하자,

대우선사가 이르기를, 너의 스승이 그렇게 모두 알려주었건만....
이미 부처님 오신 큰 뜻을 위와같이 다 밝혀주었다는 것이지요

임제선사 홀연히 이르길.

“우리스승은 구질구질한 것이 하나도 없었구나"
스승님 방망이질이 직지(直知)로 가르친 것을 알게 된거지요.

생각이 끊어진 참마음을 이리저리 말해보아야

생각으로 지어내서 말하는 것일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래보아야 듣는이도 생각으로 그것을 이리저리 망상 짓겠지요.

대우선사 이르길

“진실로 알았느냐? 내어보아라” 할때,

임제선사가 대우선사 옆구리를 세 번 말없이 지른 것은.......
생각이 끊어진 자리를 말로 내어보라 하니,

(생각이 먼저 일어나고, 그 다음에 말이 나옵니다)

옆구리를 그저 냅다 지릅니다.

돌아와서 스승이 “그 늙은이 나중에 오면 때려주리라”말을 하니

임제선사가 스승을 바로 때린 것은?
나중이란, 지금과 나중의 분열이지요. 즉 (생각)의 분열입니다.

(되고자 하는 나중)과 (되지못한 지금) 사이의 갈등이지요.

그러므로 스승님이 생각(번뇌)의 끊음을 알려주고선

이제 스스로 생각을 일으키는구나...! 하고서는 냅다 때린거지요.

(나중에 오면)이라는 말의 이면에는 (만약)이라는 가정이 있는것이지요.

만약이란 없는 겁니다.

이미 그것이 망상이며 생각의 분열인것이지요.

그래서 스승을 때린겁니다.